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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Mar 28. 2021

볼펜을 쓰는 어른이 된다는 것

나를 지우지 않고 온전히 쓰는 일



  어릴 적 볼펜을 쓰는 어른들을 동경했다.



수많은 것 중에 왜 하필 '볼펜'이었냐 하면, 지우개로 지우지 않고 한 번에 써 내려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이 좋았다. 볼펜을 쓴다는 것은 보통 자신이 쓰는 문장이나 글에 자신이 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물론 펜으로 찍찍 긋거나 수정펜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볼펜은 자기만의 필체가 잡혔을 때 사용해서인지 완성된 어른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툭하면 철자를 틀리고 받침이나 띄어쓰기도 헷갈려서 지우개 없이는 한 문장도 온전히 쓰지 못하던 나에게, 볼펜을 쓰는 어른은 유독 멋지게 보였다. 지우지 않고 한 번에 써 내려가는 문장이라니! 잠시 고민할지언정 답을 정하면 일필휘지 하는 모습은 가히 매력적이었다.



  '지우개로 지울 일 없는' 볼펜을 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어린 시선에,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존재로 거듭난 것처럼 보였다. 한때 재미있게 본 만화 <포켓몬스터>에 빗대자면 어른은 진화의 끝판 같았다. 살면서 마주하는 위기의 순간마다 척척 해결해주는 어른은 단순한 '보호자' 이상의 거대한 존재였다. 눈앞에 위기가 닥치면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어른들은 '척척박사'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른들이 볼펜으로 쓰는 모든 것들은 완벽한 답 같았다. 한편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볼펜의 영속성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한낱 볼펜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 나에게 볼펜을 쓴다는 것은 '감추지 않고 흔적을 남기는 용기'였다.




우리 아이는 7개월 만에 조산해 1.5kg의 작은 체구의 미숙아로 뇌성마비를 앓아 다리가 조금 불편합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자주 창피했다. 아무도 몰랐으면 했던 비밀이었던 나의 장애는 매 학년 진급할 때마다 가정 통신문 속 엄마의 글 때문에 속절없이 들켰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이라 지우개로 문질러도 지울 수 없었다. 남들에게 있는 것이 내게는 없는 '미숙아'신세라는 사실을 입 밖으로 되뇔 때, 나는 마치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엄마가 매해 빠짐없이 볼펜으로 써 내려가는 그 비문 같은 문장이 어느 순간, '미숙한 나를 감추지 않는 당당함'으로 읽힐 때가 있었다. 하나둘씩 곁을 떠나던 친구들과 달리, 내 존재를 지우지 않고 쓰는 엄마를 보며 나도 엄마처럼 볼펜을 쓰는 어른이 되면 미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7개월 만에 태어난 것 말고는 많은 것들이 '느린 아이'였다. 여섯 살이 되어서야 첫걸음마를 떼고 병원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던져진 내 모습은 '지워야 할 것 투성인 오답' 같아 보였다. 특히 그때는 너무 어려서 나의 장애를 감기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으므로 빨리 어른이 되어 낫는 것만 바랐다. 병명의 방점을 뇌성마비가 아닌 '미숙아'에 찍었으니 이를 테면 시간에 기대어 부푼 꿈을 꾼 셈이다. 볼펜을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라고 여기며 '나와라, 뚝딱' 하면  진짜 무엇이든 이뤄질 줄 알았으니 정말 엄청난 동심이었다.



  때 많은 어른이 되기는 싫었다. 공책 위 너저분한 지우개 때가 유독 창피하게 느껴졌다. 지우개 때는 옷이나 몸에 붙은 더러운 먼지 같아서 엉망진창이 된 듯했다. 매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어리숙한 모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스무 살, 성인이 되는 나이를 기점으로 거저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학년 진급하는 학창 시절처럼 나이를 먹으면 절로 자라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잘하는 어른이 될 리 만무한 일이었다. 정작 볼펜을 자유로이 쓸 줄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얼마든지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지우개가 절실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눌러쓸 줄 모르고 일필휘지로 써버린 성급한 청춘의 대가였다. 성인이 되고도 여전히 미숙아 신세를 면치 못 했다. 그때마다 풀이 죽어 얼굴에 그늘이 들었다. 나이만 성인인 그 시절, 흔들리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어른의 자유를 동경했으나, 온전히 자유를 누릴 줄 모르는 미숙아였다.



