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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농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by 담쟁이캘리


매일 씻는 화장실 세면대에 물때가 꼈다.

보기에는 깨끗해 보였는데 여기저기 물때가 가득했다. 손끝에 묻어나는 물때를 훑다가 결국 계획에도 없던 화장실 청소를 했다. 비누칠을 하고 곳곳을 수세미로 문지르며 뽀득해질 때까지 닦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씻겨 나간 물때를 확인하다가 문득, 겉보기에는 말끔해도 가만 보면 미끄덩거리는 것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때 묻지 않고 깔끔하게만 보이는 것들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미끌거리는 물때가 끼어있듯이 사람 마음도 물때처럼 눈으로 훑어서는 당최 알 수가 없다고 느꼈다. 그중에도 특히 내 마음이 그랬다. 다른 이들의 마음이야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마는, 내 마음은 내 것인데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더 그랬다. 내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완벽한 타인처럼 굴 때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괜찮은 척하면서 대충 훔쳐 닦은 마음일수록 말끔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제대로 돌보지 못해 여기저기 얼룩 투성이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의 대상이 나 자신일 줄이야. 물때는 제때 씻어내지 않으면 얼룩이 지고 습기 차서 곰팡이가 슬기도 하는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곪아버린 마음이 꼭 오래 방치한 물때 같았다.




때를 지우고 새 것처럼 만드는 일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찌든 때일수록 말끔히 지우기까지 시간이 든다. 틈틈이 닦아내고 관리한다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닦아낼 수 있지만,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순간 금세 얼룩이 지고 곰팡이가 피어 처치곤란이 된다. 뒤늦게 발견한 내 마음의 물때도 그랬다. 대충 훑으며 괜찮은 줄 알았건만 자세히 보니 얼룩지고 곰팡이가 피기 직전이었다. 뽀득하게 잘 닦아낸 줄 알았던 마음이 여전히 넘어질 듯 미끄덩거리고 있었다.

자꾸만 질척대는 마음의 이유는 바로 '미련'이었다.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미련이었고, 현재 나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미련함이었다. 소위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문장이 있다.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했을 때 드는 부러운 감정을 승부에 빗대어졌다고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그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부러운 것 투성이라, 내내 지는 삶을 살았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으면서 절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삶을 살면서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씩 남들에게 부러움을 느꼈고, 매일 밤 밀려드는 패배감에 지쳐 잠들었다.

누군가는 평생 겪을 일 없는 탄생의 불행을 시작으로 얻은 장애가 사는 내내 혹처럼 따라다녀서 더욱 그랬다. <흥부놀부전>을 읽으며 혹을 떼주고 금은보화가 담긴 박을 선물하던 은혜 갚은 까치가 나타나기를 바란 적도 있으나, 그것은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고 내가 사는 세상은 현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매사가 진지했고 농담이 없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어리숙한 친구를 비아냥거릴 때 '너 애자냐?'라고 묻는 놀림의 언어조차도 내게는 지극히 현실이라, 그저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삶은 아무리 애써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달리기 시합 같았다. 뒤처지는 것이 일상이었으므로 매일 앞서 달리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했고, 나란히 달릴 수 없는 서글픔을 되새김질하는 삶을 살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 대하듯 하거나 가여워했다.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낮게 보며 섣부르게 베푼 친절과 배려는 도리어 마음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꽤 오랫동안 기를 쓰고 괜찮은 척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동정은 씹지 않고 삼킨 밥처럼 소화되지 않아, 마음이 며칠 밤낮 동안 체한 듯했다. 나마저도 나를 가여워할 수가 없어서 툭하면 괜찮다는 말로 상처를 흥정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쯤이면 손해 보지 않을 만큼 제 값을 잘 치렀다면서 최면 걸듯 스스로를 위로했다.

열아홉 무렵, 우연히 어느 인문학 책에서 '슬픔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문장을 마주한 적 있다. 그리고 나의 날개는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음과 모음의 합으로 지은 문장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며 글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쓸수록 나 자신과 멀어졌다. 날개가 되어준 글은 나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였고, 언제나 감추고 싶은 대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모자란 부분도 있겠지만 나의 아킬레스건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것이라 습관처럼 내게서 도망쳤다.





