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고, 아직은 낯선 2025년을 더 잘 살기 위하여
설날 구정이 지났고,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새해가 밝았다.
차일피일 미루던 결심들을 더 미룰 핑계도 하나 줄었다.
올해에도 결심을 했다. 결심하는 게 내 특기니까.
결심하고, 포기하고, 다시 결심하고, 실패하고, 다시 결심하고, 미루고, 다시 결심하고,
작년에 결심했던 결심 리스트들과 비교해 보니, 올해나 작년이나 비슷하다.
작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올해도 비슷한 문제를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
올해 결심도 비슷하다.
작년 초에 주요 이슈는 복직이었다. 공황으로 병가를 내고 3개월 휴직을 했었고, 연초에 복귀했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잘 적응해 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당했고 (멘탈 약한 나를 회사 차원에서 하는 배려라고 했지만)
새로운 팀장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내가 왜 휴직했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적응을 도와주려는 손길도 많았다. 괜히 커피 한잔 하자면서, 살아온 인생 얘기, 결국엔 다 잘 될 거고, 지나갈 거라는 얘기들,
다시 한번 잘해보자는 얘기들, 차고 넘치는 격려와 호흡 가빠지는 파이팅과 파이팅!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회사는 3년 내 상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빠른 성장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했고, 조직을 제대로 이끌 사람을 원했다. 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았고(오히려 그 기대에 못 미쳤고)
새로 온 팀장은 나를 경계했다. 왜냐하면 전 팀장이었으니까. 처음엔 잘 지내보려고 했으나, 번번이 새 팀장이 원하는 기대치를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휴직하고 왔으니까, 다시 적응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새 팀장 입장에선 내가 자신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경계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우호적이었다. 술도 한 잔 하자면서, 형동생처럼 잘 지내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 형동생이 함부로 막 대해도 된다는 게 아니었는데, 새 팀장은 함부로 대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면전에 대고 욕을 처음 들어봤다.
유리 같던 멘탈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새 팀장의 행동이 나중에는 단순히 새 팀장 개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쓸모가 없어진 똥개는 버려지는 법이다.
퇴사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더 받았다.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부적응자로 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좀 더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냥 한 번 내 본 이력서를 마음에 들어 하는 회사를 만났고, 바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를 인정해 줬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다만, 면접 봤을 때는 서울에서 일하는 조건이었는데,
당분간은(기약 없는 말이다) 경기도 쪽 공장으로 출퇴근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3개월을 다니던 끝에 퇴사를 했다. 거리가 멀어서 퇴사를 하긴 했지만, 이 회사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회사에서 내 가치를 몰라줬을 뿐, 이 회사 사장은 그래도 인정해 줬다.
그 자신감으로 헤드헌터한테서 연락 온 회사 면접을 봤고, 이직을 하게 되어 지금 회사로 왔다. 어떻게든 해나가고는 있지만, 이 회사는 경영난으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괜히 이직했나, 거리가 멀어도 전 회사를 다닐까, 여러 번 후회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회사를 두 번 옮겼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일과 장소에 적응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약한 멘탈이 너덜너덜 해졌다가, 아물었다가,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이 불안했다. 일도, 인생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도 이제 먹을 만큼 먹어버렸다. 갈등하고 울고, 찡그리고, 힘내보자 으쌰으쌰 하다가, 억지로 억지로 살아내는 동안,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마흔셋이 되었다. 아니, 만으로는 마흔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청년이라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일 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왜 이렇게 늙었냐며, 혹은 왜 이렇게 살이 쪘냐며, 한 마디씩 한다. 만나자마자 알 수 있는 건 외형이니까.
탈모도 심해져서, 앞 이마가 훤하고, 구레나룻은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새치 찾던 게 엊그제 같은데, 머리칼이 너무 많아서 숱 쳐달라고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동안이란 말도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진하다. 칼집을 낸 듯 날카로운 금이 그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 눌린 자국도 지워지지 않는다..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 비어있는 부분이 너무 잘 보인다.