"세상 다 끝난 것처럼 표정이 왜 이리들 죽상이야?"



  속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던 대학 시절, 교수님은 수업을 하다 말고 말했다. 자신의 물음에도 뭍으로 나온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대고 죽을 상을 하고 있으니 수업을 멈추고 우리에게 물었다. 교수님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교수는 교편을 잡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선생은 먼저 살아본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에 조금 더 살아본 어른으로서 길잡이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선생'이라 부르라고 한 거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 부디 앞서 걷는 선생답기를 바란다고. 그러면서 오늘은 조금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한 마디만 하겠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이 더 만만찮지? 어른은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누리는 자유에 책임을 지는 거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일인 줄만 알았다. 툭하면 안 된다는 말과 어른이 되면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말 사이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심술부리듯  때도 있었다. 무모함인지 치기였는지 모를 행동은 그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어른의 자유에 불편한 다리로부터의 해방도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가 좌절했다.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흥청망청 쓴 자유는 곧 바닥을 보였고, 그 대가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곱절로 불어 있었다.



  선생님은 청춘이든 아니든 모두 당연하게 흔들리는 삶이라, 흐드러지게 필 때 더욱 아름다운 법이라고 그랬다. 그러니 불행을 맞닥뜨릴 때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굴지 말라고. 길이라는 게 앞에만 있는 것 같아도 오른쪽, 왼쪽, 뒤쪽 심지어 위에 나기도 한다면서 너희들이 흔들리는 꽃 같은 인생이라고 해서 절대 함부로 꺾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설령 당장 내일 아침 자기 말하는 대로 사방에 새 길이 나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같은 길이라도 그것은 '오늘의 길'이라서 어제와 다르단다. 변하는 것 없이 같아 보여도 시간은 흐르기 때문에 결코 어제와 같은 길이 아니란다. 그러니 오래 움츠려 있지 말고 일단 걸어가 보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을 곱씹으며 '볼펜을 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했다. 지우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완벽한 문장을 동경했다. 분명 어릴 때는 이보다 멋진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꼭 미숙아로 태어나지 않아도 서툰 사람들 투성이고, 모두 다르고 틀린 것처럼 보여도 썩 훌륭하거나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삶이 있다. 설사 거창한 목적이나 목표가 없이도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으로 매 순간을 자랑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 볼펜으로 써 내려간 문장이 행여 비문이라고 해도 낙담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비문 같이 느꼈던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더라도, 지우거나 감추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내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창피해하지 않았던 엄마처럼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일을 겁내지 않기로 했다. 저마다 삶의 모양과 생김새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문체가 있게 마련이므로, 시작은 비문 같은 문장일지라도 그 끝은 썩 보기 좋은 멋진 삶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자랑 삼을 미래를 동경하는 것으로 마음이 변했다. 하마터면 남들과 비교하고 평가절하하며 지우거나 감추고 살 뻔한 삶이었다.



진정 볼펜을 쓸 줄 아는 어른이 되고 보니 볼펜으로 쓸 말이 있는 삶만큼 소중한 인생이 또 없다. 이것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인상적인 삶을 살아냈다는 뜻이고, 그 흔적을 남긴 어떤 시절의 수많은 문장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뜻이므로. 볼펜을 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황홀하다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을 듯하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하루 치의 삶을 사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꽃 같은 생에게 이 말을 전하며 끝 마치련다.




열심히 피어서 예뻐요, 참.








쉽게 쓰여진 

/ 담쟁이캘리




오래 가물어
물 기를 틈 없는 메마른 마음은
시답잖은 소리만 토해내고
귓불 간질이는 바람에도
일렁이지 않는 망부석이었다


시시때때로
시야에 드는 황홀경이 시선을 훔쳐도
시시해진 마음은 고요하고
옷깃 적시는 가랑비에도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이었다


가난한 마음
흘리듯 보낸 시간들로 청춘을 죽이고
떠나보낸 젊음도 아낌없이
사는 매 순간 낭비하고도
슬픈 줄도 몰라 어리석었다


쉽게 써버린
등 돌린 시간 그리워도 되돌릴 수 없어
시나브로 기우는 찰나의 삶
남은 시간은 어리숙하게
이별하는 일은 없기를 빌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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