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그냥 어른이 될 뻔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by 담쟁이캘리



생애 처음 나의 장래희망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스스로 기점을 삼은 나이가 바로 스물이었다. 얼른 나이가 먹고 싶어서 해마다 돌아오는 설날이면 떡국을 두세 그릇씩 먹어치웠다. 자고 일어나면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며 스스로 새 나라의 어린이를 자처하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무턱대고 쑥쑥 크기를 바라던 나의 성장욕구를 다독여 준 말은 '열 밤만 자면 곧 온다'는 말이었다. 한데, 열흘이 지나도 당최 줄어들지 않는 '열 밤'은 너무도 길고 닿을 수 없이 멀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나에게 10보다 큰 수는 없었으므로 10을 기점으로 두 자리 숫자의 십 대가 되었을 때 마냥 기뻤다. 그리고 곱절인 나이 스물을 자연스레 동경했다. 숫자를 채우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은 셈이다. 뭐든 잘 풀리는 듯한 남들과 다르게 지질한 일상을 마주할 때마다 도망치듯 잠을 청했다. 20이라는 숫자가 마법을 부려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안개가 걷히고 날이 개는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가리어진 길도 스무 살이 되면 또렷해질 거라고 믿었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면 그 이름이 '의미'가 되고 ‘존재’가 되듯이. 어른도 성인이 되면 자연히 불리는 이름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미성년자 신분에서 벗어나는 시기를 기점으로 어른으로서 폭풍성장하는 줄 알았다. 때문에 어릴 때는 차오르는 나이가 무기 같기도 했다. 홀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 그보다 막강한 무기는 또 없었다.


허황된 믿음으로 천하무적 인양 용감무쌍하게 굴었던 20살로부터 훌쩍 멀어진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보다 나이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길을 잃는다. 종종 가리어진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고 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순간을 마주할 때면 ‘원래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생이 길치인 나에게 헤매는 것은 익숙한 일인데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를 반복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어른은 숫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스무 살의 나이가 주던 막연한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오래고, 가진 것 없어도 넘치는 자신감으로 그리던 장밋빛 미래는 이루지 못한 공약으로 남았다. 이룬 것 없이도 청춘이라는 핑계로 무기 삼던 나이는 녹슬어 제값을 할 수 있을는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살다 보니 숫자는 무기가 아닌 지나온 시간의 무게였고 나이는 살면서 몸으로 체감한 무게만큼 중량을 치는 일이었다. 근육을 만드는 운동처럼 저마다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키운 근력과 지구력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었고, 어떠한 일이 있든지 간에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어른이었다.





어른은 초행길에도 헤매지 않고 단번에 목적지를 찾아내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없이 찾아오는 어려움과 그칠 줄 모르는 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는 생(生)에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힘을 기른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고 나니 힘들이지 않고 마법을 부리기를 바랐던 그 시절 내 생각이 얼마나 어렸던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예나 지금이나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를 반복하며 산다. 마법은커녕 멋진 어른이 되는 방법조차 모르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머릿속으로는 늘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남들 하는 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마저도 어려워 ‘황새 쫓는 뱁새’가 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문득 위로가 된다.



숫자를 채웠다고 으스댈 것도, 채우지 못했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이 위아래를 막론하고 모두가 각자의 근력을 키우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조급하던 마음에 위안이 된다. 누구나 최상을 꿈꾸지만 실은 모두가 서툴고 누구나 넘어지고 실수하기를 반복하며 지금 그 나이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굳이 먼 미래를 기점 삼아 멋진 어른이 되겠다고 미뤄두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 잘 날 없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그 자리의 무게를 견디는 존재들이므로. 오늘은 내 비록 남부끄러울 만큼 줄기차게 흔들렸을지언정 또 다른 ‘오늘’은 생각보다 괜찮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꺼이 흔들리는' 내 남은 시간들을 그저 긍정해 본다.





덧붙임.

나의 가장 가까운 어른은 바로 부모님이다. 수없이 흔들리고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른이라는 정의는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는, ‘나’라는 풍랑을 만난 부모님의 자세를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다. 아이가 살 가망이 없고 자칫하면 산모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에도 기어코 ‘태아’였던 나를 선택해 ‘이름 불리는 존재’로 길러낸 것. 아이는 셋을 외치던 꿈을 접고 나를 막내 삼고, 세상 모진 시선에 부디 외롭지 말라고 넘치는 사랑으로 충전해주던 것. 의사들도 포기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엄마의 불굴의 의지, 그리고 절름발이로 사는 내내 세상 사람들의 차디찬 시선에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 준 부모님을 보면서 알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숫자를 채우거나 부모가 되면서 자연히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무게만큼 중량을 치면서 근력을 키우고, 설혹 정신없이 흔들리더라도 제자리로 돌아와 그 자리의 무게를 감내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감히 나는 엄마 아빠 같은 어른이 될 용기도 자신도 부족해, 가장 가까운 어른으로서 막중한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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