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다

by 담쟁이캘리



선택의 기로에 서면
습관처럼 답을 고민했다.



인생에는 답이 없고 연이은 선택만 있을 뿐이다. 알면서도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매번 내 선택을 답안지처럼 들고 서서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채점하기 바빴다. 그중에도 제일 어려운 선택지는 직장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은 책임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 공간이자 스스로의 생계와 직결된 곳이므로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부모의 보살핌으로부터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일이므로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도 선택은 늘 어려웠다.





멈춰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누가 알려주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어떤 선택은 하고 나서도 개운치가 않았다. 직감을 따라 간 선택이 '대박'일 때도 있었고 삼고초려 끝에 한 선택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기도다. 몇 해 전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간 쉬고 재취업을 준비할 때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갔던 직장이 그랬다. 여느 때보다 오랜 시간을 들인 선택이었지만 당장의 두려운 상황을 모면하려던 도피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처음 지인에게 스카우트를 받을 당시 나는 요양 중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만난 '악덕 상사'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온몸에 염증이 퍼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치솟는 염증 수치에 입안이 헐고 38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음식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하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둔 터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때 지인은 나와 함께 일할 수 없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흘러 재취업 준비를 할 무렵, 그는 또다시 입사 제안을 해왔다. 직전 연봉보다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아 재차 거절했다.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느니 직접 구하고 싶었다. 나 핸디캡을 가지고 취업하는 것은 신입이나 경력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채용 면접인지 인생 면접인지 헷갈릴 만큼 면접관들은 내 지난 시간을 멋대로 재단하기 바빴다.






'나'라는 사람이 '핸디캡'이라는 세 글자로 퉁쳐질 뻔했다.


그들이 건네는 말 안에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1.5kg의 작은 체구로 홀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생과 사투를 벌이며 삶을 쟁취한 이야기도, '살 가망 없으니 사망신고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뒤엎고 한 달 만에 호전되어 기어코 출생신고를 했던 불굴의 탄생기도,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유년기 내내 병원에서 휠체어 신세만 지다가 오랜 재활 끝에 여섯 살 때부터 결국 걷게 되었다는 '끈질긴 노력이 일궈 낸 기적'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다. 핸디캡이라는 세 글자로 퉁치기에는 섭섭한 삶이었다.


내 사전에 핸디캡은 '조금 불편한 어떤 것'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장애' 혹은 '약점'으로 읽혀 잘못한 것도 없이 주눅 들게 했다. 세상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지나치게 예민했고 또 엄격했다. 때문에 누구보다 힘들게 사회에 발을 들였고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신입이 아닌 경력이니 순탄할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지막 최종 면접에서 연이은 고배를 마시며 난관에 부딪혔다. 당장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면접장에서야 나에게 핸디캡이 있음을 알고 하나같이 다 채용 결정을 번복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자격요건에도 분명히 '장애인 지원 무관'이라고 쓰여 있었음에도 가는 곳마다 난색을 표했다. 신입도 아닌 경력이고 직전까지 문제없이 회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핸디캡을 이유로 또다시 취업난을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걷는 게 조금 불편할 뿐 직장 생활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제약이 없다'라고 말했으나 몇 번을 말해도 소 귀에 경 읽는 듯했다.




"진짜 정상 보행이 가능해요?"

"네, 면접장도 혼자 대중교통 이용해서 왔습니다."

"야근이나 외근이 있을 수 있는데도 일할 수 있다고요?"

"이전 회사에서도 잦은 야근이나 외근이 있었지만 무탈하게 근무했습니다."




어쩔 때는 그들에게 나는 '걸을 수 없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면 '업무적 연관성은 높지만 안타깝게도 채용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합격 취소' 할 수 있는 그림이라도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개중에는 약속된 면접 시간보다 늦게 나타나 내 이력서를 보고 꼭 같이 일하고 싶다며 출근 일자를 조율했다가 번복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내가 면접을 마치고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핸디캡이 있음을 알고 도리어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런 사람들 때문에 내 이력서에는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꼭 적어 제출한다. 하지만 경험상 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 … 허탈함에 속 시끄러운 마음 탓이었을까.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애물 하나 없는 평지에서 걸음이 엉켜 대차게 넘어졌다.



