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영을 배울 때 가장 당황했던 말은 ‘힘빼세요’였다. 튜브도 손잡이도 없이 맨 몸으로 물질을 하려니 두렵기만 한데, 힘을 빼야 물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은 나에게 대단한 모순이었다. 수영강사의 말을 무시하고 어깨와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주다가, 연거푸 물 먹고 나서야 겨우 힘을 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참 매력적인 역설이었다.
부모님은 '작가는 아무나 하느냐'며 문예창작학과 진학을 반대했으므로 내 목표는 휴학 없이 졸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물두 살 무렵,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어느 날부터 왼쪽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핸디캡이 있던 내게 다리 통증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처음이었다.
강의실까지 500m를 남겨두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했고, 매일 아침마다 부축해주는 친구의 수고에 미안한 마음이 고마움을 넘어섰을 때 휴학을 결심했다. 그렇게 재활을 위해 시작한 생애 첫 수영 강습이었다. 남들보다 뼈가 가늘고 작은 내게 수영은 최적의 운동이었다.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 때문에 물을 무서워하는 것만 빼면.
대학시절, 동화 창작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어린이는 가장 배려받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가장 연약하다. 그들은 성별도 존재하지 않은 단계라고 했다. 각자의 성별대로 구실 할 수도, 부모가 없이 어딘가로 이동해 맘대로 행동할 수도 없다. 어린이가 귀여운 것은, 사실 귀여워야 하기 때문에 귀여울 수밖에 없는 생존법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니 정말 그랬다. 어린 시절의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해서는 안 됐던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만 되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펑-' 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사전에 휴학은 없던 단어였어요.
하루빨리 졸업을 해서 스스로 앞가림을 하고 싶었다. 빨리 힘을 기르고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돌이켜 보니 참 오랜 시간 동안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채 살았다. 태생부터 남들과 출발점이 달랐으므로 걸음이 느린 생을 사는 내내, 멍들지 않은 무릎을 갖고 싶어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살았다.
마음먹은 대로 힘이 실린 날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그 절실한 바람 덕에, 작은 돌부리에 힘없이 고꾸라지던 날과 멀어졌다. 삶은 힘들이지 않고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복되는 일상마저도 애써 몸을 일으켜 힘 실지 않으면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힘을 빼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내 마음에 쉬이 가시지 않는 파장을 일게 했다.
자기 사전에 어떤 단어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걸요?
수영강사는 내게 자신도 강사를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본래 선수가 꿈이었으나 어깨를 다쳐 진로를 변경했고, 지금은자기가 좋아하는 물에서 일할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살면서 자기 사전에 둘 말과 아닌 말을 구분 지어 두고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주어진 숨'으로 사는 것이 숙명이므로. 모두의 삶이 준비 없이 비를 만나는 일 같은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했다.
스물. 철없어서 무모했고 무모해서 상처투성이던 그 시절, 아이들 중 누군가는 첫사랑에 실패했고 또 누구는 밤새도록 공부했는데도 시험을 망쳤고, 먼 얘기인 줄 알았던 군대 영장이 나와 삐딱선을 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저마다의 이유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던 우리들에게, 소설 전공수업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앞만 봐. 길은 앞에만 있는 게 아니야.
옆으로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갈 길은 언제나 있단다. 세상에 어느 길이 넓고 가기 쉬운 길이겠느냐고, 혹여나 그런 길이 있더라도 그만큼 재미없고 멋나지 않은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당장은 긴 터널 같아도 살다 보면 길은 나기 마련이란다. 지금의 아픔을 '우주 만한' 것으로 여기며 세상 다 끝난 표정을 짓고 있던 우리에게 이 말도 덧붙였다.
정작 내일을 살아보지도 않았고, 내일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왜 알지도 못하는 '내일'을 스스로 점치냐면서. 길은 막혀도 시간은 흐른단다. 그리고 길은 막혀도 시간은 흐르기 때문에, 그 길은 항상 다르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볼 만한 것이란다.
곤마가 된 돌은 그대로 죽게 놔두는 거야. 단, 그들을 활용하면서 내 이익으로 도모하는 거지
- 드라마 <미생> 중 발췌.
'이유 없이 오는 불행이 있으면 이유 없이 오는 행운도 있다.'
연중 한두 번 기분전환을 위해 복권을 사도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스스로 의미부여만 하고 마는 나에게 이 말은 마치 긁지 않은 복권 같았다. 정오부터 자정까지 스물네 시간 동안 시간은 흐트러짐 없이 흐를지라도, 그 끝은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숙명처럼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마냥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기적은 없다. 착실히 달려온 마리오의 동전 같은 게 모여 기적처럼 보일 뿐." 동전을 모으는 마음으로 착실히 하루를 살다 보면, 어딘가에 저절로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넌 아직 어려'라는 말과 '네가 몇 살인데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꾸지람을 들으며, 학교에 진학하는 일처럼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헌데, 지금은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흐르는 물에 몸을 가만히 맡길 줄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 모두 수없이 흔들릴 예정이므로 물먹지 않으려면 온 몸에 힘을 빼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