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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19. 2020

나는 지금껏 별 헤는 밤을 살았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생각하는 당신에게


과거의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해
수없이 별 헤는 밤을 살았다.



밤은 누구에게나 있고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만의 특별함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실은 모두가 남과 같지 않은 고유한 존재로 '다르다'는 것 자체가 자기만의 특색임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특별함을 찾느라 별 헤는 밤을 살았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에게 '네 삶도 충분히 빛난다'며 특별함을 부여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 삶의 명분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제와 그 시간들에게 '허비'라 이름 붙이는 이유는 그것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서였다.





반짝이던 무언가가 자취를 감췄을 때 유난히 오랜 밤을 허둥대며 보냈다. 다시 나를 빛나게 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던 날들이 켜켜이 쌓였을 무렵,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듣게 된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지막이 읊으며 전해진  대사를 들으며 내 지난 시간들을 위로했다.



사라지는 걸 인정하면
엄한 데 힘쓰지 않아도 돼

- tvN <또 오해영> 드라마 대사 중에 발췌



실은 누구나 서툴고 모두가 예고 없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니 너무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또 다른 반짝이던 무언가가 사라졌을 때 스스로를 너른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결국 모든 것들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순환하는 중이라고 다독였다. 황무지 같은 마음에도 단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싹 틔울 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쪽방에 들어가 한참 동안 어둠을 견뎌내던 나에게, 사라지지 않는 봄볕이 되어주고 싶었다. 생의 순간마다 내 옆자리의 모든 것들이 정류장처럼 들렀다 사라질 때, 나 자신만은 스스로에게 꾸준한 위로로 닿고 싶어 졌다.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건넬 말을 고르다 '사랑'의 의미를 다시 깨쳤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밭을 가꿔야 상대에게도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



'사랑을 하는' 일은 분명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영역이지만, 그 관계는 상대뿐만 아니라 '나'와 '내 자신' 사이에도 성립되는 부분임을 알았다.



결국 자존감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기인하며, 마음밭에 적절한 볕과 비를 뿌리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날,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이 사라진다 하여도 여전히 그 밭에 꽃을 피우는 것은 남겨진 내 몫이므로.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끌어안겠노라 다짐했다.



그 무엇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혼자서도 멋진 마음의 정원을 가꾸겠노라고.





그동안 나는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서 밀물 때를 목놓아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그 간만의 차를 견디지 못해 수없이 발을 굴렀다. 어떤 날은 마치 다시는 바다를 볼 수 없게 된 사람처럼 굴었다. 이미 인생이라는 망망대해 위에 있으면서 물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밀물 때든 썰물 때든 결국 내가 선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 정호승, <물 위를 걸으며> 중에 발췌



물 위를 걸으며 물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큼 이기적인 마음은 없었다. 그 마음을 깨닫고 나서야 굳었던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것처럼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들었다. 이대로도 충분하니 이제 그만 가벼워지라고 스스로를 끌어안기까지 먼 길을 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나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했건만, 스스로에게는 고작 마음 한 뼘도 내주지 못한 탓이었다.



별별 사람 가득한 별난 세상이니 특별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나를 몰아세웠다.



속에 가득 찬 울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올 때도, 소리 내 울지 못해 마음은 늘 벙어리였다. 스스로에게 좋은 주인이 되어주지 못해, 세상을 보는 시선마저도 삐뚤었다. 넘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종일 경계했다. 한 시도 자유롭지 못해 벌서는 것 같은 마음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삶은 늘 뒤를 알 수 없는 책장 같아서 신기하게도 가뭄이 든 마음일 때마다, 그다음 장에는 어김없이 단비를 뿌렸다.





모두 각자의 페이지를 넘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위로하는 듯했다. 너뿐이 아니라 실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니 너무 고단해 말라고. 조심히 다독이는 말처럼 마른 창 밖으로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가 위로가 될 때가 있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니 어깨에 힘 빼고, 소란한 시간들이 그치기를 바라자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야 그치는 비처럼 시종일관 내리막길 같은 삶도 끝이 있을 거라고 속삭이는 듯해 빗소리마저도 즐겁게 들리던 날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품에 안을 줄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세상을 사랑했다.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일처럼 누가 채근하지 않아도 제 몫을 해내는 세상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흩뿌려진 모래 같은 삶이라 수없이 별 헤는 밤을 살아온 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낸다는 것은 고개를 숙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별안간 눈보라가 치고 우박이 내린다고 해서 허둥댄 적 없는 그 고요한 한결같음이 내게는 큰 울림이었다. 그저 삶 속에서 일렁이는 갖가지 일상들과 그 속의 누군가들이 내게로 와서 의미가 되어주었을 뿐. 대단히 이름 붙일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밤마다 별 헤느라 혈안이 되었던 과거의 내 시선이 그토록 부끄러울 수 없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온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결국은 어둠을 걷혀야 더욱 빛이 난다. 그 당연한 진리를 일찍이 깨치지 못한 삶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 감독 수상소감 중에서



어느 영화 예술인의 말처럼 세상에 태어나 자기 얘기를 하는 모든 존재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다른 반짝이는 것들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반짝이는 중이었다. 다만 주변의 밝음이 내 반짝이는 무엇을 가린 것뿐. 



내 자신이 다른 무언가에 잠시 가릴 순 있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 그 무엇이 나보다 더 밝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 아름답게 빛나던 밤의 기억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별안간 내가 반짝이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내 고유의 특별한 무엇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린 것뿐이니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모든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나다운 특별함'을 타고나므로 굳이 애쓸 필요 없다고 다독였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 헤는 밤 없이도 얼마든지 꿈꿀 수 있다고.



누구나 보통의 삶을 꿈꾸고 살다가는 생이니

그만 힘 빼도 괜찮다고.






수레

/ 담쟁이캘리




왜 네가
빈손일 때마다 끌끌,
혀부터 차고 보는 건지
 

홀로 길을 걷는 너를 두고
왜 자꾸 요란하다 하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너는 그저 네 모습 그대로
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인데


혼자 오르기도 버거운
저 가파른 오르막길을, 왜 너는
늘 누구든 업고 걸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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