아빠는 네가 넘어지고 들어오면
마음이 천붕(天崩)이야.



그날 밤. 술 취해 들어온 아빠가 빵 사러 가자며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나직이 말했다. 자기 속 마음을 잘 터놓지 않는 무뚝뚝한 아빠가 꺼내놓는 마음은 늘 묵직했다. 어릴 적 내 소원은 '멍들지 않는 무릎'을 갖는 것일 정도로 넘어지는 것은 '아주 보통의 일'이었다.


내게는 익숙한 일상이건만 아빠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니. 아빠가 나직이 뱉던 그 말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셔 보아도 도무지 그 말이 넘겨지지가 않았다. 불현듯 내가 평생 짐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이런데 엄마는 오죽할까. 서둘러 재취업을 해서라도 걱정을 덜어드리싶었다. 계속된 낙방에 둘러댈 변명조차 빈약해질 무렵, 결국 내키지 않던 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






인생은 얄궂게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겨우 한시름 놓았다며 방심할 때 뒤통수를 쳤다. 이래서 직감은 무시할 수가 없는 걸까. 고심 끝에 입사했던 이직처에서의 1주년을 불과 한 달 앞둔 어느 날, '퇴근 시간 10분 전' 별안간 해고 통보를 받았다. 경영상의 이유로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니 양해해 달라는 몇 마디 말을 끝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엎친 데 덮쳐 나를 스카우트 해온 지인에게 배신당하고 절연까지 하게 되면서 '가짜 선택'에 대한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그 후로 입사와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갖는 '애사심'은 사치라는 것과 '회사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행복은 '선택순'이 아닌데
뭐든 빨리 선택해 행복해지려고 했다.



불행 앞에서는 '이 또한 지나간다'는 인생의 당연한 순리를 습관처럼 망각했다. 당장 잡아먹힐 듯한 불안에 쫓겨 마음은 뒷전이었다. 두려운 상황을 피하려 서둘러 한 선택에 정작 '나'는 없었다. 시킨 사람도 없는데 눈치를 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벌벌 떨었다. 내키지 않는 선택은 항상 마음이 발목을 잡혔다. 행복해지려고 서둘러 한 선택에 행복은 언제나 끝순으로 왔다. 결국 어떤 선택으로 설사 대차게 엉덩방아를 찧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뒤탈이 없음을 깨달았다.








완벽한 선택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주인공' 자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앉혀 두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주인공이 죽거나 시련을 겪는다고 주인공을 바꾸는 경우는 없건만.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스스로를 엑스트라 취급했다. 세상의 그 어떤 이야기도 실패하고 넘어진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바꾸지 않는다. 저마다의 이야기 속에서 단 하나뿐인 주인공이므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소중해도 주조연 혹은 조연일 뿐, 그들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든 마음이 내키는 길로 가야 한다. 설사 직전의 어떤 선택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해도 운명을 탓하거나 너무 오래 슬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B(Birth)와 D(Deth) 사이 C(Choice)의 연속이니 앞으로 다가올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면 그만이다.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선택

/ 담쟁이캘리




제철도 없이 날뛰는 마음은
스물네 시간 모자라게 엎치락뒤치락 해도
순환하는 계절처럼 분명한 절기가 없어
면면이 흐르는 마음길 여러 갈래였어도



마음이 눕는 결대로 누워야
스물네 시간 뜬눈으로 뒤치락거린다 해도
팔팔하게 뛰어노는 마음은 아랑곳없어
번번이 거니는 마음길 황홀경이었다






본문의 모든 이미지는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作) 컷툰에서 발췌하였습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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