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칼럼_꿈꾸는 2040
안녕하세요, 전태일 형. 형은 지금의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스물두살에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서 젊은 육신에 불을 댕겼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모두가 인간임을 선언했고, 분신항거의 불꽃은 지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아직도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형의 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너무 답답한 일이 많아서 이렇게 형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광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광주는 역사 속에서 늘 정의로웠고, ‘나보다는 우리’에 먼저 관심을 가졌던 고장입니다. 그런데 최근 광주에서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견제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통제수단으로 전근대적인 노동탄압이 이뤄졌습니다. 시 산하의 출연기관에서 부당해고는 물론 인권을 유린하는 직장 내 갑질이 만연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첫 노사상생 일자리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탄생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직원을 채용하는 면접 과정에서 노조가입의사를 질문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적대시하는 듯한 질문과 사상검증으로 입사 후 노조활동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주장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해명은 더욱 가관입니다. 실제로 면접관이 노조가입의사에 대해서 질문은 했지만, 점수반영은 안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일할 곳을 찾기 위해 76:1의 경쟁률을 마주하며, 점수에 반영되지도 않을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애썼던 지원자들을 두 번 울리는 발언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GGM은 지난해 8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GGM 자동차 공장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재발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GGM 프로젝트에 시민들의 혈세 483억원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신축공장 건설 하도급업체 노동자 200여명은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먼저인 2021년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애꿎게 목숨을 잃은 ‘산업전사’에 대한 위령비를 세우며, 고속도로 조기 완공과 개통의 명분을 찾는 시대가 아닙니다. ‘빨리빨리’보다 ‘꼼꼼하게’, ‘생산’보다 ‘창조’, ‘성장’보다 ‘신뢰’가 더 중요합니다. GGM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GGM 뿐만이 아닙니다. 2019년과 2020년도에 각각 광주형일자리 선도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호원과 기광산업(주)은 노사상생기업이 아니라, 노조탄압 사업장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에 가입할 것을 회유하고,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이 사실이라면 노사상생도시 광주를 주창해왔던 광주시는 두 기업에게 주어진 광주형일자리 선도기업 인증을 즉각 취소하고, 그동안 이뤄진 특혜를 회수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노사협력 문화 정착으로 노사가 함께 성과를 공유하며 발전해나가자는 포용과 상생의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와도 전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코로나19로 지역경제 상황이 어렵고 고용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고없는 도시’를 선언한 전주시의 용기와는 너무 비교되는 일입니다.
최근 광주시 산하 출연기관인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부당해고와 대표의 갑질로 인해 충격을 받은 노동조합이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10년동안 근무한 부장을 계약 만료 당일에 아무런 예고없이 계약을 해지하며 퇴사시켰고, 일부 노동자들은 대표로부터 “생각을 좀 하라고 생각을”, “그만두고 나가서 애나 낳으라고 해”라는 폭언과 갑질을 당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광주비엔날레 김선정 대표의 행태를 계속 묵인하는 것은 민주도시 광주에서, 그리고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할 광주비엔날레 재단에서는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광주비엔날레 노조는 말합니다.
전태일 형!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를 지향하고, 노사협의로 일자리를 지키자며 대한민국의 상생일자리를 선도하자는 광주에서도 노동자 간 차별과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취약한 노동자는 더욱 취약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형의 시선은 항상 낮은 곳에 있었고, 실천은 구체적이였습니다. 이제 우리 광주, 어떻게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