듬성듬성. 잡초. 세렝기티. 황야의 무법자. 사막 선인장. 사막화. 세계의 녹지는 사라지고,
나는 중년이 되었다.
몸은 삐걱이고, 부스러지고, 어딘가 어긋난다. 어딘가 부족하다, 듬성듬성.
머리 위에서 풀 뽑는 소리가 들린다.
늘어나버린 뱃살, 온몸이 중력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다. 바닥으로 쳐지고, 늘어진다. 청년의 생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술 먹고, 거래처 만나서 술 먹고.
살려고 그런 거야. 살려고 하다 보니, 하다 보니, 살이 쪘고,
시간은 앞으로만 가고 돌릴 수 없으니까.
다시 돌려다오, 내 청춘아.
엉엉엉.
울면서 빌어봐도 그 시절은 돌아오진 않는다.
나는 이미 중년이다.
예전에 나이가 든 나를 어플로 본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낯설었던 그 모습이 지금의 나한테서 보인다. AR로 보던 노인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새로운 시도를 겁내고, 사람들과 말 섞는 것도 두렵다. 어차피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가끔 천년이나 이천 년쯤 된 오래된 고목을 생각한다. 썩고 잔뜩 갈라지고 축축한 이끼로 덮인 오래된 나무.
자, 여기까지 하자. 중년이 되어 예전보다 늙었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불안하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살아야 한다. 살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하늘 아래 존재하니까.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니까.
불안의 숲에 있더라도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는 한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중년은 처음이라 그래. 그리고 변화를 많이 겪을 수도 있어. 괜찮아. 다 살다 보면 겪는 일이야.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당연히 아닐 때도 있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살아 있으면, 내리쬐는 빛을 느낄 수 있어.
2024년에 나는 ‘적응’이 테마였다.
휴직하고 복귀해서 적응하려고 애썼고, 그게 잘 안 됐지만, 그 이후에도 다른 회사들에서 적응하려고 애썼다.
변화하는 삶 자체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자존감이 하락하는 나 자신에,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나 자신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애썼다. 고생했다.)
2025년 나의 테마는 평온 Peace 다.
2024년에도 평온하려고 애썼지만, 변화하는 주변 상황에 휘둘릴 때가 많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애썼다. 고생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휘청거리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평온하고 싶다.
평온은 ‘외부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고요하기 위한 내면의 의지’라고 정의했다. (나만의 정의를 생각하면,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인지할 수 있다.)
앞으로도 변화가 많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곧 망할 수도 있고, 정리해고 당할 수도 있다. 혹은 잘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이직할 수도 있다.
혹은 회사를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완벽한 백수로서 지낼 수도 있다.
모른다. 지금은. 어찌 될지.
그러니 평온해지기 위해,
아무래도 괜찮다.
지금도 어떻게든 해내는 나를 칭찬한다.
살아있는 오늘에 감사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한 나를 칭찬하다.
~에 감사한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정과 칭찬, 감사를 무기로 2025년의 테마, 평온한 삶을 살겠다.
늙었다. 주름이 생겼다. 몸이 쑤신다. 무릎이 아프다. 돈이 없다. 사람들이 욕한다. 잔소리한다. 경멸한다. 따진다. 칭찬한다. 인정한다.
외부의 조건들을 컨트롤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내 마음을 적극적으로 고요하게 하려는 의지와 노력.
다만 힘쓸 뿐이다.
얘기가 돌고 돌았고,
딴 곳으로 샜지만,
다시 돌아와 올해의 목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1. 육체의 미니밀리즘 - 체중 감량, (달리기, 식단조절)
2. 멘탈의 미니멀리즘 - 평온, (명상, 독서, 달리기)
3. 재테크의 미니멀리즘 - 절약 (절약, 소소한 투자)
남들 다 하는 비슷한 결심.
새해니까, 다시 해본다.
어떻게든, 해본다면,
초보 중년의 삶에도 변화가 스며들겠지.
중년은 처음이니까.
초보 중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