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
물국수 위에 올라가는 고명과 양념이 싫었던 어린 시절, 엄마가 고추장, 식초, 설탕만 넣고 새콤달콤하게 비벼 주신 ….비벼서 그릇에 담기 전, 마치 간을 보듯 몇 가닥 입으로 바로 받아먹었던 비빔국수.
(난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품앗이라는 시스템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농사일에 일손이 부족한 건 매 한 가지였던 것 같다.
여튼 농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새참’이라는 건데 물국수를 준비하는 집들이 많았다. 휙휙 말아서 후루룩 한 그릇 먹기 좋아서 그랬는지 … 빨리 먹고 일을 하려고 그랬는지…
내가 꼬맹이 땐 엄마가 다른 집 농사에 품앗이를 가면 새참 먹을 시간에 그 집 논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국수한 그릇을 얻어먹곤 했었다. ㅋㅋ 간식이란게 따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물국수 위에는 늘~~ 아이들이 싫어할만한 고명들이 올려지기 마련이라… 물국수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아 마 도 )
지금은 각종 야채와 삶은 계란이라도 올려야 비빔국수가 완성되지만, 그때 나는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았던 그 국수가 더 좋았다.
바로 그날부터 비빔국수란걸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맨 손으로 국수를 버무렸던 그릇이 이 초록색플라스틱 볼이다.
비빔국수랑 세트로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 플라스틱 볼은 우리 엄마와 함께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비빔국수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을 테고 현재까지 친정집에 남아 있다.
얼마 전 친정 간 김에 사진 찍어 온다는 걸 깜빡하여 뒷날. 엄마에게 부탁했더니 이렇게 찍어 보내주셨다.
사실 말이 좋아 볼 이지 양푼이, 양재기에 가깝다.
쌀 씻는 양재기, 스뎅양푼이도 있었지만 이 플라스틱 양푼이가 추억의 물건이다.
(요즘엔 나조차도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 운운하며 스테인리스 제품을 선호해서 플라스틱 제품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
가보로 남기기엔 너무 볼품없는, 너무 오래 써서 색도 바랜 , 깨지면 그만인 플라스틱이지만 나와 우리 엄마, 내 여동생 정도까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골동품인 것이다.
가벼워서 쓰기 편했던 우리 엄마의 부엌살림.
얼마를 주고 산 것인지 모르지만 뽕을 뽑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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