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네 살, 생전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칠삭둥이로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평생 걷지 못할 거라던 무시무시한 의사 선생님의 경고를 뒤엎고, 불완전하지만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지 딱 8년 만의 일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조금 불편할 뿐'이라며 한 번도 '장애'라고 표현한 적 없었으나, 학교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 있어서 편견 없이 친해지기에는 어려운 '장애물'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이들의 따돌림이 심해지자, 엄마는 나를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오빠가 다니는 중학교로 함께 보내기로 결심했다. 덕분에 중학교 입학과 함께 나의 열네 살 인생, 처음으로 버스를 탈 기회가 생겼다. 밖에만 나가면 시도 때도 없이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돼 돌아오는 통에, 집 앞 동네 말고는 아무 데도 가지 말라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IMF로 가세가 기울어 맞벌이를 하게 된 뒤부터 엄마는 보호자의 역할을 오빠에게 일임했다. 학년도 끝나는 시간도 다르지만 오빠와 나란히 등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서.
겉모습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자주 아이들 사이에서 '열외'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아직은 아이들이 몸이 크는 중이라 마음이 다 크지 못해 그런 거라며, 머리가 크면 '고작 그 자잘한 이유 하나로' 너를 따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위로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주말마다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틀어놓고 저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너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으니 행복한 거야."라고 말했다. 덕분에 내가 가진 행복을 상기시킬 수 있었으나 내 생활 반경에는 온통 멀쩡한 아이들 투성이었다.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게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일이 행복이었으나, 그 당시 아이들에게 그것은 행복이 아닌 '당연한 것'이라 오히려 '당연하지 않은' 내 모습을 더 이상하게 여겼다.
'다르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기 시작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나랑 같이 다니는 일을 불편해했다. 길을 거닐 때마다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듯 나를 관람하고 드는 시선을 불쾌하게 여긴 아이들은 종종 나랑 다니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곁을 떠났다.
엄마는 네가 맘 편히 학교에 가는 게 소원이야.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하루하루 소원이 늘었다. 재활원에 있을 때는 '걷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더니돌아서면 고픈 배처럼 때마다 '-했으면'으로 끝나는 고픈 마음만 늘었다. 엄마 말대로라면 아이들의 몸이 클수록 내가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정상인데, 해가 갈수록 해코지는 더욱 심해져 동네를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동네를 벗어나 '버스'를 타게 되면서 나의 생활 반경이 넓어졌다.
부모님 없이 가는 첫 동네 밖 외출이자 버스 탑승이었으므로 내게는 일탈이자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생각해 보면 등교할 때마다 '무사히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다이어리에 탑승 가능한 버스 번호를 받아 적고, 생전 처음 회수권을 묶음으로 구매해 교복 주머니에 챙겨 넣으면서 머릿속으로 열 번도 넘게 버스를 올라탔다. 정차벨을 누르는 타이밍과 정류장 이름까지 달달 외우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혹시 벨을 누르지 못해서 내리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으나, 진짜 문제는 다른 데서 생겼다. 버스정류장에서 멈춰야 할 버스들이 죄다 만원이라 정차하지도 않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정차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버스를 보며 마음의 조급함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저 멀리 한 대의 버스가 와 멈춰 섰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타야 했다.
버스는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안 오는 줄 알았다.
오후 3시에 하교했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못 타는 줄 알았으니 집에 가겠다고 억지로 만원 버스에 꾸역꾸역 올라탔다가 사람들에게 치여 이리저리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인파에 휩쓸려 정차벨도 누르지 못하고 정류장을 지나쳐버렸다. 사람들이 내리고 버스 안이 한산해지고 나서야 겨우 정차벨을 누르고 내릴 수 있었는데, 버스를 갈아타는 방법을 모르니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하교한 지 두 시간 만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보는 길을 걷는 내내 마냥 두렵고 무섭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버스가 직선도로로만 달려, 앞으로만 걸어가면 우리 동네가 나온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인 데다, 주변에 공중전화도 없어서 누구에게 전화 걸 새도 없이 하염없이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면서 낯선 길이 낯익은 길로 바뀌기 시작했을 때,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인파에 휩쓸려 넘어지고 정작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덩그러니 떨어지듯 버스에서 내렸을 때도 안 울고 잘 참았건만, 익숙한 동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울어도 나를 안아 다독여 줄 사람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던듯하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참았던 울음이 터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한편으로는 웃음도 났다. 일명 '버스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으나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괜스레 나 자신이 퍽 대견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부리나케 현관으로 나와 내 짐을 뺏어 들었다. 아무 말없이 안아주며 밥부터 차려주는 손길에서 애타게 기다렸을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늘 먹던 집밥인데도 그 날 저녁은 유난히 더 각별했다. 허기를 채우고 나서야 귀가가 늦어진 이유를 전했다.
그날 밤, 버스는 기다리면 또 온다는 엄마 말을 듣고 안도했다.
내가 칠삭둥이라는 사실을 빼면, 이제껏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나는 많은 것들이 남들보다 느렸다. 남들은 첫걸음마를 뗄 때 휠체어에 앉았고, 남들이 뛸 때가 돼서야 엉거주춤 걷기 시작했다. 열네 살 때 첫 버스 여행을 했고 지하철은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처음 타봤다. 마치 동화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를 삼켰던 고래 뱃속처럼 캄캄하고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힌 듯 고작 그것 하나에 진을 빼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가만 보면 나에게 세상 일은 '처음 타 본 버스'와 같았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어 온통 낯설고 처음 가 보는 정류장 투성이었다. 다행인 것은 혹여 그 버스를 놓치거나 정류장을 헷갈려 잘못 내리더라도, 버스는 기다리면 다시 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놓친 그 버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버스'가 다시 온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 느리고 서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정류장으로 오는 첫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것도 좋지만, 행여 그 첫차를 타지 못 하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버스는 기다리면, 또 오니까 너무 조급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었다. 제시간에 도착하는 인생이면 좋겠지만,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리 길이가 다르고 보폭이 다르듯 각자의 걸음으로 가는 생(生)이니, 나도 나의 걸음으로 꾸준하게 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난생처음 타 본 버스에서 목적지를 한참 지나쳐 낯익은 길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집에 도착했던 그 날처럼. 느리고 서툴러도 가고자 하는 곳까지 꾸준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남들보다 느리고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고, 또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버스를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떠나간 버스'가 자꾸만 어른거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기다리면 또다시 오는 버스가, 내가 놓친 그 버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버스는 버스'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꽤나 큰 것이었다. 꾸역꾸역 몸을 구겨 올라타야 하는 의무는 없었다. 그저 조급함을 버리고 진득하니 기다릴 줄 아는 힘을 키우며 곧 도착할 버스를 기다린다면 무사히 다음 버스에 승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마다 버스에 올라타는 타이밍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 일도 순환하는 버스처럼 돌고 도는 일이었다.
버스는 언제고 다시 오니 기다림의 자세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