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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 말이 맞아

by 토히

귀가 얇다고 해야 하나? 나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생각이 180도로 확확 잘 바뀐다. 그렇다고 사기를 당하거나, 남의 말에 휘둘려 사고를 치는 성격은 아니다. 단지 내가 편해지는 방향의 말들에는 아주 잽싸게 마음을 바꿔버린다. 오랜 세월 짓눌려 오던 불안이든, 근거 없이 믿어왔던 신념이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일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말에는 정말 민감하게 반응한다.


친구가 한마디 한다.

-그냥 도로 연수 받고 차를 사지.


그 말을 듣고 막혔던 숨이 펑 뚫리는 것 같았다. 20년 전 장롱 면허였던 나는 운전을 시작하며 도로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10여 년 운전을 놓고 있다가 다시 장롱 면허인지 되었다. 중간중간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심장은 쿵쿵 뛰고, 손에 진땀이 나서 운전석에 앉을 수가 없었다. 운전으로 큰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이건 트라우마 아닐까라고 자가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쉰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지금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운전을 못할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친구가 한마디의 해답을 준 거다.


한번 도로 연수를 받았다는 기억이 또 다른 도로 연수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착각이지만, 나는 마치 도로 연수를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생각했는가 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로 도로 연수는 여러 번 반복 가능한 단과 수업임을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도로 연수를 받았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는 커녕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동생도 한마디를 던진다.

-그게 뭔 상관이야. 그냥 엄마만 봐도 돼!


이십 년 동안 명절마다 가던 시가 방문을 인제 그만둘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남편은 동의했고 몇 년 전부터 혼자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시가를 가지 않으면서 엄마만 뵈러 가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 엄마에게도 가지 않았다. 겨우 명절이 지난 그 주의 휴일에 엄마 집을 방문했다.


그 설에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몇 년 동안 해외에 있다 돌아온 동생이 설에 언제 오냐고 했고 나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설 당일에는 못 가고, 토요일에 갈게.

지금껏 엄마나 언니는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 줬는데 동생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시가에도 안 가는데 엄마한테만 가기가 좀 그러네.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동생이 한 말이 바로 그게 뭔 상관이냐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나는 즉시 그 말을 잡아챘다. 맞지 않아? 왜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야? 명절에 남들처럼 엄마 좀 보겠다는데 뭔 도리를 찾고 난리야. 남편은 꼬박꼬박 명절이면 혼자서라도 자신의 엄마를 보러 가는데 나는 왜 그럼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동생의 말 한마디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풀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웃으면서 엄마를 보며 명절을 즐긴다.


언니의 한마디도 있다.

-그냥 쉬면서 살아.


뭐라고? 지금쯤이면 다들 나보고 일을 찾아보라고 하는데 언니는 다른 말을 했다. 정년퇴직을 몇 해 앞두고 언니는 엄마를 더 잘 돌보겠다고 명예퇴직을 했다. 30여 년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언니 앞에서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나는 약간 주눅이 들어 있었다. 명예퇴직이란 기만적인 명명의 명예도 내게는 근사하게만 느껴졌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다 자랐고, 주변 사람들도 뭐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이리 어려운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겨우 주민센터 모집에 서류를 넣고 기다리기를 몇 번 매번 탈락 문자를 받았다.


그런 실망이 계속되던 중 오랜만에 언니를 만났다. 당연히 내 신세 한탄을 했다. 그 한탄의 속내는 내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이었다. 전업주부라는 말의 설명할 수 없는 자격지심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명예로운 직장 생활 퇴직자는 내게 말했다. 그냥 쉬라고. 그리고 나는 그 말 앞에 ‘이젠’을 붙여 들으며 내가 여태 열심히 일을 해왔음을 인정했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입으면 되지 남들 퇴직하는 나이에 직장 없는 걸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나 싶었다. 언니의 계시와 같은 한마디로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생각이 고여 있어서 사람을 심각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내 생각에 답답하게 사는 것 같은 사람은 주변에 한마디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일까. 가볍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한마디를 해줄 사람이었나 보다. 누구나 흔히 하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듣는다면 좀 삶이 느슨해질 텐데 말이다. ‘그 나이에 무슨 운전을 다시 시작하냐.’ ‘며느리가 돼서 어째 그러냐?’ ‘아이도 다 자랐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지 말고 저임금 노동이라도 찾아봐라.’ 이런 흔한 말들 대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내게 그런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숨통이 트인다. 그런 말에 팔랑거리는 소중한 귀가 있어 늘 ‘맞아, 그 말이 맞아’라 맞장구치며 가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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