유교의 파르테논 신전, 종묘
10월 3일은 우리나라의 5대 국경일이자 법정 공휴일이다. 이 날은 '하늘이 열린 날'을 의미하는 개천절이다. 우리 민족에게 개천절은 단군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천절은 우리 민족의 대종교 의식에서 단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기념일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민족주의적 사관에서 우리나라가 고조선의 뿌리임을 알리고자 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의 군주인 '단군'은 종교적 지도자를 뜻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개천절은 석가탄신일과 성탄절과 같은 종교적 의미가 깊은 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시작과 그 조상들을 기리는 날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현재 한국인의 문화 속에는 유교적 사상이 근간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군을 기리는 대종교의 기념일이라기보다 한국을 건국하고 이끌어온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날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와 경험에 있어서 개천절은 특별한 날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디자인 요소와 경험을 찾기 위해서 개천절은 즐거운 디자인 소재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에 개천절에 쓸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시작했었다. 조상을 기리는 날과 가장 어울릴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디자인 소재는 '종묘(宗廟)'였다.
종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이는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실의 사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상을 숭배하는 신앙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문화 중 하나였다. 최초의 종묘는 중국 상(은) 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조상을 숭배하는 시조묘(始祖廟)에서 문화를 찾을 수 있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는 단군과 천신을 혈연적 관계로 묶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삼국시대부터 시조묘에 제사를 지낸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자금성 근처에 위치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태묘도 종묘와 같은 기능을 한 사당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중국의 태묘는 공산당이 집권 후 문화 대혁명을 거쳐 공원화가 되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교의 전통과 명맥을 현재까지 이어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종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학자들도 종묘의 기능과 전통을 연구하기 위해서 한국의 종묘를 들린다고 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종묘는 동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사당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묘를 표현하는데 다양한 의견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의견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 답사기에서 보았던 의견이다. 교수님은 종묘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영녕정 자태를 보고 '파르테논'과 비교를 하였다.
현재 유교를 생각해보면 파르테논이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그리스의 문화를 대표하는 파르테논인 것처럼, 조상을 모시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전통성을 지닌 유일한 사당이 우리나라 종묘라는 생각이 재미있지 않은가?
개천절과 종묘라는 소재는 조상을 모시는 문화의 상징성으로 묶을 수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숭고함과 어울리지 않을까? 숭고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방향을 여러 방면에서 고민했다. 묵직한 느낌과 동양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비율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긴 영역에 여백의 공간을 부여했다. 아무 말이 없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리고 병풍에서 볼법한 산수화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컬러의 경우에는 묵직함을 보여주기 위해 웜 그레이(warm gray)와 골드 컬러를 기반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마무리된 디자인을 통해 우리나라 콘텐츠 중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번 종로3가역을 지나갈 때마다 보는 종묘. 항상 할아버지들이 입구쯤에 앉아 술을 마시고, 비둘기가 가득했던 공간으로 보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자세하게 보면 볼수록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소재가 가득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조선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문화를 한국적이게 만드는 것이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울 수 있었다.
즉, 조선시대의 문화만이 한국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우리가 보고 겪는 다양한 문화와 유산들과 그리고 현대 사회의 이야기들 그 자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인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나라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 그 자체가 문화 콘텐츠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잡문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찾고, 콘텐츠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