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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n 27. 2021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어제는 나의 음력 생일이었다. 홀로 자취방을 얻어 독립한 지 두 달째, 가족과 밥 먹는 일이 이벤트가 되었고 매일 대접받던 밥상 위에 미역국과 케이크 하나 더 놓는 것으로 지나치던 나의 생일은, 꼭 챙겨야 할 행사가 되어 양력 생일보다 나흘 먼저 당겨 온종일 축하를 받았다. 그냥 넘어가도 서운하지 않을 나이가 되고 반복되는 생일에 탄생의 기쁨마저 무뎌질 무렵, 서른넷의 첫 독립이 당연하던 일상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가다듬고 눈곱을 떼기도 전에 코끝을 찌르는 쇠고기 미역국 냄새와 잡채를 볶는 분주한 팬 소리에, 흘리듯 보내려던 날짜가 특별해졌다.


  먹은 나이의 숫자만큼 초를 꽂고 '사랑하는 우리 딸'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노랫말을 끝으로 초를 한 번에 불어 끄며 고맙다고 말하는 소리에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매일 반복해 받았던 엄마의 상차림, 온 가족 둘러앉아 함께 먹을 것을 나눌 식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흔하던 일상이 이벤트가 되니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감개무량하다. 꾹꾹 눌러 담은 마음만큼 푸짐한 식사를 남김없이 비운 늦은 저녁, 쉬이 소화되지 않을 정도의 배부름에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번 주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재방송을 볼 요량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온종일 넘치게 축하를 받아도 피곤할 수 있음을 실감할 만큼 자주 눈이 감겼지만, 절대 꺼지지 않는 포만감 때문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19주 만에 양막이 파수된 산모가 배 속에 아기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태아의 주 수가 너무 적어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라던 A교수와 달리, 태아를 살리려는 산모의 의지를 보고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자던 B교수의 결단으로 절망 가득했던 환자(산모)의 차트가 '어쩌면 아이가 살 수도 있는' 전혀 다른 차트로 바뀌었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였는데, 그 이야기를 보면서 엄마의 입으로 전해 들었던 나의 탄생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양수가 터져, 뇌에 산소가 부족해 뇌성마비 소견을 보인다고. 살 가망이 없고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사 운이 좋게 산다고 해도 평생 휠체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온갖 불행이 범벅이 된 의사의 소견을 듣고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연분만으로 나를 낳았던 엄마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드라마 속 다음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더랬다. 겨우 한 고비를 넘긴 탄생 직후에도 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차도를 살피는 일마저 혹시 모를 불행을 점치던 의사와 다르게, 연신 눈물을 쏟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던 수간호사가 했던 말 덕분에 힘을 얻었다는 말도 떠올랐다.



  "아이 우는 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살겠네요." 



아이가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데, 산모가 약해지면 안 된다며 울음소리를 들으니 분명 살 거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던 그 간호사 덕분에 엄마 자신과 떨어진 내가 인큐베이터에서 잘 버텨줄 거라고 믿었다고 했던 그 말을 곱씹으면서, 나의 탄생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진단과 염원이 깃들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비단 부모와 아이 둘만의 힘으로 탄생의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들을 마주하고 선택하는 이들의 힘에 의해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고, 오늘로써 무려 서른네 번째의 생일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일처럼 느껴졌다. 생일상을 받고 난 뒤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배부름은 어쩌면 '산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라는 깨달음에 느끼는 포만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도 1%의 희망을 점치던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 덕분에 절망 가득한 차트를 뒤엎고 기적이 일어났듯이 드라마 속 태아에게도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한데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내 바람과 다르게 얄궂게도 인생은 다른 막다른 길로 내몰기도 한다. 아이를 꼭 지키겠다는 부모의 의지는 강했으나 결국 태아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유명을 달리했고, 4주간 태동을 느끼며 함께 교감했던 산모는 아기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생이별해야 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 기적은 종종 남겨진 누군가에게 슬픔의 낯을 드리운다. 당시 얼마나 간절했고 애가 탔는지 그 정도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불행은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낙비와 같아서 우산을 쓰거나 대비할 새도 없이 별안간 비를 뿌린다. 갑자기 흩뿌려진 불행에 몸과 마음이 흠뻑 젖었을 때는, 그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신의 태아를 지키려고 소변마저도 누운 자리에서 보며 근 한 달간 고군분투했던 자리에서,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한 아기의 소식을 전해 듣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건만 어떤 날은 싱그러운 봄이고 여름이었다가, 또 어떤 날은 손에 쥔 모든 것들을 뒤흔들어 빈 손이게 만드는 가을 겨울이라니.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사계가 너무도 변화무쌍하다고.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_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장면 캡처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에게 생길 수 있다.


