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매일 습관처럼 반복하던 가족과 밥 먹는 일이 이벤트가 되었다. 매일 혼자 밥을 차려먹고 가족과의 대화 대신 음악소리와 TV 소리를 벗 삼아 식사를 하면서 스스로 독립했음을 가장 먼저 실감했다. 나 스스로 독립했음을 실감하게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밥 이야기부터 하는 이유는 얼마 전, 밥 한 끼에 담긴 의미가 실로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집안 가득 퍼지는 밥 냄새에 마음이 풀어진 경험이 있다.
부엌에서 분주히 밥 차리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노곤했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고작 밥 한 그릇 이건만 그 밥 한 그릇이 채워준 마음이 차고 넘쳐,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든든함으로 남았던 적 있다. 많이 먹으라며 꾹꾹 눌러 담아준 고봉밥 한 끼에, 종일 바깥에서 느꼈던 허기와 대충 때운 끼니들로 채운 헛배를 두둑이 채웠던 적 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삼킨 설움마저 고슬고슬한 밥 한술에 녹아내려, 목엣가시처럼 온종일 거슬리던 일들도 금세 소화되던 마법 같은 경험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종종 마음이 상할 때면 불현듯 허기를 느꼈다. 헛배가 고픈 것처럼 입에 뭐라도 넣어야 할 것 같고 씹어야 할 듯한 기분 같은 것. 독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는 배를 불리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한데, 사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 종종 떠올리게 되는 것이 '집밥'이었다. 독립만 아니었다면 퇴근해서 집밥을 먹으며 하루의 상처쯤이야 꼭꼭 씹어서 소화시키면 될 일이건만, 문제는 내가 독립했다는 데 있었다.
평소처럼 집으로 퇴근했다면 엄마가 차려주는 고봉밥 한 끼를 비우며 오늘 하루치의 수고도 거뜬히 소화시켰을 텐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자취방 밥솥마저 고장 나 밥이 쉬어버렸다. 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말을 전하던 어떤 이가 건넨 말이었는데, 홀로 식탁에 앉아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한 그 말을 되새김질했다.
'그냥 걔는 그런 복을 타고난 것 같아.'
어떤 일을 겪고 화를 당하는 데에도 '복'이 좌지우지하는 것일까.
세상은 원래 요지경이라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명과 암이 뒤엉켜 일어나는 요지경이라는 것쯤은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일을 겪고도 화를 당하지 않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타고난 복'을 운운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렇게 말하니 그냥 똥 밟은 셈 치거나, 재수가 없었던 것으로 가벼이 여길 수도 없었다. 마치 내가 날 때부터 그 복을 꿰차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화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을 나설 때 꼭 가지고 나왔어야 할 어떤 물건을 빠뜨리고 챙겨 나오지 못한 내 탓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나 때문인 건가.'
쉰내가 날 정도로 상해버린 밥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상한 마음은 버리지도, 그렇다고 풀지도 못해 찜찜한 채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들었다. 오늘 하루만 버티면 주말이니 집으로 가 따뜻한 밥 한 끼 얻어먹고 오자고 다짐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줄게, 택시 타고 와."
금요일 저녁, 아빠는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와 나의 빠른 귀가를 독촉했다. 아빠의 고등학교 친구와 같이 술을 마시는 중이니 와서 먹고 같이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는 그저 일주일 만에 볼 딸이 벌써부터 반가워 안달이 난 듯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 편도로 넉넉히 두 시간 반은 잡아야 하는 거리니 무조건 택시 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택시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주말을 기다리던 내 마음도 내달리는 듯했다.
매일 보는 얼굴도 텀을 두고 보면 반가워지는 것은 당연한 걸까. 매일 저녁 일상처럼 마주하던 아빠의 얼굴과 밥상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한 주간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중 무엇이 내 마음을 언짢게 했는지는 떠오를 새 없이 즐거운 웃음소리가 오고 갔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다 한껏 흥이 오를 무렵, 아빠 친구가 나란히 앉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이슬이 때문에 정말 행복하겠다."