내가 쓰는 글에는 항상 내가 없었다.

때문에 작가를 지망하고 글쓰기를 전공하는 내내 '너는 대체 왜 네 이야기를 안 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글이라는 것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거라는 말을 듣고도,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남루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사람이 누가 있나.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만큼 지루한 게 또 있나. 그렇게 내 인생을 흥정하며,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정당화했다.


내 인생은 헐값에 주고 산 것인 양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생을 탐냈다. 부끄럽게도 스물아홉, 내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를 불 때까지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 번이라도 다시 태어났으면. 멀쩡한 다리로 걷고 뛰는 기분이 어떤 건지 느끼고 싶었다. 인생은 판타지가 아닌 다큐라는 것을 잘 알아서 판타지는 영화도 소설도 멀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 내 소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어서 너무나도 간절했다.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착각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꿈꿔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꿈'이라는 단어를 방패 삼아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 매년 나의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다니.

스물아홉 무렵에야, 빌고 또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을 한숨 내뱉듯 지인에게 터놓았을 때, 그는 내게 '독하다'라고 했다. 겉으로는 씩씩하게 웃으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고. 어쩜 그렇게 속을 감출 수 있느냐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말없이 한참을 울었다.

탄생을 기념하는 촛불을 끄면서 남몰래 다른 탄생을 꿈꿨다니. 이보다 더 눅진한 마음의 때가 또 있을까. 축축하게 젖은 마음을 헤아리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그 꿈에 파묻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였다. 오지 않을 미래를 꿈꾸며 지금의 나를 외면하는 동안 마음은 여기저기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동안 마음은 수시로 외톨이가 되었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느라 마음이 늘 질척였다.

소외되기 싫어서 빌었던 소원이 오히려 내 마음을 고단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 꿈을 꾸지 않는다. 혹여 씩씩하던 마음이 넘어지는 어떤 날에는 '내 이럴 줄 알았다'며 농담처럼 웃어넘긴다. 그러다 보면 퍽퍽한 삶도 너털웃음 하나로 농담처럼 가벼워질 때가 있다. 슬프게도 몸에 흉터 하나 더 늘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니 '내 모습 자체로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절름발이 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날은 넘어지지 않고 잘 걷다가, 또 어떤 날은 별 것 아닌 일에도 대차게 넘어져 상처를 입는 예측 불허한 걸림돌이 도처에 깔린 삶이다.


하지만 절지 않는 생이라고 해서 넘어질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툭하면 넘어지는' 삶으로 단련이 되어, 금세 털고 일어나는 습관이 든 내 삶이 마냥 가엾지만은 않다. 다만 나 스스로도 나를 온전히 알지 못해서 너무 오래 외롭게 만든 탓에, 좀 더 예쁘고 젊던 날들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후회스러울 뿐.

시선도 주지 않고 방치하느라 어지러워진 마음 구석구석 얼룩진 곳을 문질러 닦으며, 눈에 띄지 않는 물때에 몇 번이고 미끄러져 다쳤을 마음을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나를 알아봐 줬어야 하는데…. 타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등한시했던 내 마음에 핀 곰팡이를 걷어내며, 다시는 스스로를 함부로 평가절하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내일 또다시 넘어질지라도 주어진 하루의 시간만큼은 모자람 없이 닫아야 하므로. 종일 엎치락뒤치락하느라 상처 입은 하루라도, 하루 끝에는 꼭 지혈을 해줘야 자연적으로 회복할 힘도 생길 테니까.





그래서 나는 틈틈이 화장실 물때를 훔친다.

화장실 물때를 훔치다 보면 여전히 미끄덩거리며 질척이는 곳이 있다. 그 자리를 힘주어 닦지 않으면 금세 곰팡이가 피는데,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얼룩진 자리를 깨끗이 씻어내야 질척거리지 않는다. 마음도 그 눅진한 때를 벗겨줘야 찝찝한 곳 없이 말끔할 수 있다.

날 때부터 사망선고를 받고 평생 걷지 못할 거라던 내가 멀쩡히, 그리고 버젓이 잘 살아있다는 것. 이것만큼 즐거운, 살아있다는 농담이 또 있을까. 그래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 웃는다.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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