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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26. 2020

아빠는 술만 드시면 빵을 사 오신다

자기소개 : '나'를 나답게 사용하는 법



아빠는 술만 드시면 꼭 빵집에 들러
빵을 한 가득 사 오신다.




자기소개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아빠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일은 항상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령 놀이동산에 가는 것을 엄청 좋아했는데, 그곳에서 길을 잃어 미아가 될 뻔한 경험을 겪고 난 뒤로 그 공간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때에 따라 바뀌고 변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지 '자기소개'는 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처럼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한 가지 일화를 들어, 나의 한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소보로였다. 그것을 알고 있던 아빠는 술만 드시면 소보로를 다섯 개씩 사들고 오셨다. 아침, 점심, 간식, 저녁, 혹시 아쉬울 때를 대비해 먹도록 한 아빠의 철저한 계산이 담긴 배려였다.



술을 빌미로 좋아하는 것을 주기 위한 핑계인지, 좋아하는 것을 사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취하는 일이 생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술버릇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고등학생 시절, 작가를 지망하며 대학 실기 준비를 위해 시 문화 회관을 다니게 되면서 아빠의 즐거운 술버릇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평일반 수업 시간이 늦은 밤에 끝나다 보니 수업 중간마다 간식을 제공했는데, 그게 바로 소보로였다.



매주 3일씩 가서 글 쓰고 간식을 먹다 보니 그 빵이 점점 질리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잘 찾지도 않게 되었다. 이따금씩 내 방에 들어와 자신이 사다 준 소보로가 얼마나 줄었는지 보면서 흐뭇해하던 아빠는, 언젠가부터 쉬이 줄어들지 않는 빵을 보며 내심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감정표현을 끄덕임으로 대신하는 말수 적은 아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 요즘은 왜 소보로 빵 안 먹어?




나도 실은 이러저러한 연유로 그 빵이 질려버렸는데, 아빠의 유일한 낙이 사라질까 봐 말을 못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빠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더니 요즘은 어떤 빵이 좋은지 물었다.



사실 나는 밥순이라서 간식을 잘 즐기지 않지만, 아빠의 귀여운 술버릇을 지켜드리기 위한 방법으로 파리바게트로 가서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빵 이름을 외워 와서 말했다. 그 날 이후, 아빠는 술만 드시면 나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딸, 아빠가 점원 바꿔 줄 테니까
네가 좋아하는 빵 이름 말해봐.




호두 치즈 크림빵. 내가 생각해도 그 이름을 아빠가 외우고 있다가, 술김에 가서 사 온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어느 날, 아빠의 책상 위에 놓인 파리바게트 영수증을 발견했다.



호두 치즈 크림크림  


이렇게 영수증에 형광펜 칠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 영수증을 살피던 중에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운 듯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어떤 빵 좋아하는지 이름 외워두려고.




아빠는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키만 멀대같이 크고 말수도 적은 싱거운 남자'였다. 그만큼 표현도 서툴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서 아빠랑 둘이 있어도 별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빠랑 이야기하거나 통화할 때는 애교 섞인 말투를 쓰기는 하지만 응석받이 딸은 아니었다. 한데, 술에 취한 아빠가 한가득 빵 봉지를 들고 내 방에 들어와 짐짓 슬픈 얼굴을 하고 말했다.





우리 딸은 왜 아빠한테 뭐 해 달라고 안 해?
아빠 마음으로는 별도 따다 줄 수 있는데.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집 형제관계는 1남 1녀로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지만, 첫째 둘째의 느낌보다는 외동딸, 외동아들에 더 가까운 집안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날 때부터 가진 핸디캡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집안에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엄마의 소원은 언제나 '너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었으므로 우는 나를 안아주거나 다독여주기보다 '홀로서기'를 위해 엄격하게 대했다.



덕분에 나는 이른 나이에 숨 죽여 우는 법을 터득했고 남들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내 나름대로 대학교 특수교육학과로 재능기부 강연을 간다거나, 논술 첨삭을 해 준다거나, 교내 학사지원팀에서 일한 다거나, 장학금을 탄다거나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앞가림을 하며 지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해내다 보니 힘들 때 힘들다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늘 내게는 낯설고 어려웠다.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게 술 마시고
빵 사 오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해.




그때 나는 다니던 회사로부터 계획에도 없던 뜻밖의 휴가를 얻어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티 안 내고 그 모든 시간을 마냥 견디고 있으니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예기치 않게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졌는데도 적금이며, 전기세, 통신비 등의 부담을 말없이 떠안고 있으니 너도 다른 집 막내딸처럼 용돈이 필요하면 좀 달라고 얘기하라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무슨 일이든지 항상 '괜찮다'라고 말하며 혼자 이겨내려고 하니 지치는 거라며, 때로는 아빠에게 기대는 것이 기쁨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빠가 능력이 될 때 줄 수 있어야 기쁜 거라며, 결혼하고 나면 신랑 눈치 보여서 마음껏 받을 수도 없으니 받을 수 있을 때 받으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내 스스로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랐던 나로 인해 부모님이 몇 곱절은 더 힘들었을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는 직접 해결해 보자 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쓸쓸함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 한 편이 시큰해졌다.



정말 어려운 말이지만 고심 끝에 결심하고는 이번 달 적금만 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빠는 한껏 들뜬 목소리를 감추며 정확한 액수를 물으셨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통장에 돈을 입금해 주었다.





평소 아빠와 보내는 카톡 일부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아빠는 지금껏 들은 적 없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 세 장을 건네며 사고 싶은 것 사라며 용돈을 주셨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과 교재를 사기 위해 받았던 돈을 제외하고는 부모님께 받았던 가장 큰 액수의 돈이었다. 그 돈을 받고 책장에 끼어 놓으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표현된 건지 모르겠다. 훗날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요즘의 나는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적당히 기대면서 쉬어가는 동안 이전의 날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는 중이다. '오직 지금에만 느낄 수 있는 나의 일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또 배우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쓴 '나' 사용설명서



그때는 무조건 혼자 견디고 괜찮다고 말하는 게 맞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게 틀린 것 같다.



쉴 틈 없이 먹던 음식이 질려 취향이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술에 취하면 잊지 않고 빵을 사 오시는 아빠와 긴 긴 밤 서늘한 꿈자리에 잠 설친 아침마다 뜨신 밥 한 끼로 빈 속 두둑이 채워주는 엄마가 여전하다는 사실이 새삼 참 감사한 요즘이다.







어느 날의 일기

/ 담쟁이캘리




생각하는 의자에 앉지 않고도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나이가 되고

떼쓰는 물음 대신, 허기진 물음의 무게를

아름아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대는 한눈에 들만큼 작아져

존재만으로 거대한 버팀목이었던

지난날들이 가물가물 흐릿해져 갔다



나의 일기장 속 그대는 늘

천군만마 부럽잖은 든든함이었는데

잔병치레 없이 굳세던 몸이

홀연 스러져가는 것을 보니



생각하는 의자에 앉지 않고도

스스로 돌아볼 줄 알게 되는 동안

허기진 울음의 깊이를 이미 깨친 그대는

아름아름 젊음과 몇 뼘 더 멀어져



어느새 한 시도 물러선 적 없던

생의 가장자리로 물러나

그간의 보살핌 물려줄 채비를 한다



나의 일기장 속 그대는 늘

둘도 없는 듬직한 보호자였는데

군말 하나 없이 굳세던 몸을

가만히 맡기는 것을 보니



생각하는 의자에 앉지 않고도

스스로 돌아볼 줄 알고, 보는 이 없어도

홀로 일기를 써 내려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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