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없는 날, 엄마를 기다렸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일

by 담쟁이캘리



비 오는 날만 되면 빈 교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가정주부 생활을 끝내고 맞벌이를 시작한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마중 나올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유년 시절, 소심한 사춘기 반항이 시작됐다. 엄마는 내가 사춘기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고 말했지만, 말하지 못한 내 마음속 사춘기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맞벌이가 지금만큼 흔치 않았던 시절, 갑자기 기울어버린 가세에 엄마는 바깥일을 시작했고 텅 빈 집에 홀로 돌아오는 날이 쌓여 갈수록 괜한 불만의 화살은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는 일을 나갈 때마다 돈가스, 햄 부침, 돼지김치찌개 같은 고기반찬을 만들어두고 나갔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앉은자리에서 반찬 통을 뚝딱 비워내는 오빠와 달리 나는 깨작거리며 엄마의 귀가 전까지 허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애정을 갈구했다.



비 오는 날마다 반복되는 기약 없는 기다림도 같은 맥락이었다. '엄마가 없어서 비를 몽땅 맞았다'는 것으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했다. 오늘 비 온다니까 우산 꼭 챙겨 가라며 출근하는 엄마 말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괜한 심술이 났다. 둘씩 짝 지어 하교하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거나, '엄마 오늘도 일 나가셨니?'라고 묻는 엄마 친구를 만날 때면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 있지 않고 일을 나간 거지?' 하는 삐뚤어진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맑은 날 걷는 걸음이 천근이라면 비 오는 날 걷는 걸음은 만근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만 바닥을 끌던 내 발은 금세 신발 밑창에 구멍을 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뽀송하던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두 맨발은 늘 물에 퉁퉁 불어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내일 신을 신발 걱정부터 앞섰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집으로 왔건만, 날이 새도록 마르지 않는 눅눅한 신발에 발을 넣고 걸을 때면 맑은 날에도 내내 흐린 구름 낀 마음이 되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는 사람이 없고, 덜 마른 신발을 신고 등교를 한다는 사실은 어느새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있는 어떤 것이 '나'에게 부재하다는 것이 으스대도 괜찮은 허락이라고 느낀 것인지, 우리와 같지 않다는 '다름'이 주는 차이를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의 아이들은 사소한 당위성을 찾아내 상처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냥 너는 조금 불편할 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것은 '우산'이 되어줄 내 편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의 핸디캡을 장애라고 말한 적 없었다. 그냥 조금 불편한 것뿐이라고 했으나 그 '조금'의 차이는 좁힐 수 없이 컸다. 경험한 적 없는 편 가르기와 들어본 적 없는 비수 같은 말들이 소나기처럼 예고도 없이 무자비하게 쏟아질 때, 그 비를 막아 줄 '우산'을 찾아 무작정 기다리는 것으로 내 나름의 구조 요청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은 나보다 하루 더 사는 게 꿈이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꿈이고 평생 끼고 살 수 없으므로 엄마는 악역을 자처했다. 사는 동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로 입학해 직접 부딪쳐 보게 하려던 엄마의 교육관 덕분에 '겉으로만 조용했던' 사춘기를 지나면서 작은 세상을 알았다. 맑은 날에도 자주 눅눅한 걸음을 걸었고, 그 축축해진 마음은 땡볕에 두어도 잘 마르지 않았다.



엄마는 오랜 숙제였던 나의 홀로서기를 끝냄과 동시에 악역을 그만두었고, 나도 비 오는 날 엄마의 마중을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꼭 마중을 나오지 않아도 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부재했던 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우산'이 있고, 그것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오랜 불안으로부터 졸업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돈 주고 우산을 사 본 일이 없다. 비가 오기 전에 예비 우산을 두어 개 챙겨 두거나, 어지간한 비는 그냥 맞고 걸었다. 이상하게도 우산을 돈 주고 사는 일이 내게는 낯설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칠 것을 알기 때문일까. 어차피 지나갈 것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비 오는 날, 지하보도를 오르면서 우산을 펴기 위해 잡았다가 다시 놓은 적 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맞을만한 비'였다.



문득 이제껏 지나온 시간이 '맞을 만한 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방울의 비를 맞는다고 한들, 감기 한 번 앓고 나면 끝날 일인 것을. 그저 내게 온 열병을 열심히 앓고 난 뒤 다시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그깟 '감기'같은 순간들을 뭐 그리 두려워했는지. 누구나 한 번쯤은 앓고 마는 '살면서 몇 번쯤은 앓고 지나는' 감기 같은 것일 뿐인데, 참 오래도록 힘들어하느라 애썼구나 싶었다.



결국 모든 비는 그치기 위해 내리고, 비 온 뒤 땅은 굳고 하늘은 개일 일만 남는 것인데 절절매는 마음이 스스로를 지옥으로 만들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악역을 자처해 왔음을 알았다. 얄궂게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어서 마냥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게 한다. 잘은 모르지만, 산다는 것은 엉거주춤한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마음을 세우는 것이 아닐까. 제 아무리 일기 예보를 챙겨 보고 나와도, 예고 없는 비를 내리거나 아침까지 흐리던 날이 불현듯 맑게 개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므로.



희한하고 우스워도 이것이 보통의 삶이고, 갑자기 낯을 바꾸는 날씨가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기적일 테니. 내 손에 우산이 있다고 으스댈 것도, 혹여 오늘이 우산 없는 날이라도 너무 슬퍼할 것도 없노라고. 어린 시절, 오랜 기억 속 해묵은 생각을 정리하며 오늘도 또 하나 배워간다.








빈칸을 채우시오

/ 담쟁이캘리




사는 동안 삶은 시험 같았다


스스로 마주한 문제들은
빈칸 가득한 주관식이라
곁눈질해도 베껴 쓰기 어려워
답안지를 내고 나서야 답을 알았다


쓰는 동안 삶은 시련 같았다


스스로 마주한 시간들은
빈칸 가득한 외로움이라

곁쐐기 박듯 같이 서기 어려워
답안지를 들고 줄 서도 답을 못 냈다


가족만은 늘 객관식이었다


다행히 스러질 순간마다
빈칸 꽉 채운 든든함이라
곁에서 나를 항상 응원해주니
무조건 찍고 보는 객관식이었다


사는 동안 삶은 시험 같았고
쓰는 동안 시련 같기도 했으나
무조건 찍고 보는 가족이 있어
그래도 반은 먹고 들어갔다



가족만은 늘 빈칸이 없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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