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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도피가 아닌 소풍처럼

생애 모든 순간은 선택과 집중으로부터 온다

by 담쟁이캘리

우산 없이 비를 맞은 듯 마음이 축 처질 때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차라리 물처럼 툭, 하고 흐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음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들게 마련인데, 방전된 마음이 재충전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들지는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허기가 들 때 점심을 챙기는 일처럼 배꼽시계가 울리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불려야 채울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음은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진단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끔은 얼마의 시간을 들여야 충전이 되는지 짐작 가능한 핸드폰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기분이 착 가라앉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그 감정이 내 태도까지 점령하려 들 때, 내게도 충전기처럼 간단명료한 답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 있다. 그때는 잠자코 침묵하며 기다리면 알아서 방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예측마저도 간절했다.



숙소 발코니에서 본 일출 풍경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들뜰 줄 모르고 땅만 짚고 다닐 때 티끌만 한 실수는 들보만큼 커 보였고, 별 것 아닌 일에도 마음은 쉽사리 고꾸라져 넘치던 자신감마저 바닥에 엎지르기를 반복했다. 그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주로 여행을 떠났다. 대부분 여행이라고 쓰고 도피라고 읽히는 도망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훌쩍 떠났던 이유는 우선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때문에 나에게 여행은 다른 말로 쉼이다. 불필요한 감정의 굴레를 끊고 느린 보폭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것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그런데 여행에 동반자가 있을 때는 또 다르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 그랬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굳이 느린 보폭으로 걷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보폭이 큰 사람과 여행을 할 때는 자연히, 시선을 두는 일에도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는데 이번 여행은 많은 것을 보기보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묵상하겠노라 다짐했더랬다. 나란히 손잡고 걷느라 못 봤던 부모님의 작아진 뒷모습이라든지, 나를 보며 웃는 눈가에 드리운 시간의 흔적을 보는 일 같은 것.


사랑해마지않는 두 사람의 뒷모습



보폭이 큰 부모님의 뒤를 쫓으며 놓칠지도 모를 풍경에 대한 조바심보다, 그 마음 때문에 행여 못 볼지 모를 ‘내 눈앞의 우주’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라는 것 없이 온전히 나에게 기우는 마음을 느끼기로 선택하고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신기한 풍경이 찾아들었다. 엄마 아빠가 도리어 내 보폭에 맞춰 나란히 걷고 있는 것 아닌가. 시와 도를 넘나들며 수개의 관광지를 속속들이 훑기 바쁘던 모습 대신 한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고, 바깥 풍경을 만끽하겠다며 부러 계단을 이용하던 두 사람이 내 손을 잡고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설악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들이 거북이걸음을 걸어 고작 3km 남짓한 거리를 시속 10km로 지나느라, 30분을 훌쩍 넘겼는데 누구 하나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앞서간 차들 중 몇몇은 간간이 행렬을 이탈하기도 했으나 우리는 오히려 딸이 발행하는 브런치 글에 함께 실을 사진을 찍기에 제격이라며, 서행하는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담으려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그 별스럽지도 않은 풍경이 불현듯 눈부시게 반짝였다.


환갑이 넘은 아빠가, 이래 봬도 BTS와 방시혁을 안다며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노래를 두 곡이나 연이어 골라 트는 모습을 보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는 시간의 보폭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술 한 잔 걸치고 축축해진 마음으로 ‘아빠는 기호 1번이 무조건 우리 딸’이라며 툭 던진 진심을 받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운 마음에 시간이 느린 보폭으로 걸었다.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울 때 창틈 새로 들어와 아빠 무릎에 앉은 낙엽


"우리 딸 참 대견해. 지금껏 엄마 아빠한테 뭐 해달라고 조른 적 없잖아. 근데 지금이라도 뭐 해달라고 하면 우리는 다 줄 수 있어."



새삼스레 받은 낯부끄러운 고백에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아빠는 2박 3일 여행 마지막 날 밤, 하루 온종일 만 보 넘게 걸어 부은 내 발을 닦아 주었다. 시작은 샤워기가 샤워부스 천장에 달려 있어 발을 닦으려면 샤워를 해야만 하는 화장실 구조 때문이었다. 다리가 불편해 세면대 위에 발을 올려 쓱 닦을 수 없는 나와 달리 손쉽게 닦고 마는 아빠의 간편함이 부러워 건넨, ‘나도 발 닦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예정에도 없던 세족식을 치렀다. 일평생 꿈에도 그린 적 없는 그림이었다.



분에 넘치게, 그럼에도 언제나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가없는 마음을 받고 나서 알았다.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는데, 다시금 손과 마음에 꽉 차게 주어지는 것을 보니 결국 생애 모든 순간은 선택과 집중으로부터 오나 보다.


브런치에 쓰라며 엄마가 찍어주신 사진


분명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방전된 마음은 배터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진한 것을 다시금 채우려면 충전기처럼 연결할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내게는 그것이 여행이었고, 현실로부터 떠나온 시간 동안 소진된 기력이 충전되기를 바랐다. 바닥난 배터리가 다시 채워질 때까지, 좋든 싫든 충전기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듯이. 무조건적인 쉼으로 바닥난 것들을 채우기 바빴다.



그런데 이번에 가족여행을 하면서 소진된 마음을 충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쉼’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빠른 보폭으로 지나느라 눈길 주지 못했던 중요한 퍼즐 조각들을 찾아 빈틈을 메우는 것.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보니 여행은 도망이나 도피처럼 떠날 것이 아니라, 소풍처럼 떠나야 하나보다. 학창 시절 봄, 가을 소풍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던 보물찾기 게임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는 일상 속에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물들이 소리도 없이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빈칸을 채우시오

/ 담쟁이캘리




사는 동안 삶은 시험 같았다


스스로 마주한 문제들은
빈칸 가득한 주관식이라
곁눈질해도 베껴 쓰기 어려워
답안지를 내고 나서야 답을 알았다


쓰는 동안 삶은 시련 같았다


스스로 마주한 시간들은
빈칸 가득한 외로움이라

곁쐐기 박듯 같이 서기 어려워
답안지를 들고 줄 서도 답을 못 냈다


가족만은 늘 객관식이었다


다행히 스러질 순간마다
빈칸 꽉 채운 든든함이라
곁에서 나를 항상 응원해주니
무조건 찍고 보는 객관식이었다


사는 동안 삶은 시험 같았고
쓰는 동안 시련 같기도 했으나
무조건 찍고 보는 가족이 있어
그래도 반은 먹고 들어갔다



가족만은 늘 빈칸이 없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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