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내 브런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빠가 술 마시면 빵 사 오는 얘기가 4만 뷰를 넘겼다

by 담쟁이캘리




어디로 들어가야
글을 구독할 수 있지?



글쓰기는 취미로 하고 밥벌이는 평범하게 회사원 생활이나 하라더니, 우리 아빠가 달라졌다. 올해 회갑을 맞이해 아빠를 브런치에 올린 내 나름의 헌정 글이 누적 조회수 4만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메인의 위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숫자였다.



생전 처음 다음 메인에 오른 글은 <퇴근 10분 전, 회사에서 잘렸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몇 해 전 열심히 다니던 회사에서 별안간 퇴사 통보를 받고, 집에서 쉬면서 썼던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을 때는 솔직히 놀랍기는 했어도 제목 탓이겠거니 했다. 내 입장에서는 퇴근 10분 전에 잘린 것이 사실이지만, 또 그만큼 드라마틱한 제목이기도 하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빠도 처음 제목을 보자마자 "아, 이건 제목이 다했네."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5분 단위로 조회수가 100명씩 증가하고 있다고 했더니 아빠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나를 데려다주면서 은근슬쩍 '지금은 몇 명이나 읽었어?'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에는 다음 메인 페이지에서 직접 검색해서 내 글을 읽으셨는지 내 글에 '좋아요'까지 눌렀다. (이때만 해도 브런치 어플을 몰라서 구독까지는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총 몇 명이 읽었어?



아빠는 내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린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갈 무렵, 넌지시 물었다. 그때가 누적 조회수 5만을 넘겼을 때였는데, 자고 일어나면 1만 명씩 돌파하던 숫자가 조금씩 주춤하고 있던 터라 이제 사람들이 더는 안 읽을 것 같다고 여기서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아빠는 '키만 멀대같이 큰 싱거운 남자'로 통하는데 내 글 하나로 달라지는 심경변화가 반갑고 신기하기도 했다. 초반부터 반응이 좋으니 다음 글은 부담이 되겠다며 아빠의 말투에서 웃음이 묻어났다. 크게 내색하지 않지만 내심 즐거워하는 저 모습을 좀 더 오래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 나 다음 글 제목 정했어.
<아빠는 술만 마시면 빵을 사 오신다> 이거야.



내가 처음 이 제목으로 글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정말 제목이 그거냐며 그 이야기로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우리의 대화는 곧장 다른 이야기로 빠졌다. 며칠 후, 아빠를 위한 이 글을 퇴고하면서 이 글이 올해 회갑을 맞이한 아빠를 위한 헌정글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 가족은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날 채비를 했어야 했으나, 별안간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때문에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이렇게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선물을 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이 글의 주인공이 아빠니까.









글을 발행하고 진짜로 아빠를 위한 글을 썼다고 가족 카톡방에 공유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마치 우리 아빠의 회갑을 축하해 주고 싶었던 딸의 마음을 갸륵하게 여겨서 준 또 하나의 특별 선물처럼. 덕분에 아빠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에게 읽혔고, 좋아요를 받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조회수가 3만을 넘어가던 무렵,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지금 근무 중이라서 이따가…
딸, 브런치에서 뭐라고 검색해야 나와?
응? 담쟁이캘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원하는 대답을 듣고 끊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랑을 하고 싶은가 보다 싶었는데, 퇴근할 무렵 브런치 알림이 떴다. 그리고 아빠는 내 브런치 구독자가 되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작가는 직업이 될 수 없다며 내 꿈으로 밥벌이하는 일을 반대하던 아빠에게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세상에는 효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생애 첫 아빠를 위한 헌정글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세 꺼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거운 선물이라 기쁨의 여운이 꽤 길었다.



아빠에게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게 뭐냐며 그거 하면 돈 버는 거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자 살짝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랬던 아빠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자가 되었다고 하니 도리어 내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좋아요'와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기 위한 그 과정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져서 더욱 애틋한 선물이었다.





다음 글 제목은 이거 해,
술 마신 아빠가 이번엔 치킨을 사 왔다.



그날 밤 아빠는 귀갓길에 달큼하게 취해 한 손에 치킨을 사 들고 오셨다. 우스갯소리로 누군가 내 글에 '술 마시고 치킨을 사 오셨어야' 했다는 댓글을 읽어드렸는데, 그걸 기억하고 축하의 의미로 치킨을 사들고 온 것이었다. (그때 댓글 써 주신 분 보고 계신가요? 진짜 아빠가 술 마시고 치킨을 사 오셨습니다. 덕분에 포식했습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빵을 사 오신다는 글에 남긴 댓글



생애 가장 맛있는 치킨은 그 옛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던 처갓집 양념통닭인 줄 알았는데, 그 날 가장 맛있는 치킨의 랭킹 순위마저 변한 것을 보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참 인상 깊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취급을 받은 날, 쓴 글로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아 '(글) 쓸 만한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퇴근 10분 전, 회사에서 잘렸다>는 글을 올렸을 때, 사직을 결심했던 지금 회사에서 다행스럽게도 일이 좋은 쪽으로 풀려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빵을 사 오신다>는 글이 메인에 올랐을 때, 부서 이동이라는 '탈출기'를 끝내고 정착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말처럼 '불행' 쪽으로 기울어 있던 무게 추가 '행복'이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 균형을 맞춰가는 듯했다.



인생은 책처럼 마지막이 몇 페이지인지 알 수 없어서 쉬이 방심할 수도, 뒷 내용을 미리 읽을 수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내 흐린 줄만 알았던 내 일상도 비가 그치고 볕이 드는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이제 막 비 개인 젖은 땅 위로, 낯을 감췄던 해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웃음기 사라졌던 내가, 이제 겨우 웃기 시작했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거면 바랄 게 없어.



그날 밤, 아빠의 말을 곱씹으며 엄마가 '키만 멀대같이 큰 싱거운' 사람이라던 이 남자랑 왜 몇 년 동안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고 말수도 적고 평소 애정표현도 서툰 이 사람이 우리 아빠여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행복이 별 것인가.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그래서,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하다.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또 다른 행복의 문 하나가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닫혀버린 문만 보느라 또 다른 행복의 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어쩌면 또 다른 행복의 문이라는 건 대단히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나 작고 사소한,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또 다른 행복의 문일지도 모른다.

-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중에서 발췌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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