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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31. 2021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너도 그렇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도 문장 하나 남기지 못하고 몽땅 지워버리는 날이 있다.


분명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글을 짓고 알맞은 자리에 앉히기까지는 한참이다. 며칠 새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여도 별 소득 없이 잠드는 날이 늘었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꺼내지 못한 수두룩한 이야기들을 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꼴이 꼭 설익은 밥 억지로 삼키는 기분이라 엉덩이로 쓰는 일마저도 그만두었다. 입맛 없는 날에는 빈 속에 잠을 청하듯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면 하릴없이 빈 문서 그대로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에라도 좋은 글감을 만난다면 좋겠지만 이제껏 자다 말고 영감을 얻어 글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글쓰기는 한 번 막히면 러시 아워에 걸린 것처럼 사방이 막혀서 오래도록 발길을 묶어두는데, 이럴 때는 별도리가 없다. 교통체증처럼 꽉 막힌 속이 뻥뚫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앉아 있을 무렵, 별안간 며칠 전 아빠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본가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매일 출퇴근하며 드나들던 집이 이따금씩 들르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것들이 몇 있다. 일상의 터를 옮기면서 나에게 쏟아지던 부모님의 관심이 방향을 바꿔 서로에게 향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전화나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본가에서 키우는 반려견이 여름맞이 미용을 하러 간 것부터 새로운 반찬을 했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그날도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자취한 뒤로 엄마랑 아빠가 부쩍 친해진 것 같네."
  "친해지긴, 엄마는 어제도 삐쳤어."
  


부쩍 가까워진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이유를 물었고 엄마가 토라진 이유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사건의 발단은 아빠 핸드폰에 저장된 엄마의 이름 때문이었다. 엄마는 '우리 OO(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반면, 나는 '예쁜 딸'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자신에게는 '예쁜'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느냐며 서운해했다는 것이다. 그 사소한 것 하나도 감정이 상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니. 육십 평생을 살고도 여전히 애정싸움을 하는 부모님이 청춘처럼 느껴졌다.



  '예쁜'이라는 말을 붙이든 안 붙이든 뭐 그리 중요한가. 내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은 모두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학창 시절부터 연락하고 지낸 별명부자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꾸미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름 석자가 아닌 다른 닉네임은 연인에게만 한정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거나 예쁘고 멋지다는 형용사를 붙인 적도 없었다. 나에게 닉네임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리였다. 모두 이름 석자로 저장되어 있어도 연인만큼은 유일하게 연락처를 외우는 대상이라는 사실 같은 것.

꾸미는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만나서 서로를 가장 예뻐하고 멋있어하는 게 제일이지. 꾸미는 말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며칠째 막혔던 글의 실마리가 보였다.


  가만 보니 글을 쓸 때는 나 역시도 엄마처럼 꾸미는 것들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 글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좋은 글감을 찾겠다는 핑계로 일상 곳곳에 숨은 이야기들을 등한시했다. 괜찮은, 기막힌, 재밌는, 좋은 등의 형용사가 절로 따라붙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한 문장도 남기지 못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종일 고민해도 아무것도 채워 넣지 못한 빈 문서를 보다가 알았다. 괜찮은 글감이 없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글로 담아낼 마음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글은 말과 달라서 들리는 대로 소리 나는 대로 무작정 뱉을 수가 없다.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밑재료를 체에 밭치듯 완전한 날것의 감정을 거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따금 나의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진 마음은 주로 자음과 모음의 합으로 치환되기 전이라 말이라기보다 모스부호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속 시끄러운 마음마저도 문장이 되기 전에는 온전히 읽힐 수 없는 것을 보면, 날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고 체에 밭치듯 알맹이만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를 밭친다는 것은 쏟아지는 것이 무엇이든 다 받아내겠다는 의지이자 피하지 않고 알맹이만 걸러내겠다는 용기나 다름없었다.

  글 쓰는 일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별 이유도 없이 쓰는 것 자체로 마냥 좋았다. 도처에 깔린 흔한 삶이 글 속에서 의미 있는 문장으로 앉아 있는 것이 좋았고 그 찰나를 포착해 의미부여를 하는 이가 바로 나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설사 누구에게 읽히지 못할지라도, 별스럽지 않은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이 좋았다. '어떠해서' 좋기보다 그냥 쓰는 것만으로 행복하던 때가 더 많았다. 평생 손가락 빨아도 좋으니 원 없이 글을 써보고 싶다던 시절도 있었는데…. 마음을 들여다보니 글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숙제처럼 대했다. 내 글을 아무도 예쁘다고 해주지 않을까 봐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하면서 머릿속을 스치듯 찾아오는 글감들을 무심히 떠나보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어야 흘리는 것 없이 담아낼 수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떠한' 글이 되기보다 '글'이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럴듯한 형용사를 앉히기 전에 글부터 차곡차곡 쌓는 것이 순서였다. 주위에 특별하고 멋진 무엇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일상도 담담하고 편안하게 써 내려갈 수 있어야,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어떠한' 글이든 체에 걸러내듯 써낼 수 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앞에 꾸민 말이 아니라 그 꾸밈을 받는 대상부터 온전히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어떠한' 글이 나오든지 나의 일상과 감정을 자꾸자꾸 체에 걸러야 불순물은 사라지고 진짜 알맹이가 남을 테니. 오늘도 스스로 자력으로 소화시킨 날 것의 감정들을 글로 정제시켜 한 문장 한 문장 부지런히 이어 본다. 그렇게 글이 모이다 보면 스스로 애써 꾸미는 말을 찾지 않아도, 분명 나만의 예쁜 구석을 발견하게 될 테니.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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