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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22. 2020

퇴근 10분 전, 회사에서 잘렸다

직장을 잃고 '나'를 찾았다.



행복에도 총량이 있나 보다. 중력을 잃고 위로 한껏 치솟은 감정이 끝을 모르고 떠다닐 때면, 생(生)은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하듯 별안간 뒤통수를 쳤다. 



수개월 동안 별 탈 없이 다니던 회사에서 별안간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닷새 안으로 업무를 정리하는 말과 함께.



다음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사고가 생겼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밀려 넘어져 구르다 맨홀에 머리를 크게 부딪쳤다. 순간,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멈췄다. 눈앞이 캄캄해졌고 일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죠? 혼자 일어날 수 있죠?
저는 바빠서…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빈 거리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바쁘게 구르던 발이 멈췄다. 수만 가지 생각이 맴돌던 머리에 생각지 못했던 통증이 가해지자, 모든 것이 블랙아웃이었다. 길 가던 중년 여성에 의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빨리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머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원무과에 접수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여태껏 잘 참아온 마음이었는데, 순식간에 터진 울음이 끝을 모르고 쏟아졌다. 꼭지가 헐거워진 수도처럼 아무리 잠가 보아도, 아물지 않은 마음이 자꾸 앓는 소리를 냈다. 



해고 일주일 전, 몇 개월 만에 글쓰기 소모임에 세 번 연속 참석할 여유가 생겼다. 글 쓰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유난히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마치 현진건 소설 속 <운수 좋은 날> 주인공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은 꿈에도 모르고 마냥 좋았다.





직접 만든 사각사각 소모임 표지




무려 일곱 해 동안 멀리 했던 ‘글월(文)’과의 조우였다. 스스로 절필을 선언하고서 생각이 고이는 자리에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꿈 대신 밥벌이를 택했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고, 꿈을 이루는 데도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였다. 잠깐의 유예기간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사회생활이었다. 현실에 적응하게 된 뒤로는 의식적으로 글쓰기를 피했다. 오랜 외면의 시간을, 뒤집게 만든 건 반복되는 주변의 권유였다.




늦더라도 글 쓰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기 다른 날,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 같은 말을 듣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에 나가 펜을 잡았다. 실로 아주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고 다시금 글 쓰는 일이 좋아졌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완벽한 주말을 보냈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월요일 저녁, 퇴근 시간을 십 분 남겨두고 별안간 받은 해고 통보였다. 단 몇 분 만에 직장인의 신분을 잃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부적처럼 새기고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아내던 그간의 안간힘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과녁을 옮긴 줄도 모르고 괜한 신중을 기해 쏘아 올렸던 화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두 다리 딛고 선 자리 위로 멀쩡하게 빛나던 조명이 사라졌고, 암전이었다. 해고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앉은자리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섬처럼 느껴졌다. 



단단한 평지라고 생각한 일상의 한 지점이 아래로 움푹 꺼져버린 그 날.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는 들뜬 목소리로 열 달 동안 품었던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생(生)과 사(死), 어둠과 밝음이 뒤엉킨 하루였다. 그렇게 뜻밖의 휴가를 얻었다. 제 아무리 무계획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하루아침에 빈 손으로 떠밀려 출발하는 억지 여행은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겨우 평지에 들어섰다 생각하자마자 다시 오르막이었다.





생애 모든 일들은 바람처럼 찾아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해준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인생은 유도와도 같아서 넘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버텨내는 사람이 이긴다.
수없이 흔들려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덕분에 바람에 떠밀려 섰던 시련의 골짜기에서도 무작정 버텼다. 분명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는데 발에 걸리는 돌부리마다 엉덩방아를 찧은 듯 아려오는 날도 있었다. 결국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글월(文)은 꼭 그런 하루마다 찾아와 마음을 두들겼다. 날 선 생의 언어가 몸속에 가득 차 입 밖으로 내뱉는 공기마저 차갑던 날. 솔직(率直)이라는 이름의 절벽으로 밀어붙였다. 야속하게도 막다른 곳에 다다른 마음일 때야 글월(文)은 가장 빛나는 낯을 하고 있었다. 



홀로 토해낸 울음이 글월(文)을 이루고, 뚝 뚝 흐른 눈물이 빈 종이 위를 지르밟은 발자국이 되었다. 마음속 은밀한 곳까지 저벅저벅 걸어가 겨우 만난 문장이었다. 직장인의 신분은 잃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존재는 굳건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쁘게 흐르던 직장인 시계는 멈췄지만, 글 짓는 이의 시계는 여전히 흐르는 중이었다.




'정녕 행복에는 총량이 있나 보다. 분명 막다른 길 앞에 섰는데, 또 다른 문이 열리는구나.'




뜻밖의 휴가가 무턱대고 두려움을 안겨준 것은, 하루아침에 잃은 소속감 때문이었다. 깍두기 신세가 된 것처럼 이쪽도 저쪽도, 낄 자리가 없어 덩그러니 남겨진 데서 오는 당혹감이었다. 생(生)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어 막연한 불안감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런 와중에도 쉼 없이 떠오르는 글월(文)을 보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잠자코 안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곳이 어디든, 그리로 글로 떠나야 했다. 태생이 길치라서 모험을 떠나려니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 엎어진 김에 눈 안에 맺히는 수많은 상(像)들을 최선을 다해 기록해 보자 다짐했다.



입 밖으로 수없이 뱉어지고, 눈앞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순간’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때때로 기승전결도 없이 무턱대고 감정만 툭 던져놓거나, 기억하고 싶은 때(時)를 운율을 담아 적거나, 나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로 설(說)을 풀기도 하면서. 찰나의 순간을 프레임에 담는 사진처럼 스스로 살면서 포착한 삶을 담기로 했다. 지금 하는 말은 그 순간에만 머무는 바람 같은 것이니 그저 지나치지 않도록 활자로 남겨두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 솔직하지 못해 서툰 모습을 자책한 적은 있어도, 글로 떠난 모험의 풍경은 언제나 황홀경이었다. 예고 없이 부는 바람에 손에서 지도를 놓치거나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어도, 글로 떠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글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반점을 찍고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하물며 글월(文)은 잠자리에 드는 순간에도, 감은 눈 안으로 번뜩 떠올랐다. 아마 내 생애 그만큼 사랑할 존재는 또 없으므로. 너에게 전하는 서툰 말도 진실로 맞닿을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오늘도 글을 쓰는 이 귀한 시간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너의 시간은 결코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흘러, 스스로 글을 쓰는 존재로서의 가치는 이어갈 수 있기를. 부디 글월(文), 너에게 기대 빌어보는 밤이다.







안부

/ 담쟁이캘리




너는 안녕하니
돌이켜보니 너에게 안부를 물은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하다


너는 안녕해야지
안부를 듣기도 전에, 덮어두고
내 안의 너를 벌세웠다



본 적 없는 이의 시선과
가본 적 없으나 오르고픈 어떤 곳을 이유로
갖은 타인(他人)에 신경이 곤두서
오랜 시간 외딴 방에 두었다


너 역시도 처음 겪는 생이건만
갖은 엄격을 들이대며
긴 긴 터널을 지나게 했다


서투른 탓에 스스로에게
진정 안부를 물은 적 없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안녕하니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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