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감상

by 담쟁이캘리



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새벽 어스름을 깨고 뜨는 태양, 주위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 잠들지 않고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도 어제와 닮은 모습을 지키고 있을 뿐 눈 안에 담긴 모든 풍경은 생애 단 한 번이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어 미처 깨닫지 못한 수 없는 처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일이다.



스스로 무던해져 인지하지 못할 뿐, 여러 해 반복돼 온 모든 일상은 자기만의 파동을 가지고 나를 향해 진동해 온다. 온몸의 감각이 그 진동을 포착하는 순간, 그것은 ‘의미’가 된다. 허나, 느끼지 못하면 아무 일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무의미로 저문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의미가 되어 남는 순간이 있다. 되감아 보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은 ‘과거’가 되고 말지만 ‘의미’ 있는 순간은 늘 생생한 현재로 각인되어 시제(時制)에서 자유로워진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나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김춘수 <꽃> 중에 일부 발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구절처럼 어느 순간 별스러운 것으로 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뜻밖이라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추억이라 부른다.



공통점은 어느 한순간에 매료되면,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의미 없음이 ‘의미’로 전복(顚覆)되는 순간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로 와 꽃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스스로도 무던해져 수없이 지나치던 풍경에 ‘이름을 붙여줄 때’ 어제와 똑 닮은 일상도 특별한 오늘로 각인된다. 나태주 시인이 이름 모를 들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것이 예쁘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이 바로 그렇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는 일처럼 뜬 눈과 감은 눈 안으로 넘나드는 쉼 없는 일상의 풍경 사이에 틈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을 민감하게 기억한다.



때때로 생은 매서운 겨울 파도와도 같아서 켜켜이 쌓였던 ‘의미’가 무의미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감흥조차 없던 의미 없음이 ‘의미’가 되어 밤새도록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넘실거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애 주어진 풍경에 끊임없이 시선을 두는 사람은 생애 단 한 번뿐인 풍경 속에서도, 자기 삶의 전부를 울릴 만큼의 파동을 감지해 낸다.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에 일부 발췌




행여 꺼져가는 연탄재를 보고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깨닫는 일을 누군가는 자잘하다고 할지 몰라도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늘 그 순간을 잡는다.







느낌

/ 담쟁이캘리




느낌은
말없는 마음이
찰나에 그려내는 장면일지 몰라


그 어떤 서사도
얼개도 없이 그저, 속 안에
잠자코 있던 마음이 진동하고
이제껏 점잔 떨던 모든 말들이
무의미한 소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짧은 순간에
말없는 마음이 그려내는 장면일지 몰라


말도 안 돼, 이상하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느낌인데
보통 우리는 마음을 따라가더라


소리 없는 마음이
찰나에 그려내는 명장면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첫 씬이자
되감아 볼 수 없는 씬이야


결말이 아쉬울 순 있어도
마음대로 떠난 걸음에는 후회가 없지


찰나의 순간,
강렬한 느낌으로
마음이 그려내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내 생애 명장면이거든


* 씬(scene): (특정한 일이 벌어지는) 장면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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