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hee Nov 13. 2024

착하다는 칭찬


학기가 끝나면 아이는 롤링 페이퍼를 들고 돌아온다. 친구들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하지만 아이는 사생활이라며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단 하나만 궁금해하기로 한다.


“착하다는 말이 있어?”


“없어.”


나는 그 말에 안심한다. 아이가 밖에서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지 않으면 걱정할 게 없다는 신념이 있다.


착하다는 칭찬은 착하지 않다. 롤링 페이퍼를 쓸 때 관심도 없고, 친분도 없는 경우에나 쓰기 좋은 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는 그만의 특징을 찾아볼 생각이 없을 때나 할 법한 말.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차라리 욕을 먹겠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기준은 이걸 하면 내가 착한 사람이 되느냐 안되느냐일 때도 있다. 악한 사람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이번 추석에는 엄마 집에 오라비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명절이라고 잘 들르지도 않고 들른다 해도 30분을 앉아 있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다. 엄마한테 오면서 어떻게 빈손으로 오냐고 욕을 먹어도 늘 꿋꿋이 빈손으로 오더니 그날은 과일과 과자 상자를 잔뜩 들고 왔다. 내년 봄에 있을 조카의 결혼식을 위해 화목한 가족의 역할극을 하고 싶었는가 보다.


갑자기 나타난 오라비는 오랜만이라며 내게 악수를 하자고 했다. 손끝도 닿기 싫은데 왜? 착한 사람이 아닌 나는 악수를 거절했다. 거실 가득 모여앉아 수다를 떨 때 그 헛소리가 듣기 싫어 식탁으로 물러나 앉았다. 착한 사람이 아닌 나는 사이좋은 가족인 척 하하 호호 웃어 줄 수 없었다. 이전에는 어떻게든 냉랭한 분위기를 없애려 친밀한 몇 마디는 건내 던 나였다.


하지만 엄마가 전해 준 말을 들은 나는 더는 적당한 예의를 보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제일 착한 딸이라고 말하며 오라비 말을 전했다.


“네가 제일 착해서 편하다고 하더라.”


가끔은 칭찬이 욕보다 더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엄마 마음이 불편할까 적당히 예의를 보인 결과가 이것인가? 다른 자매들만큼 오라비를 싫어하지 않아서 상대해 준 것이 아니다. 늙고 병든 엄마를 여동생에게 다 맡기고 자신만 편히 사는 이기적인 오라비를 내가 어떻게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데 착해서 편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게다가 나를 착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가지가지 요구가 많다. 마치 다정한 오라비인 것처럼 헤헤 웃으며 악수를 하자며, 불청객일 뿐인 자신을 환대하길 바란다. 떨떠름한 모임을 내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 믿는지 나를 과하게 반가워한다. 하지만 나는 오라비를 무시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네가 나를 착하다고 했다는 건 모욕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네 입에서 착한 동생이란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 기대하시라’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 2급 자식으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