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쳤거나 혹은 놓았거나

데이지의 꽃말은 '숨겨진 사랑'이다

by 담쟁이캘리


데이지 꽃말은 '숨겨진 사랑'이다.



눈발이 흩날리는 2월에 태어나 데이지 꽃을 닮은 그와 나는 오래전 헤어졌다. 이를 테면 내가 놓친 셈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면 스스로 놓아버린 인연이었다. 열두 달을 세 번 돌아 다시 재회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마저 뒤로 하고 그는 꿈을 향해, 나는 현실을 향해 떠나왔으니 말이다.






"꼭 다 알아야 좋아합니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요."


처음 만난 그의 당돌했던 고백은 아직도 선명하다. 세 번째 만남에 돌연 고백이라니. 묵직한 목소리에 은근한 경상도 방언의 억양이 섞여, 생전 처음 접해 본 그의 생경하면서도 단호한 어투가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당시 그는 열아홉, 나는 스물둘이었다.



그저 스무 살을 사흘 앞둔 치기 어린 소년의 풋사랑일 거라고 여겼다. 대뜸 고백을 해 오는 그에게 '나에 대해 무얼 알고 좋아하느냐'라고 되물으며 속으로는 그의 마음을 두고 곧 막을 내릴 공연이라 치부하며 마음의 깊이를 멋대로 재단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던 나와 감독을 꿈꾸는 자신이 만나게 된 것을 운명이라 여겼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자신이 영화를 찍는 꿈을 꾸며 나를 향한 마음도 함께 키운 듯했다.


"서울 올라오면 만나 줍니까. 두 달만 기다려요."


지금 생각해도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대학 실기가 끝나면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 갈 테니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는 생각에 하루씩 커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감정을 속이던 나와 다르게, 그의 모든 행동에 나를 향한 호감이 새어 나왔다. 고작 두세 살 차이에 나라도 어른다워야 한다는 마음에 한 번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 마음이었다. 애처럼 굴지 말라며 섣부른 충고를 하던 나에게, 그는 아마도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사라질 신기루 같은 마음이 아님을.






"잘 지냈어요? 보고 싶었어요."



두 달 만에 연락해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던 그는, 고등학교 친구와의 제주도 무전여행을 끝내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 여행을 계기로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음을 배웠다면서,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자신도 거저 온 것이 아니니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찌 그 나이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손 잡아도 돼요?"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며 힘들거나 슬플 때 혼자 삼키지 말고 연락만 하라던 그와 처음 손 잡던 날이 선명하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지붕과 집 앞 돌계단에 수북이 쌓였고,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한낮의 볕에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돌계단 위에는 미처 녹지 못한 살얼음이 얼었던 추운 날이었지만, 그 돌계단을 지나던 내게 남은 기억은 한겨울의 낮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180cm 훌쩍 넘는 네가 나와 보폭을 맞춰 느린 걸음을 걸으며 함께 재활도 하고 수영도 배우자고 말하던 목소리가 여느 날보다 한껏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와 고백하건대 뒷모습마저 그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후회하지 않아?”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향한 마음이 부풀어 올랐을 때, 나의 불안은 터질 듯했다.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던 고백의 말들을 곱씹을 때마다 나는 자주 거울 앞에 섰고, 나를 너무 좋게 봐주는 그가 고마우면서도 ‘과연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라는 말들로 자꾸 스스로를 찔렀다. 그와는 고작 세 살 터울인 주제에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마음에,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많다’는 말들로 직진해 오는 그의 마음에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 날 선물처럼 나타난 그를 놓쳤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영화처럼 그를 다시 만났다.


영화 <데이지>에서 정우성과 전지현이 만나는 장면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한 그와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데이지> 때문이었다. 평소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는 성격과는 다르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찾아보지 않았고 그의 말을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OCN 채널에서 <데이지>를 보게 되었지만, 이미 다 끝날 무렵이라 금세 채널을 돌렸다.




[자요?]

[아니 아직, 왜?]

