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어리다고 모르지 않는다

by 담쟁이캘리



어릴 적 내 동경의 대상은 '어른'이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 멋지게만 보였다. 휠체어나 엄마가 없이는 무언가를 마음속으로 결정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던 나에게 '어른'은 만능으로 진화되는 시기 같았다. 특히 어린이들이 하는 의사결정의 대부분은 어른을 통해야 했으므로 대단한 결정권자 같았다. 마치 '저 날 때부터 여섯 살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 지냈으니 이제 그만 걸을래요.'라고 했을 때, 어느 어른이든 '그래'라고 해 주면 걸을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열심히 믿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타클로스 자체를 믿었다기보다는 울지 않고 참으면 선물을 주는 어떤 영험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소통하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생활 당시 나는 '울지 않는 아이'로 통했는데,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근육이완 주사를 맞고도 울음을 참은 이유도 바로 그 믿음 때문이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으면 선물을 받을 거라는 믿음.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보다 불리한 출발선에 놓인 삶이니 불현듯 기적이 찾아와 팍팍한 현실을 위로해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듯하다.

설사 운 좋게 살아서 태어난다 해도 걷지 못할 거라던 의사 말을 뒤엎고 살았을 때도, 여섯 살 때 휠체어 없이 두 발로 걸어서 퇴원했을 때도. 어른들의 말대로 울지 않고 버텨 낸 끝에 받은 보상인 줄 알았다. 불완전하지만 스스로 걷기 시작했을 때, '내 몸이 남들과 같아져 가는 과정'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걸음마를 떼는 속도가 느릴 뿐 동등한 출발선에 설 때까지 기적이 이어지는 줄 알았다.


나의 현실을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속 공주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잠시 '이상한 마법'에 걸려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 감기쯤으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동화가 권선징악이고 결국은 주인공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로 끝맺는 것처럼 결국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루 세끼 밥 잘 챙겨 먹고 잘 자면 쑥쑥 키가 자라는 것처럼 굳은 내 다리 근육도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낫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밥을 먹든 잠을 자든, 뭐든 열심히 했다. 나 역시 내 삶의 주인공이니 동화처럼 당연히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 덕분에 병원생활이 외로웠어도 슬프지는 않았다.


길었던 병원생활을 마치고 걸어서 퇴원했을 때도, 태어날 때 걸린 이상한 마법'이 드디어 풀리는 중인 줄 알았다. 동화 속에 왕자가 있다면 현실에서는 어른들이 내게 걸린 마법을 풀어 줄 거라고 믿었다. 어른들 말대로 울지 않고 버텼던 대가로 받은 선물인 줄만 알았다.





스스로 어른을 더욱 동경하도록 만든 나의 두 번째 세상은 유치원이었다. 유치원 이름은 '무지개'였고 일곱 살인 나는 '사슴반'이었는데, 정말이지 어른에 대한 환상을 키우고도 넘치는 이름이었다. 비 온 뒤 갠 하늘에 평온에 대한 언약의 의미로 핀다는 무지개가 유치원 이름인 것도,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일을 돕는 사슴반이라는 것도 모두 운명처럼 느꼈다.

그때 그곳에서 만난 첫 담임 선생님 H는 더욱 큰 존재 같았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사는 무지개 유치원에서 사슴반 아이들을 통솔하는 어른이라니! 그녀가 참새나 병아리를 부르면 아이들이 하나같이 '짹짹' 또는 '삐약삐약' 대답하며 졸졸 따르는 모습이 대단하게만 보였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 말을 잘 들었다. 등원할 때마다 입구에 놓인 멸치를 한 마리씩 먹고 들어오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줬는데, 친구들은 멀리하는 멸치를 거르지 않고 먹었다. 그 정도로 뭐든 열심히 했다. 그렇게 그녀의 눈에 들고 '착한 아이'가 되어 하늘나라에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런데, 열심을 다해도 그녀는 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자꾸만 혼자 두거나 나중에야 겨우 챙겨줄까 말까 하면서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은 내가 가장 많이 받았는데….



"선생님, 왜 나는 다른 아이들이랑 다르게 대해요?
내가 아이들이랑 다르게 다리가 불편해서 그래요?"



습관처럼 소외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무리와 떨어져 걷다가 멀찍이 걸어가는 그녀를 불러 물었다. 살짝 당황한 듯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물어보고 올 것이 있는데, 나를 돕는다 생각하고 조금만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느냐고….



"응? 뭘 물어봐?"
"제 다리 언제 완전히 낫는지요. 지금 낫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 날 저녁, 유치원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전화기를 오래도록 붙들고 있다가 나를 불러 바꿔 주었다. 그녀는 내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도 H가 말해줘서 알았다며 그녀도 아주 미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당시, 나는 그 사과를 '미안하지만 하늘나라에는 데려다줄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하겠다는 말에,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 안도했다. 친해지고 나면 그때 다시 부탁해 볼 심산으로 그 사과를 받았다.





