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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ug 14. 2021

나를 아는 사람

그리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종일 후끈 달아올라 식을 줄 모르던 열기가 잦아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싶었는데 달력을 보니 절기상 입추였다.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와중에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24절기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것은 '흐르는 존재'인 듯했다. 나 역시 종일 후끈 달아올라 식을 줄 모르던 글에 대한 열기가 잦아든 즈음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도 밤낮으로 서늘해진 마음이 추풍낙엽처럼 줄곧 고꾸라졌다. 무언가 떠올라 끄적이다가도 별 소득 없이 지쳐 잠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밤, 누군가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녀는 잠시 나의 안부를 묻는가 싶더니 이내 내 글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새 너무 바빠 글을 읽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글을 읽고 너무 좋아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댓글을 남기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글 솜씨가 부족해 목소리 들을 겸 전화로 대신했단다. 그녀는 통화 말미에 나의 건강을 살뜰히 챙겼다.



좋은 글 오래도록 보고 싶어요.
그러니 꼭 건강하셔야 돼요, 작가님.



그 말 한마디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글이 써지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걸었을 그 전화 한 통에 예기치 않게 위로받았다.


  그날은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작가로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느끼던 숱한 밤들 중 하루였다. 여전히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고 좋은 것은 맞지만 종종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민이 이어져, 한창 좋을 때 끝내는 것이 맞을까 싶은 권태기 같은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가만 보면 글쓰기와 연애가 닮은 구석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작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필을 선언하고 회사원이 되면서 글과 이별했다.



  무려 일곱 해 동안 절필을 하고 살다가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인연법처럼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물 흐르듯 글쓰기 소모임을 시작했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다 재회한 연인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꼭 붙어있었다. 일부러 글 쓰는 일을 피하던 과거와 쓰는 것만으로 마냥 좋은 현재의 마음이 상충할 때마다 '취미'라는 말로 그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근 10분 전, 별안간 회사에서 잘리던 그날도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된 것이 글이었다.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신기루처럼 사라졌어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글을 지었다. 그 마음을 동력 삼아 열과 성을 다해 재취업했지만 그곳에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악덕 상사를 만났다. 겨우 잠잠해진 줄 알았던 일상에 풍랑이 던 그때. 내가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게 지탱해 준 것 역시도 글이었다.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던 상사가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정의한 날 밤, 스스로 잘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울음으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이미 몇 번 떨어진 전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떨어지면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라도 하면서 일단 브런치 작가라도 되어 되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날 밤, 나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하늘을 감동케 한 걸까. 생각지 않게 그 이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갈 요량이었는데, 끝내기 전에 그간 받았던 부당한 대우들을 알리고 나가자는 마음으로 털어놓았는데, 전화위복으로 회사 내에서 직무 순환이 되었다. 예기치 않게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지옥 같던 시간들이 막을 내렸다. 브런치에서의 활동계획에 쓴 목차대로 글을 써 내려가면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구독자들을 얻었고, 구겨진 종이처럼 꾸깃꾸깃하던 자존감도 다시금 회복하는 듯했다.   



  직장인의 신분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싶을 무렵,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브런치에서 구독자들이 좋아해 주던 글들을 고쳐서 문예지에 응모했다. 이제껏 작가를 지망했으나 무엇도 이루지 못했으니. 어쩌면 몸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매일 넘실대는 파도 같은 일상에 몸을 맡겨 흘러갈 요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컥 문예지 수필가 등단이라는 결과를 냈다. 브런치도 등단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 바람 같았다. 절기와 계절이 바뀌는 일처럼 내 생의 계절이 바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모든 계절의 문턱에서는 지나가는 중인 것과 돌아오는 두 계절이 혼재하듯 나 역시도 마냥 즐겁기보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등단 작가라는 명함을 받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스스로를 검열하듯 했다. 끊임없이 공모전에 응모하며 문을 두드리면서도 과연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글일지 고민했다. 그 고민이 짙어질 무렵, 오디오북 공모전 결과를 접했다. 그중 '자기 치유 이상의 글쓰기'를 하는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는 어느 작가의 심사평이 눈에 밟혔다. 마치 그 이상을 하지 못해 선정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은 어떤 것일지 고민하느라 당선 문예지에 정기 투고하는 일마저 미뤘다.