[데이지의 정우성]
[응? 무슨 말이야? 나 그 영화 안 봤어.]
[시간 날 때 한 번 봐요, 내 마음이 궁금해지면]




처음 내게 고백해 오던 날 밤, 그가 보냈던 문자 메시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 날은 친구와의 연극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불현듯 친구 입에서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K 생각난다. 걔는 잘 지내려나?”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친구는 그와 내가 연인 사이였음을 알지 못했으므로 대충 얼버무려 답한 뒤 집에 돌아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그 영화를 봤다. 별생각 없이 보기 시작하던 내 시선을 멈추고,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이 장면이었다. 잊었던 그와의 기억과 말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하는 전지현(극 중 혜령)은 데이지 꽃을 그리러 자주 그 꽃밭을 찾는데, 시냇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다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녀를 몰래 좋아하고 있던 정우성(극 중 박의)은 위해서 통나무로 된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좋아하는 곳을 맘껏 오고 갈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데이지>에서 다리를 놓아준 장면



"부산에 한 번 놀러 와요, 내가 구경시켜줄게요."
"나 혼자? 한 시간 서 있는 것도 힘든데 부산을 어떻게…"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나에게 부산은 꿈의 도시였으나, 이리저리 제약 없이 여행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는 ‘이제 어디든 나랑 같이 가면 되죠.’라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다. KTX도, 광역버스도 없던 그 시절 나에게는 부산은 머나먼 꿈의 도시가 그의 말 덕분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데이지의 꽃말이 ‘숨겨진 사랑’이라는 것과, 그는 나에게 ‘다리’가 되어 주고 싶어 했음을 알았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를 무렵, ‘그를 다시 만나 고맙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페이스북에서부터 그를 찾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없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때 함께 연극을 보러 갔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K가 내 친한 후배랑 같은 부대래! 신기하지? 그래서 아까 생각났나 봐.”



그 전화를 끝으로 ‘지금 그를 다시 만나야 할 타이밍’이라는 고 느꼈고, 그를 찾는 일에 가속이 붙었다. 그리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그와 나는 수화기 너머로 다시 재회했다.





그 날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같은 시간마다 골목 어귀를 떠나던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와 까치 울음소리가 그날따라 선명하게 들렸다는 것. 전날 밤 그가 내 꿈속에서 말년 휴가를 받아 제일 먼저 우리 집에 찾아와, 나의 마음을 궁금해 했다는 것 말고는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한데, 그날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신기하게도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직감적으로 그것이 나를 찾는 그의 전화벨 소리임을 알았다.



“여보세요?”
“목소리 그대로네요. 아직도 콜라 마시면 취해요?”



몇 년 만에 수화기 너머로 들은 그의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그는 수줍은 듯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별 거 없는 안부를 몇 번이나 물었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 그리고 나와 생전 처음 먹었던 곱창의 맛을 이야기하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오래전 그날처럼 그는 ‘보고 싶으니까 간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 동네로 왔다. 이제 더는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우리는 처음 데이트 코스 그대로 하나둘씩 복기했다.






어렵게 재회했으니 기를 쓰고 행복해도 모자랄 일이건만, 이상을 꿈꾸는 그와 현실에 발 디딘 내가 자꾸 부딪혔다. 바다는 육지를 적실 수 있어도 끌어안을 수는 없는 것이 숙명인 걸까. 다시 만나 애틋한 우리를, 서로 놓았다.



모든 시작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중략)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중에서



그 날, 그가 건넨 마지막 편지에 담긴 시를 옮겨 적다가 울어버렸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옮겨 적었을지, 그 이별의 자세를 생각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대의 마음이 닫혔을 때는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기다리는 일도 상대에게는 짐이 될까 소리 내지 못하고 어려워져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저 서서 기다리는 일밖에. 얼얼한 마음 다독이며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처음도 아니건만 그와의 헤어짐은 여전히 낯설고 아팠다. 답장은 쓸 수 없어 그대로 덮어두었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헤어졌다.





그 후로, 나는 작가의 꿈을 떠나 ‘꿈을 이룰 자원을 번다’는 핑계로 아직까지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나와 다르게 끈질기게 한 길을 팠고 지금은 한 방송국의 PD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이 들었다.



이제와 다 지난 이야기를 곱씹어 보는 이유는 그때는 놓친 줄 알았으나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았다는 것과 뒤늦게 다시 글을 쓰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지금. ‘언젠가 꿈 이뤄서 만나자’ 던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서였다. 비록 우리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각자 꿈의 모양은 조금씩 변했으나 결국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찍고 있고 나도 여전히 쓰고 있으므로.



그의 말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혹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 생애 빛나는 추억을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이니 어디에 있든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는 사람으로 있어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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