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짧은 그와 영영 헤어지던 날
오빠는 이름이 뭐야?
나도 우리 집에 오빠 있는데….
친구 생긴 게 그렇게 좋아?
오빠, 혹시 멀어서 못 오면
그때는 내가 찾아갈게.
뇌성마비로 태어나 평생 못 걸을 거라던 나는 여섯 살 때 뒤늦은 걸음마를 뗐고, 재활을 통원치료로 전환하며 기나긴 병원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머리 길이를 '성별 구분표' 쯤으로 이해하던 우물 안 개구리 세상은, 아홉 살 무렵 같은 반에서 커트머리 여자 아이를 만나면서 깨졌다. 그제야 나의 첫 남사친이 여자였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그를 끝까지 오빠라 부르던 기억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럽기도 했다.
반 친구들에게 말해도 그 시절, 병원에서의 일상을 공감하지 못했고 늘어놓는 말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비칠 뿐이었다. 그래서 꽁꽁 숨겨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겨 두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세상이 아무리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작았다 해도, 내가 살던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외딴 방 같던 병실에서 깨고 잠드는 동안 나에게도 똑같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수없이 벗어나고 싶었던 쳇바퀴 같은 일상이었지만, '살 가망이 없다'던 비보를 뒤엎고 살아난 곳이었다.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던 그 말에도 기어코 걸어서 퇴원하던 것도 모두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단언컨대 내 생애 가장 많은 기적을 만난 곳이 나의 작은 세상이자 외딴 방에서였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일임을 배운 것도 그곳에서였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보통의 일상이라도 그만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는 사소한 사람도 사소한 일상도 없었다. 그저 나만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을 뿐. 사람 사는 풍경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흘렀다.
談담쟁이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