  무려 일곱 해를 절필하고 회사원으로 살다가 주변의 권유로 글쓰기 모임에 나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주로 시를 썼다. 구구절절 다 쏟아내지 않고도 나를 말할 수 있고 적당히 감출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적당히 내보이고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과 만나 글을 나누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글을 매개로 마음을 나눌 때도 있었다.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다 나누는 사람들의 용기에 나도 몇 번이고 내 이야기를 꺼내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모임에 몸 담은 지 다섯 달 만에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꺼냈다. 글감은 '긍정'이었는데 1시간을 고민해도 머릿속이 백지였다. 마감을 앞두고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고 시로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그 짧은 순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내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여섯 번의 긍정>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라는 사람을 꺼내 보였다. 그때 쓴 글을 퇴고해서 쓴 글이 브런치에 올린 '미숙아, 독립영화 같던 탄생'이다. 당시 매번 미리 써와서 주어진 시간 동안 퇴고하던 글과는 확연히 달랐다. 촌각을 다투느라 그럴싸하게 포장할 겨를도 없이 손 가는 대로 써내려 간 '글쓰기 소모임에서 쓴 글 중에 가장 두서없는 글'이었다.

  내게는 그저 낯부끄럽기만 한 그 글을 읽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게 멋지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내게 나눠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감에 쫓겨 쓰기 시작한 글 치고는 아주 과분한 반응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고 여기저기 삐뚤빼뚤 엉성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좋다고 할 때. 오늘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마치 내가 쓴 그 글이 정답처럼 느껴졌다.

  자기 치유의 글쓰기는 무의미한 걸까.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는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 끝내지 못한 고민은 여전한 물음표로 남아 있다. 결국 이것은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이라는 결론에 닿았고 요 며칠 순환버스처럼 돌고 도는 글쓰기의 권태를 겪는 마음을 위한 돌파구를 찾았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온전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못하는 내 엉거주춤한 마음에게 미안해서라도 나를 스쳐간 행복했던 순간들을 빼곡히 기록하기로 했다. 매일 24시간 주어지는 것은 같아도 당장 내일이 맑을지 흐를지 모를 일이니 '행복했던 찰나를 인화해서 사진첩처럼 기록하는 스크랩 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직접 만든 행복 스크랩북


 그렇게 스크랩북을 만들려던 와중에,  갑자기 브런치 메인에 내 브런치 북이 걸렸다. 대체 어떤 글이 읽히는 글인지 스스로 고민을 끝내기도 전에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었고 좋다고도 했고, 하루 24시간 중에 말도 안 되는 숫자의 구독자가 늘었다. 브런치 어느 작가님의 글 중에 '브런치 구독자는 이름으로 왔다가 숫자로 떠난다'라고 했는데, 처음으로 나의 글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고 댓글을 남긴 이들에게는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나를 아는 사람들도 내게 해주지 않는 말들을, 글을 매개로 넘치게 들었다. 어떤 분은 내 글을 보고 울었다고 했고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듣는 진심 어린 응원이 이렇게 큰 힘이 실리는지 몰랐다. 그중 어떤 분은 칠삭둥이로 태어난 나의 탄생을 축복해주기도 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아껴두고 혼자 읽고 싶은 글이라고 했다. 그 댓글은 열 번도 넘게 읽고 또 읽은 듯한데, 내게 준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떤 말로 받아야 할지 몰라 대댓글을 달지도 못하고 눈으로 마음으로 댓글을 곱씹는 중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내게 전화를 걸어 나의 안녕을 빌던 그녀처럼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보고 싶다며 무엇보다 내 건강이 안녕해야 한다고 당부하던 도 있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미처 듣지 못지 못했던 말들 투성이었다.

  멈추지 않고 글을 쓴 덕분에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 듯했다. 오로지 글을 매개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라니. 내 모습이 어떠하든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글로 교감한 듯해서 더욱 묘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문예지에는 어떤 글을 투고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의 원동력은 순전히 구독자분들 덕분다.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수십수백 번의 권태와 고민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다행히도 덕분에 '아무렴 어때, 다 좋아.'라고 답할 수 있을 듯하다.



장렬하던 여름의 태양이 지고 가을 문턱에 다다랐다.

까만 밤하늘 위에 둥실 떠오른 달을 보며 '왜 나는 달을 사랑하는가'라는 불쑥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스스로 답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연유도 찾았다.

가만히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오래 보아도 눈부시지 않고 눈 멀 걱정 없이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다.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모습은 변해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흐린 날 구름에 가릴지라도 변함없이 빛나는 것이 좋다. 손톱만큼 작아지는 때도 있지만 회차지점을 지나 되돌아오는 순환버스처럼 보름달로 둥글게 뜨는 것도 좋다.

  기어코 휘영청 뜨고야 마는 달처럼 나도 그렇겠지. 열심히 흐르며 살다 보면 무덥기만 하던 긴 긴 여름 같던 계절도 선선한 가을로 바뀌어 있겠지.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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