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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23. 2020

꼭,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Last canival)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사전이 있어도 섣불리 정의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다. 아마 '어른' 역시 사전적 정의는 있으나, 달리 말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고, 이미 뱉어진 그 말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짙어지거나 혹은 자기 수정을 거쳐 완성되는 '미래완료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선뜻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는 영역이라 여겼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서 두루뭉술한 글을 쓰게 되거나, 수필을 쓰더라도 그 끝을 맺을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문자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부고] OOO 본인 사망, 장례식장 포천 OOO병원'



친구가 대신 전해 온 그의 부고 소식에, 머릿속에 쓰려던 모든 글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 급작스러운 소식은 너무 간결하고 명료했다. 갑자기 마침표를 찍어버린 그의 사인은 '오늘 아침에 갑자기 그렇게 돼서 손 쓸 새도 없이 갔나 봐.'라는 말로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다. 



친구는 그의 핸드폰이 지문인식이라 잠겨서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할 도리가 없으니 네 주위에 연락할 사람이 있으면 퍼트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스스로의 보안을 위해 생겨난 '지문인식'이 정작 자기 생의 마지막 소식을 알릴 수 없는 벽이 된다니. 그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별의별 생각이 스쳤다.







전날 밤, 별일 없이 잠든 그가 하루아침에 생을 마쳤다는 얘기를 듣다가 '어른'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언제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간혹 아직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이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역시 지금의 생은 나그네와 같은 것이어서 지금 이곳에 온전히 머물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이 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저버린다는 사실을 이르게 깨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늘 함께 할 거라고 철없는 영원을 바라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일을 '그럴 수도 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찾아오지 않아도 돼. 멀리 좀 가면 어때.
자네가 친구라는 걸 내가 알잖아.
나중에 저 위에서 만나면, 그때 가서 반겨줘.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아흔이 다 된 나이에 곁을 떠난 외할머니가, 자신보다 십 년 먼저 떠난 동네 친구 분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매일 낮이면 습관처럼 찾아와 소녀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안경 쓴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외할머니 댁을 찾아오는 일이 줄었는데, 그 할머니가 손자의 부축을 받고 찾아왔을 때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한 말이었다.



당시 그 말을 곁에서 듣던 나는, 멀리 간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제 더는 놀러 올 일이 없다'는 말로 안경 쓴 할머니의 마지막을 직감했었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잖아



2005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남자 주인공이 했던 담담한 말처럼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저마다 다른 생의 문장 끝에 찍힐 마침표에 대해 짐짓 의연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혹은 떠밀리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별의 순간과 그 이별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에게 마음을 다하고 애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몸은 쇠해도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지는 별은 적어도 좀 더 오래 반짝일 수 있으므로.



스스로가 기억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베풀고 온기를 주는 너른 마음을 갖는 이를 두고 어른스럽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과 사가 당연하게 얽힌 생에서 그 끝은 '죽음'이 아닌 '망각'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서로의 기억에 좋은 발걸음을 남기려고 애쓰는, 애달픈 철든 마음이므로.






마지막 축제

/ 담쟁이캘리




상상도 못 했던
마지막을 배웅하느라
가만히 잠든 얼굴을 보며


별안간 나의 상실감이
어쩌면 네게, 고대하고 있던
축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친 숨 헐떡이거나
절룩이지 않고 가벼웁게
저 멀리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마지막 축제의 장에서
비로소 튼실한 날개를 얻었으니
많은 울음을 울지 않겠다 다짐하며


고요히 잠든 너의
마지막 축제를 위하여
국화꽃 한 송이 고이 받친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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