B교수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이 문구를 손글씨로 적어 산모를 위로하는 문자를 보낸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회진을 도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그와 달리, 드라마 속 부모의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의연했다. 불쑥 찾아온 불행에 밤새 목놓아 울기는 했지만, 덕분에 4주간 아이를 품으며 태동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도리어 B교수를 위로했고 감사하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훗날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아이를 '천사'라고 칭하며, 그때는 꼭 아이를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여전히 부모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겪고도 다시 부모가 될 훗날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다른 이들과 같지 않은 탄생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나를, 있는 그대로 품으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애지중지 길러준 엄마와 아빠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그렇게 빌었을 엄마 아빠의 애절한 마음을 상상했다.


  생명의 탄생이 노력의 유무나 정도가 아닌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절름발이로 사는 내 몸의 모양과 별개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었다. 비록 드라마 속 태아는 안타깝게 생을 달리했지만, 부모도 의사도 그 아이를 포기한 적 없으니 태어나지 못했어도 끝까지 지켜진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의사의 절망 가득한 소견을 뒤로하고 인큐베이터로 들어갔지만 수간호사의 말처럼 한 달 뒤에 기적처럼 상태가 호전되어, 미뤄둔 출생신고를 했다. 그리고 여섯 살 무렵, 절름발이긴 하지만 휠체어가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태생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수없이 소외되고 하릴없이 외로움을 벗 삼아 지냈지만, 밥벌이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이 있고 좋아하는 글도 마음껏 쓰고 홀로 독립해 살면서 스스로 앞가림할 수 있을 만큼 장성했다. 혼자서는 몸도 마음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내가 이만큼 자라서 매해 생일상을 받고, 해마다 더해지는 초를 불어 끌 수 있게 된 것 역시 부모의 넘치는 사랑으로 지켜졌기 때문이리라.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의 목숨을 걸고 지킨 소중한 탄생이었고, 몸 건강히 인큐베이터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과 눈물로 지새운 기다림 끝에 지켜낸 탄생 이건만, 그 귀중한 생명의 값을 헐값으로 여기고 너무 많은 인생들에 견주어 스스로를 평가절하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의 값어치도 모르고 매일 불행을 곱씹었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덮어놓고 절망하면서 '내가 얼마나 어렵게 지켜진 아이'인지 잊은 채로 스스로 지옥을 았다. 이미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을.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고. 날 때부터 얻은 장애를 평생의 불행이라 여기며 오래도록 털고 일어날 줄을 몰랐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의연하게 넘긴 불행을, 마치 전염병처럼 꽁꽁 숨기며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저 때때로 살면서 일어나는 수십수백수천 가지의 일 중에서 불행 하나가 내게 온 것뿐인 것을. 그동안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괜한 마음의 지옥을 살았다. 악다구니를 퍼붓던 시간이라도 어느 누구에게는 한없이 간절했순간이자 탄생이고,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고 쓰고 싶어도 마음껏 쓰지  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산다는 것만큼 신비한 축복이 또 없다. 내 나이 서른넷에 이르고서야 내게 주어진 삶의 값을 다시 매길 수 있게 되었다. 헐값에 치를 생명이 어디 있으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려도 아주 짧은 찰나의 생이거늘. 그러니 나에게 닥친 불행한 일에 너무 오래 잠식되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멀쩡한 옷을 흠씬 적시는 소낙비도 볕이 있으면 보송하게 마르듯이. 소낙비처럼 들이치는 불행도 볕에 널어두면 간 데 없이 바싹 마를 날이 올 테니. 그러니 그간의 도 딱 저만큼 아파하고 스스로를 위로면 충분했음 뒤늦게 알았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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