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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26. 2021

나에게 꼭 맞는 것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그랬다. 자취는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이라고. 서른넷, 조금은 늦은 생애 첫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으나 첫날밤부터 꿀잠이 들었고 조리를 하고 나면 나중에 몰아서 치우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도중에 틈틈이 치워 설거지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평소 꽃무늬는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건만 막상 자취방 인테리어를 끝내고 나니 꽃무늬가 제법 눈에 띈다.



이 사진에는 없지만 겨울 이불은 자취방 커튼과 세트로 맞췄다



낯선 나를 마주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래도 바뀔 것 같지 않던 내 습관이 변할 때였다. 예를 들면 푸짐한 것을 선호하던 내가 요즘은 '무엇이든 양껏'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음식이 그중 하나다. 과거에는 모자란 것보다 넘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무조건 푸짐하게 차려두고 먹었으나 자취를 시작한 뒤부터 달라지는 중이다. 실제 먹을 만큼 사 먹고 잔반 없이 싹 비운다. 허기질 때는 그저 맛있던 것들이 배를 불리고 나면 금세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남겨진 모양이 마치 양날의 검 같아서. 식사시간을 끝까지 즐겁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가끔 나의 식욕과 식사량이 엇박이라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만들 때도 있다. 마음은 늘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고도 남을 듯하지만, 실제 식사량이 그에 못 미쳐 종종 시행착오를 겪는다. 겨우 8개월 차 자취생이라 그럴까. 여전히 식사시간마다 수용 가능한 양을 가늠하며 넘치는 식욕을 적절히 다스리는 중이다. 본가에 있을 때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부엌살림이 오롯한 나의 살림이 되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중이다. 처음 내 생애 첫 자취 공간을 꾸밀 때는 취향이 담긴 인테리어를 하나둘씩 늘려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온전히 내 몫인 집안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는 법을 배워 가는 중이다.



  스스로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줄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대형 쓰레기통이다. 텅 빈 자취 공간에 가구를 배치한 후 가장 먼저 산 물건이 쓰레기통이었는데, 재활용 분리수거함과 화장실 위생 용품함을 제외하면 0.5L의 작은 쓰레기통 두 개가 전부다. 집들이 온 친구들 대부분이 쓰레기통이 너무 작아 불편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쓰레기를 수집할 것도 아니고 크기가 작아 자주 비우게 되니 오히려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이보다 더 꼭 맞는 것이 없었다.



똑같은 사이즈의 분홍색 쓰레기통은 침실에 두었다


모자라거나 넘치는 일 없는 적절한 양이 좋다고 느낀 것은 앞서 잠깐 언급한 음식물 쓰레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취를 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냉장고에 둔 음식이 상했을 때였다. 음식을 냉장이 잘 되는 곳에 넣어두어도 제때 비우지 않으면 상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나서 꽤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가족과 사는 동안은 냉장고 속 반찬 순환이 잘 됐던 터라, 남은 음식은 언제나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일 정도로 빨리 비었다.



그런데 자취하고부터는 열심히 먹어도 입이 하나라 반찬이 자연스레 쌓였다. 며칠 새 폭삭 쉬어서 손도 델 수 없게 될 때면 하릴없이 음식물 쓰레기봉투 배만 불렸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만으로도 상하는 통에 벼락치기하듯 냉장고 파먹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뭐든 제때 비워야 뒤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일까. 쓰레기통도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것보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자주 비울 수 있는 작은 것이 좋다. 꽉 찼을 때 묵직한 것보다, 아무리 가득 차도 홀가분한 무게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비단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취향은 사전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의미하는데 자취를 하면서 내 마음도 같이 방향을 잡았다. 스스로의 감정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묵히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하기로 말이다. 가족과 있을 때는 상호작용을 통해 저절로 털어내던 것들도 혼자서는 생각이 많아져 부정적으로 흐를 때가 있다. 일순간 감정이 바닥을 쳐 순식간에 마음이 상하는 것을 경험하고부터는 묵은 감정들을 직면하고 수시로 비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감정은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기 쉬워서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뒤늦게 알아챈 감정들은 대개 케케묵은 쓰레기 못지않은 악취를 풍겨,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때가 많다. 모른 척 외면하면 그 순간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제때 직면하지 않은 것들은 예기치 않은 날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때문에 켜켜이 쌓인 감정을 대할 때도 자취방에 둔 작은 쓰레기통처럼 수시로 비우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냉장고 속 음식이 뚜껑을 열어보면 삼키지 못할 정도로 상했을 수 있듯이, 감정도 때에 따라 냉장고 파먹기와 같은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고 제때 소화시켜 잘 배출해야 뒤탈이 없다. 몽땅 다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무작정 삼키다가는 마음이 체하기 쉽다. 소화불량이 된 마음이 역류하는 고통을 겪느니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양을 제대로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자기에게 꼭 맞는 것으로 양껏 즐길 수 있어야 처치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고 마음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그릇이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도록 언제든지 홀가분한 무게로 처리할 수 있게 무던히 속을 살피고 부지런히 쓰레기통을 비운다. 쓰레기는 버려야 할 때 미련 없이 버려야 하고 한 번 버린 것은 결코 다시 돌아보거나 줍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서 매주 돌아오는 쓰레기 배출일마다 습관처럼 내 마음도 같이 살핀다. 살뜰히 돌봐야 하는 것은 집안 살림뿐만 아니라 일평생 더 부 살아야 할 마음 살림도 일생에 중요한 과업이므로.




묵히지 않고 살뜰히 살핀 덕분에
오늘도 또 하나 배워간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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