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Jun 08. 2021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2/2)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1/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릴 적 나에게 가장 즐거운 놀이는 달리기였다.

절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언감생심 달리기가 좋다니. 무릎은 성할 날 없고 팔꿈치는 아물 날도 없이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달리기가 좋았다. 어릴 때는 뛸 때마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때문인 줄만 알았다. 누군가는 대차게 넘어지고도 다시 털고 일어나 달리는 것을 두고 '끈기'라고도 했다.  


그런데 뒤늦게 내가 나를 유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그때 나의 끈기는 어쩌면 끈질긴 도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던 몸부림 같은 것. 100M를 전속력으로 달려도 열외가 되는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뛰었던 것은 당시 나에게 도망이 구원으로 읽혔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유기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지난 시간 나는 매일 전력 질주했다. 페이스 조절도 할 줄 모르고 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습관처럼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온몸에 상처가 늘었다. 곳곳에 난 상처마저 내놓기 부끄럽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던 그 무렵부터 펜을 잡았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을 실제처럼 그렸다. 당시 내 글을 읽은 누군가는 '재능'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몸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였다.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내게서 눈을 돌려 수많은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하는 이야기들로 습관처럼 나로부터 멀어졌다.


글을 가까이할수록 진짜 나와는 점점 데면데면 해졌다. 취미로 삼던 글을 전공하게 되면서 시, 소설,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지만 한 번도 내 이야기를 꺼낸 적 없었다. 함축적인 표현으로 나를 감출 수 있는 시가 좋았고 내가 아닌 제3의 인물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과 시나리오가 좋았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유기했고 또 외면했다.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음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음



  잠잠하던 마음의 소리가 속에서 진동하듯 울렸고 글을 좋아한다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로, 정작 나를 버려두고 살아왔음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쏟아내는 말들을 잠자코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말로만 괜찮다고 위로했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거나 안아준 적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만큼만 나를 사랑했더라면. 스스로에게 조금만 덜 엄격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오랜 시간 나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수십 번 바뀌기를 반복하는 신호등을 보면서 내 마음을 내내 빨간 신호등이 켜진 세상에 가둬 둔 듯했다. 어느 곳도 자유로이 오갈 수 없게 입에 발린 거짓말로 유기해두고, 까마득히 잊고 지낸 것만 같았다. 정작 내가 잊은 줄도 모르고 철석같이 나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린 내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지. 눈코 입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줄만 알았던 마음이 요동치는 내진은 그 어떤 지진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줄곧 외면해 온 내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이유는 바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어느 영화인이 남긴 수상 소감을 듣지 못했더라면. 그 말을 듣고 별 감흥 없이 넘겼더라면. 내 마음의 소리로부터 시작된 내진은 그대로 잊혔을 테고, 덮어두고 미뤄  숙제가 될 뻔한 일이었다.


마음도 주체성이 있고 자기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는 동안 잘 데리고 살아야 할 동반자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 시작점이 바로 저 문장의 의미를 고민하고 내 나름대로 재정의 하면서부터였다. 기껏해야 비밀 일기장에 두어 줄 끄적이다 마침표도 찍지 못하고 감출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무조건 감춰야 한다고 생각한 나의 내면과 줄기차게 외면해 온 지난 상처를, 용기 있게 마주하고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창의적일 수 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는 동안 글을 매개로, 끈질기게 이어진 나의 도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치부라고 여겨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핸디캡이, 오직 나만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일 수 있음을 알았다.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꽃을 피운 민들레


  돌이켜 보면 세상은 아이러니한 운명의 장난의 연속이다. 그리고 대개 정해진 운명 같아 보이는 세상을 진동하게 하고, 변하게 만드는 것들은 보통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진 힘으로부터 오는 듯하다.


살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라던 의사의 말을 뒤집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낳을 거라던 엄마의 사랑이었고,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던 의사의 사망 선고를 깨부수듯 보란 듯이 걷기 시작한 것은 재활을 멈출 수 없었던 끈기였다.


복수는 나의 힘인 것처럼 남의 불행을 기도하던 낯부끄러운 마음을 그치게 해 준 것은 열 친구 부럽지 않은 한 친구의 위로였고, 한 달도 못 가 구멍 나는 내 신발 밑창처럼 밑 빠진 독 같았던 자존감을 채워준 것은 아무것도 재지 않고 넘치게 부어준 가족의 사랑이었다.


그러니 뒤늦게 깨달은 나의 거짓말이, 부디 더는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기를. 또 한 번의 운명의 장난을 부려, 내 속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는 나의 용기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수 개의 꽃을 피우기를. 지난날, 내가 나에게 했던 거짓말이 그때에는 진실로 닿아 진정 나를 위로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얼마 전 밀리의 서재 공모전에 응모한 나의 수기, <보통날의 기적>은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그 공모전 심사평 중에 '자기 치유 이상의 글쓰기'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어느 작가의 문장에 한동안 시선이 멈췄다. 처음에는 나의 응모작이 그저 자기 치유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에게 '자기 치유'는 지금 꼭 필요한 통과의례와도 같아서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글을 쓰기 전에, 땅을 고르는 작업 중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응모작을 모두 읽은 지인은 내게 진솔한 글쓰기가 가장 큰 장점이고, 앞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혹여 상처 받을 것을 걱정했다. 자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수필은, 끝없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재정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므로. 그러니 글을 쓰다가 마음이 저리거나 아픈 순간이 오면, 그때마다 같이 술잔을 기울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어쩌면 나의 온전한 자기 치유가 끝날 때까지 꺼내놓는 나의 글들이 극소수에게 읽히거나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비주류의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굳이 이곳에 적지 않고 어느 날 문득, 그 여진이 끝나게 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그 말을 동력 삼아 심연에 있는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