아빠 친구는 집에 딸이 없고 아들뿐이라 이런 그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아빠에게 '부럽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러다 지그시 아빠를 보고 한 말이었는데,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아빠의 입에서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니긴, 네 딸 때문에 행복한 거 맞지! 복에 겨웠네."
딸 가진 유세라며 아빠를 혼내듯 설교가 시작되려던 찰나, 아빠가 재차 말을 이었다.
이슬이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고 이슬이가 있어서 행복한 거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참으며 말없이 아빠의 빈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집에 갈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러다 지난 한 주간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그 말을, 아빠의 말 한마디로 위로받았다. '때문에'라는 말은 어떤 이유를 뒷받침 하지만, '있어서'라는 말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이므로. 지난 시간 동안 억울하게 화를 당해야 했던 날들을 '누군가의 복'으로 치부해버리는 바람에, 일순간 가엾어진 나의 탄생이 아빠 말 한마디로 다시 값어치 있게 느껴졌다. 미처 가지고 태어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말고,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 '있어서' 그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크나큰 위로였다.
아빠와 함께한 밥 한 끼가 준 위로는 몇 날 며칠을 되새김질해도 거뜬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 있었다. 이래서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는 걸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밥 한 끼에 누리는 포만감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 새삼 다시 경험하는 중이다.
어릴 때는 밥으로 두둑이 부르는 마음과 행복한 포만감의 이유가 단순히 엄마의 손맛인 줄 알았다. 한데 이제 보니 밥을 건네는 상대에 대한 넘치는 마음에 그 힘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밥은 무엇으로든 값을 치르지 않고는 배를 불릴 수 없다.
밥벌이를 하는 회사가 그렇고, 매번 돌아오는 밥때마다 사 먹는 밥값이 그렇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불리거나 먹을 수 없는 것이 밥의 이치건만. 당장의 배를 불리기 위해 사 먹는 밥과 다르게 가족이 내주는 밥에는 대가가 없고 값을 치르지 않아도 언제나 후하게 넘쳐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한 끼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한 마음으로 차린 밥상 덕분에,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잠들었던 상한 마음들을 뒤돌아 보지도 않고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가족들과 밥 먹는 일은 이제 일상이 아닌 이벤트가 되었지만, 그 덕분에 매일 차려주던 밥상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또 하나 배워간다. 세상 일은 늘 예고가 없어, 언제고 또다시 쉰밥처럼 마음이 상해 허기짐에 몸부림치는 하루가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도 어떤 일을 마주하든지 간에 지금 깨달은 사실만큼은 꼭 기억하련다.
내 존재만으로 행복해하는 가족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내가 아직 세상을 사랑하는 데에는
/ 담쟁이캘리
늦은 저녁 식탁에 앉은 내가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밥알을 세고 텅 빈 입 속에 맴도는 수없는 말을 오물오물 몇 번이고 씹어 삼킬 때
앞에 마주 앉은 그대는 순간의 고요도 참지 못해 애태우고 새까매진 속은 잿더미로 날려 검던 머리칼마저 희끗하게 변하지
조물조물 쌀을 씻어 불리고 뭉근한 불 위에서 밥 짓는 동안 갓 지은 고슬밥이 텅 빈 속 채워 하루 끝은 부족함 없이 닿길 바라며
부랴부랴 차린 한 상 부디 무언의 위로로 닿기를 눈칫밥으로 채운 하루의 헛배가 한 끼 집밥으로 소화될 수 있기를
건넨 적 없는 서툰 언어로는 말 못 할 속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소담한 한 끼에 하고픈 말 담아 양껏 차린 상차림이라 더 애달파
그 어떤 허기도 두렵지 않은 밥심으로 오늘 하루 모자람 없이 배부른 마음이기를 기도하는 그대의 애끓는 온기에, 일상마저 특별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