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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27. 2021

함부로 꺾지 마세요, 내 인생이에요

벚꽃, 같은 인생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려 안간힘 쓰던 때가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동했다. 미신인 줄 알면서도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나에게 벚꽃은 '시간의 경계'를 벗어난 자유의 상징처럼 읽혔다. 보통의 꽃들은 싹을 틔우고 꽃이 만개하고 나면 홀연히 지는 반면, 벚꽃은 꽃잎이 떠난 자리에 새싹 같은 초록잎이 돋는다.

 

벚꽃에게는 엔딩이 시작인 셈이다. 벚꽃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끝을 보나서 초록 잎을 틔우는 꽃이라니…. 처음 이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운 설렘을 느꼈던 그 날을 기억한다. 여느 꽃들의 생애주기와 달라서 당혹스러웠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식을 깨고 자기 속도로 피고 지는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심지어 낙화하는 풍경마저도 호기로워 보였다. 정말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으면 나의 남은 인생도 호방하게 싹 틔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일에 영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수학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다. 학창 시절 적성검사를 하면 수리능력 20%, 언어능력 80%로 극과 극이었다. 문과냐 이과냐 이 고민으로 심각하게 고민하 친구들과 달리, 큰 고민 없이 문과를 택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 포기하는 건 금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출문제를 풀 때는 괜찮다가 시험지만 보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험 공포증이라면 모든 과목이 다 그래야 하는데, 숫자 울렁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유독 수학 시험만 그랬다. 아빠는 수학 시험만 치르고 나 전 과목 평균 점수가 깎이 보고 '와르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수학 시험은 중간고사 기간, 그것도 나의 생일날마다 돌아왔다. 혹시라도 시험을 망칠까 봐 미역국도 편히 먹지 못했다. 그런 미신은 믿지 말라는 엄마 말에 미역국 맛만 보고 나온 날,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그때는 나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 밤늦도록 친구네 집에서 펑펑 울었다. 차라리 속 편하게 밥이라도 말아먹고  '이게 다 미역국 때문'이라고 미신이라도 탓했다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밤새우며 공부해도 수학 점수는 오르지 않았다. 애를 써도 제자리 혹은 내리막인 마치 내 인생 같았다.  이유로 봄만 되면 홀린 듯이 흩날리는 벚꽃을 았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열심을 낸 것은 팔 할이 꽃말 때문이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였다. 수많은 말 중에 꽃말이 시험이라니. 안 그래도 '망쳐버린 시험지' 같은 내 인생을 만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꽃말이었다. 정말로 벚꽃에게 소원을 이루어 줄 영험한 힘이 있다면 모든 것이 과락 같은 내 인생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남들은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고 했지만 나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이미 밑지고 시작한 삶이었다.


열 달을 채우고 태어난 남들과 다르게 석 달 먼저 가불 하듯 당겨 시작한 삶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평생 족쇄 같은 뇌성마비를 얻었고, 평범한 일상과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자유를 잃었다. 사는 내내 절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삶이었다. 두 발로 온전하게 서 있기 힘든 인생이라 무엇이든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끔은 벚꽃 잎을 죽기 살기로 쫓았다.


  나의 아킬레스건은 꼭 킬러 문항 같았다.


킬러 문항은 너무 어려워 푸는 사람이 적은 문제를 뜻하는 말인데, 나의 아킬레스건은 사람들에게 틀린 답안지처럼 읽혔다. 다리 하나 불편할 뿐인데 그것 때문에 내게 주는 평균 점수마저도 바닥이었다. 공식을 정해두고 보기 안에 답이 없으면 무작정 틀린 사람 취급을 받것이 꼭 수학 문제와 닮아보았다. 수학은 과목이지만 아킬레스건은 곧 내 인생이자, 보란 듯이 풀어야 할 숙제 같아서 유독 어려웠다. 타고난 무언가를 극복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무리에도 나란히 설 수 없는 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흘기는 날 선 시선이 내 몸 이곳저곳을 베었다. 어떤 날은 그 서늘한 시선이 심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 독처럼 퍼져 며칠을 밤낮없이 앓아야 했다. 마치 탄생부터가 잘못 대입된 공식 같았다. 맞는 답을 적어도 후한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독히도 외로운 시험이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보는 벚꽃은 가히 매력적이었다.


