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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15. 2021

'터무니' 있는 호사

제 삶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저는 속에서 갖가지 감정이
넘실거릴 때 글을 씁니다.



  어떤 글은 너무 설익어서 내 마음을 머리로 이해하고 글로 소화될 때까지 묵히고, 어떤 글은 쓰지 않고는 못 배겨서 울음처럼 끝을 보고 나서 후련해진 마음으로 씁니다. 무엇이든 쓰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솎아냅니다.


요 며칠 새 겨울의 끝자락에 봄 타는  마음이 어지러웠고, 어느 날 갑자기 감춰뒀던 지난 기억마주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묵은 상처'를 볕에 꺼내 널 수 있는 용기를 낼 타이밍이 아닐까 싶어, 차근차근 마음을 더듬어 읽는다는 생각으로 쉴 새 없이 글을 쏟아냈습니다. 덕분에 조금은 후련한 마음이었지만, 이어 또 다른 민이 찾아왔습니다.


  과연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일까. 이제껏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계속 글을 쓰라고 권유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고민이 잠자는 내내 끼어들어 잠설쳤습니다. 글은 에게 여전히 즐거운 일상생활이지만, 나 홀로 즐거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 이를 테면 큰 맘먹고 누른 전화번호가 결번이거나, 애타게 연결되고 싶었던 상대가 통화 중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이제껏 의 삶은 고요했습니다. 코끝을 찌를 듯 진동하던 병원 소독약 냄새, 절름발이로 엉거주춤 걷는 나를 틀린 답처럼 바라보던 날 선 시선, 곁에 다가가면 유난히 찬바람이 불던 시린 감촉, 지나고 나면 모두 별 일 아니라며 다독이듯이 삼키던 혼잣말마저도 씁쓸한 맛이 났습니다. 상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 취급하며 '좋아요'는커녕 어린 시절 서늘한 응달 같던 나의 과거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구독'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꿈처럼 이루어집니다.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구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생각하던 차에, 오랜만에 들은 라디오 93.9 Mhz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의 오프닝 멘트에서 알맞은 표현을 찾았습니다.  




터무니없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다는 뜻인데요. 제가 보고 싶은 단어는 바로 '터무니'입니다. 터무니는 원래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입니다.  



  브런치, 이것은 분명 저에게 '터무니' 있는 호사입니다.


  브런치에서 여러 글과 독자님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의 꿈은 무형의 것이었습니다. 그저 마음에 오랜 꿈을 품고 매일 쓰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습관처럼 이어지던 즐거운 일상생활이 독자를 만나 터무니가 되었습니. 이것은 모두 이곳에 터를 잡고 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좋아요'와 '구독하기'로 무언의 응원을 해 준 당신 덕분입니다.


회사에서 '쓸 데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은 날, 브런치 작가로 '쓸 만한 자리'를 얻었고 열과 성을 다해 주어진 시간 모두를 할애했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던 시절을 나눈 글로 많은 독자들을 얻었습니다. 누군가는 저 숫자를 적게 여길지 몰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던 저에게는 지금의 숫자마저도 너무 귀합니다. 사회에서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날 때마다 속절없이 무너질 때면 습관처럼 글을 썼습니다. 그중에 브런치 독자분들이 댓글로, 좋아요로 공감해주시고 사랑해주셨던 글을 고쳐 작은 문예지에 출품했다가 신인 작품상을 받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회사원' 역할에 지쳐 '쓰는 사람'으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인데, 너무도 과분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이루는 중입니다.


다만 제 스스로 '글 쓰는 나'는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브런치라는 소통 창구 덕에 또 하나의 창구가 열린 기분입니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앞으로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무턱대고 꾸던 제 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려고 합니. 오직 만이 할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지속할 수 있는 만의 재미를 찾으려 합니다.



▼ 귀한 선물: 나의 소중한 애독자가 그려준 '나'



  에게 있어서 글을 짓는 일은 ‘생각이 고이는 자리’에 앉는 일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점들이 모여 방울이 되고 웅덩이를 이뤄 글로 옮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물을 긷듯, 그 자리에 앉아 글을 지으면서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손수 밥을 짓듯 지은 글의 수가 어느새 아흔 개를 넘겼고, 독자분들께 기대어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금세 백 개를 넘길 듯합니다.


일상 속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쓴 글들이 모여 어느새 우물을 이룬 기분입니다. 거르면 허전한 끼니처럼 매일 글을 짓던 별 것 아닌 일상이 순식간에 별 일로 바뀌는 순간을 맞이한 듯합니다. 역시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늘 그 순간을 잡나 봅니다. 앞으로 더 기꺼이 생각이 고이는 자리에 앉는 일을 즐기려 합니다. 의 글이 훗날, 깊은 우물을 이뤄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눠 마실 수 있는 우물이 되어 팍팍한 삶을 적시는 단비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왜 사람들이 제 글을 구독하고 좋아해 주시는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으로 주신 마음들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지나는 길에 제 글에 잠시나마 머물러 주시고 좋아요와 구독하기로 계속 '쓰는 사람'일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부족하나마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창밖에 봄이 더디게 오는 중입니다. 부디 마음만은 날씨와 상관없이 각자의 이른 봄을 맞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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