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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hee Nov 20. 2024

은유와 환유

‘그것은 이거였어.’ 라고 한 문장으로 설명될 때 싸움은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이거였지...또 이거였지...’라고 끝없이 이유를 설명할 때 싸움은 계속된다. 그러니까 싸움이 끝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건 종결이고 관계의 마침표고 끝내 결별을 선언하는 거다.


10여 년의 불화, 간헐적 다툼 그리고 2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냉전의 끝에 남편이 갑자기 사과를 해왔다. 일단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한 후 그래도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내게 해준 것이 너무 없었다며 그걸 불평할 때마다 욕먹는 거 같아 기분이 상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남편의 사과는 왜 뜬금없이 시작되었을까? 어떤 위기감이 느껴져서일까? 하지만 나는 사과는 됐고, 오직 소원은 하나임을 알렸다. 막내가 대학을 가면 이혼을 하고 집을 떠나려 한다는 소원. 이 말에 남편은 또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내왔다. 하루 이틀 그리고 나는 남편을 차단했다. 남편은 할 말이 많을지 몰라도 나는 들을 말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할 말이 없나? 남편이 나를 실망시켰던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내게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밥을 식당에서 주문해 먹자.” 내게 어떤 공감도 없이 차갑게 던지던 말.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모든 밥을 사먹을 수 있을까. 현실적이지도 않은 그 말은 그저 나를 공격하기 위한 거였다.

열이 펄펄 끓는 나를 두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깨질 것 같은 두통을 참으며 초등학생인 첫째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학교를 보냈다. 한 시간씩 젖을 먹는 둘째를 안고 엉엉 울었다. 남편은 자신의 술병에는 쉽게 휴가를 내지만 내가 아플 때는 언제나 회사로 사라진다. 허리가 아파 돌아눕지도 못하던 날도 남편은 아무런 걱정없이 출근을 했다. 나는 아직 어린 첫째에게 언제 울지 모를 돌쟁이 막내를 맡기고 정신없이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둘째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남편은 거의 밤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 늦게 잠들었다. 아침에 의사가 회진을 와도 잠에서 깨지 않았고, 그들의 동정어린 눈빛을 나혼자 감당했다.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어 악몽을 꾸며 몸부림칠 때 고함치듯 나를 깨었다. 시아버지 병간호에 대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남들에게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 말하며 나를 지목했다. 싸울 때마다 나를 이상한 사람취급하며 내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고 내 성격을 헐뜯었다.

하지만 이 말은 남편의 가스라이팅과도 같다는 것을 내가 증명 시켰다. 남편은 내가 엄마에게 쌀쌀맞고 친구도 없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늘 내가 가장 다정한 딸이라 말했고, 나는 친구가 많지 않을 뿐이지 살면서 한 번도 절친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결혼한 후에도 꾸준히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무슨 말이냐고 말했다. 그렇게 내가 반박하기 전에는 남편 때문에 내가 성격 파탄자인 줄 알았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일들은 남편이 사과하는 내게 잘 대해주지 못했다는 말과는 관련이 없다. 남편은 일에 미쳐서, 돈을 벌어 가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목표라 나를 서운하게 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가서 일 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는 남편이 있다해도 그 말과 행동이 바르다면 누가 그 남편을 미워할까?

완전히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말들이 필요없기도 하다. 저 말들은 환유일뿐이다. 끝없이 새로운 원망을 떠올려서 그 원망을 탐닉하는 것이라 싸움은 끝나지 않고 관계도 끝나지 않는다. 그냥 한마디의 은유만 남을 때 싸움의 쾌락은 정지되고 관계도 끝난다.

이제 나는 한마디의 은유를 찾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의 질문을 던진다.

 “내가 불쌍한 적이 있었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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