벚꽃은 초록의 싹을 틔우고 꽃 피운 후에 진다는 보통 꽃들의 당연한 공식을 비켜갔다. 오롯이 자기 시간속도에 집중하며 먼저 만개하고, 그 꽃이 떠난 자리에 새싹을 상징하는 초록 잎을 돋우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찰나의 봄을 살아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벚꽃에게 용기를 얻었다. 꽃이 지고 모두가 끝났다고 발길 돌린 후에도, 끝까지 초록 잎을 돋우고서야 자기 생을 마무리하는 그 결심이 고마웠다.


안락한 가지를 벗어나 낙화하는 모습마저도 대단하게 보였다. 땅으로 꺼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강단 있는 생명이었다. 외유내강의 삶을 살아 내면서 ‘너도 기죽지 말고 살아 봐, 좋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섣부른 동정으로 나를 더 가엾게 만들었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무턱대고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 준 벚꽃의 말없는 위로에, 나 역시 매년마다 순환하는 봄을 기다리며 버텼다.    


 





  스물셋의 어느 날, 드디어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았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 같은 일은 없었다.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돌아오는 봄마다 간절히 빌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수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혹시 모를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간절히 꿈꾼다. 여전히 인생 곳곳에 킬러 문항들이 도사리고 있고, 고심 끝에 적어낸 답안지는 온통 빗금 투성이다. 내가 적은 답이 모두 지금처럼 답안을 비켜간다면, 아마 평생을 가도 동그라미는 받기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수학 시험지를 받아 들던 그때처럼 속은 좀 쓰리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학을 잘하는 나도, 아킬레스건이 없는 나도 이번 삶에는 갖지 못하고 태어났으니 속 편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느라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으련다. 차라리 매년 되돌아오는 나의 생일상을 속 편히 받고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동그라미로 가득 찬 답안지를 받지는 못해도, 둥근 별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 둥근 별에 있는 수많은 생명 중에 사람으로 태어나 나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첫째요. 그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둘째다. 마지막으로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혼자가 아닌 무리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함께 마음과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받은 세 번째 위로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 인생은 각자의 방식대로 빈칸을 채워가는 주관식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답을 자유롭게 서술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마음대로 채점해버리고는 한다.


그뿐이랴. 겨우 완만한 평지에 들어섰다고 안도할 때면 벚꽃의 꽃말처럼 ‘중간고사’를 치르듯 눈앞에 킬러 문항을 던져 놓는다. 난이도도 제각각이라 예습할 수도 없고, 시기도 달라서 아무리 복습해도 쪽지시험처럼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평소 실력대로 잘 풀면 다행이지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고배를 마셔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자기 갈 길을 가는 벚꽃처럼 나 역시 그렇게 살겠노라 다짐했다.


  어차피 공식과 답안지는 출제자가 정한 것이고 인생을 풀어가는 것은 내 몫이다. 아무도 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이니 나 스스로 가장 즐겁고 잘할 수 있는 방식대로 풀어가 보기로 했다. 벚꽃이 주변 신경 쓰지 않고 흐드러지게 꽃 피우고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멋들어지게 초록 잎을 돋우듯이. 세상과는 다른 시차로, 조금 많이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가 보기로 했다.




곧, 벚꽃의 계절이 온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모두 되돌아올 찰나의 봄을 기대하면서 벚꽃같이 우직하게 자기 갈 길을 가기를.

그 누구도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이므로 부디, 함부로 꺾지 말기를. 섣불리 훈수 두지 않는 침묵의 마음으로 진실로 응원한다.  






들꽃

/ 담쟁이캘리




뒤뜰에 핀 들꽃에도 이름이 있다



한데 모아 핀 들꽃 모두

같은 방향으로 일렁이는 듯해도

바람에 감춰진 저마다 숨결이 있다



뒤뜰에 핀 아무개도 이름이 있다



뭉뚱그려 핀 인생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듯해도

저마다 피워낼 각자의 꽃들이 있다



눈길 주지 않아도

부단히 꽃 피우는 생이 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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