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etit Prince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비보티비에서 시작한 선안(신봉선의 선, 안영미의 안) 영향력이라는 콘텐츠(독서 프로젝트)의 선정된 책이었고, 워낙 유명한 책이라 다시 읽어보기로 생각했다. 필자의 주관대로 지나치게 솔직한 리뷰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꼬투리를 잡고 싶진 않지만 중요한 것들 중 눈에 보이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불행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돈도 역시 눈에 보이는 것 중 하나다.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돈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 현대 사회에서의 돈은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이 동화를 나는 어릴 적 읽었을까?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읽다 보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나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는 왜 어린 왕자였을까? 어린 왕자는 왜 장미에게 그토록 애정을 쏟았을까? 어린 왕자는 왜 어른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어른의 입장에서 읽은 어린 왕자는 조금 이상한 아이 었다. 어린 왕자가 본 어른들이 이상했다면 어른들이 본 어린 왕자 역시 이상했을 것이다.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정의는 없는 것 같다.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뿐.
어린 왕자는 왜 열심히 숫자를 더하는 어른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열심히 가로등 불을 켜고 끄는 어른은 성실하다고 생각했으나, 숫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까? 나는 사실 무언갈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는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언가가 하찮은 일이라 해도 꾸준히 뭔갈 한다는 것 자체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어린 왕자의 생각에 수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이상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어른 역시 무언갈 열심히 하고 있다면 나는 성실한 어른도 어린 왕자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아이가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추석날 형보다 적은 금액의 용돈을 받았다고 우는 아이는 순수한 아이인가? 숫자를 따지는 아이라면 어린 왕자 말대로 이상한 아이인가? 모르겠다. 동화를 동화로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왜 이 동화가 전 세계사람들이 다 읽어야 하는 추천 도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동화는 194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그때는 이 동화가 정말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를 일깨워주는 동화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수많은 좋은 동화가 나왔기에 내가 더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읽었던 탈무드가 훨씬 더 좋았고, 세계명작동화가 훨씬 더 재밌었으며,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나에겐 더 좋은 동화라고 생각되었다. 과거에 나는 이 동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차 기억이 없지만, 아마 아주 어릴 때가 아니라면 조금 더 예전에 읽었더라면 더 높은 평점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면 읽어볼 만하지만 글쎄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게 없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