그 후 H는 나를 둘도 없는 친구처럼 챙겼다. 사진첩 속에도 유난히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이름 석자가 또렷할 만큼 그녀는 나에게 각별했다. 불현듯 추억에 젖어 사진첩을 꺼내 보는데, 엄마가 H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기억나지? 너 몸 불편하다고 다른 애들이랑 차별했던 거. 네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또박또박 말하니까 사과했었잖아. 그 뒤로 너 엄청 챙기고…."
"H 선생님이 그 일로 나한테 사과했었다고?"



엄마 말에 따르면 그 당시 그녀도 처음 담임할 때였다고 했다. 그녀는 여느 아이들과 다른 내 모습에 어찌 돌봐야 할지 몰라 은연중에 소외시키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차별 대우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고작 일곱 살밖에 안 된 내가 '나를 다르게 대하는 이유가 내 다리 때문이냐'라고 대놓고 물으니 적잖이 당황했다고 했다. 그 날 오후 바로 원장 선생님에게로 가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잘못을 터놓았다고 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고….

오래전 그날 밤, 나는 '어른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때 내게 겪은 것은 분명 차별이었다. 고작 일곱 살에 불과했던 내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어려도 모르지 않고, 뭐든 어른의 행동과 생각을 눈치 챈다는 것. 다만, 그때의 내가 그 행동의 이유를 다르게 받아들였을 뿐. 차별받고 소외당한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그러므로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거나 놀려서도 안 된다.

스스로 동경하던 어른이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득 과연 나는 그녀처럼 반성하는 어른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스물여섯이었고 그 유치원이 첫 직장이었다. 직장상사에게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교사로서의 '자격'을 운운하면서 반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이었는지 가늠해보다가 그런 선택을 해 준 그때의 그녀에게 고마웠다. 한 편으로는 만일 내가 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였다면 계속 이어졌을지 모를 차별을 상상하다 무서워지기도 했다. 그나마 나는 표현을 했기 때문에 그쯤에서 그쳤고,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던 덕분에 혹시 모를 비극을 막았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키운 나의 환상은 현실에 부딪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감기처럼 지나가는 줄 알았던 핸디캡은 여전히 남았고 '어른'은 하늘과 소통하는 멋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의 첫 담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던 어른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위로가 되었다.





반대로 자기표현이 서툰 어린이들은 오죽할까. 나의 옛 기억을 돌아보며 스스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고민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말 못 하는 동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아동학대'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하던 어떤 기자는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정 인물의 악행을 낱낱이 보도하며 그들을 '악마화'하는 일을 가장 경계한다. 그러면 악마를 처단하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이 다 끝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 비극은 계속해서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의 감정만이 아니라, 이 일을 계기 삼아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부터, 그리고 여러분부터 먼저 바뀌어야 하고 또 어떻게 바꿔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어른의 힘을 남용하듯 휘두르는 동안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간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어른의 무관심과 방임으로 죽는 것과 다름없는 산송장 같은 삶을 사는 아이들도 있다. 힘없고 말 못 하는 것으로 친다면 학대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쉽게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일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그들은 '어른'을 먹이사슬 꼭대기에 위치한 최상위의 포식자쯤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힘 있는 어른이 말 못 하는 아이들이나 동물을 지속적으로 학대하는 것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살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을 처벌하는 법은 '솜방망이' 수준이라, 그에 맞게 처벌 강화해야 된다고도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며 철드는 사람으로 태어난 도리로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힘 있는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무자비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에 인용한 기자 말마따나 우리가 할 일은 '처단'이 아니다. 어른의 역할은 '거울'이다. 잘못된 행동을 훤히 비추고 그 모습을 고쳐주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역할이다. 옛말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뜻인데, 무슨 일이든 자기 심신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일은 '거울'을 닦는 일과도 닮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당신의 거울이 어떤 것을 비추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그들이 춤출지 울상을 지을지 심지어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좌우하는 것이 어른의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어른의 자리'에 앉는 때가 온다. 미성년의 시기를 지나면 모두 예외 없이 성인의 자리에 앉는다. 세월에 따라 거저 앉는 자리지만, 진정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사는 동안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했다. 어른으로서 가진 '힘'을 말 못 하고 의사소통이 서툰 이들에게 함부로 휘두르지 않겠다는 것. 어린 시절, 나에게 '어른'이 동경이 대상이었듯이 어떠한 삶이든지 함부로 밟거나 꺾으려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꽃 감상법

/ 담쟁이캘리




수많은 생이 오가는 삶
흔들리며 흐드러지게 피고
꺼지듯 숨지는 모양이
한 떨기 꽃 같아


코끝 간질이는 향기에
홀리듯이 따라 걸어도 부디,
이제야 꽃망울 터뜨린
그 꽃 꺾지 않길


수많은 생이 오가는 삶
흔들리며 피는 수만 가지 꽃
함부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기를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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