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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26. 2020

불현듯 찾아온, 감정을 살피는 일

솔직한 글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스치듯 떠오른 마음과 감정이라도,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파동이 일었고 그것이 감정으로까지 번졌다는 뜻일 수 있으므로. 자기감정의 이유와 출발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물론 스스로를 거울 보듯 마주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깨달음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보통의 날들 속에서 온다. 이 글 역시 불쑥 찾아온 그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스스로를 돌아보다 발견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스미다
: 1. 물, 기름 따위의 액체가 배어들다.
(예) 땀이 옷에 스미다.

2. 바람 따위의 기체가 흘러들다.
(예) 향긋한 냄새가 코에 스미다.

3. 마음속 깊이 느껴지다.
(예) 불현듯 가슴에 스미는 고독감.



‘스미다’라는 말을 보고 먼저 떠오른 것은 ‘스미마셍’이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 문장으로 포문을 여기는 이유는, 오랜만에 글을 쓰기 위해 빈 종이를 올려두고 스스로에게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글이 좋아 머물기 시작한 글쓰기 소모임에 몸담은 지 햇수로 3년 차. 엉겁결에 쓰기 시작한 시 한 편에 연거푸 좋다는 호평을 들으며, 신나서 쓴 날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적당히 솔직할 수 있는 ‘경계선’이 명확해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힘들다는 말 대신 ‘끝 모를 긴 긴 밤이 수놓아’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게 좋았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시가 좋다는 핑계로 수 개의 단어를 소재삼아 내 깊은 곳에 숨겨둔 감정을 노래했다. 분명 시어로 표현해 낸 마음들은 카타르시스가 있었고, 덕분에 채우고 비우는 일을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 일을 반복해 갈 무렵,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 주었다. 감개무량한 그 말의 무게를 가만히 견뎠다.



그러다 문득, 나를 그리 칭해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이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과연 그런 말을 들어도 될까 의문이 들었다. 글 쓰는 일을 즐기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시인’이라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상당했다. 대학 때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전공했지만, 간간이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내 글에 대한 평가는 박했고 시는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갖가지 말들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스스로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한데, 나도 모르는 ‘시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를 쓰는 사람은 극작가 혹은 작가라고 불리는 데 반해 시인은 그냥 시인인 게 좋았다. 직업이 아닌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 매력적이었다.



◇ 시(時)
자연이나 삶에 대하여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글.

◇ 인(人)
한문 투에서, ‘사람’을 이르는 말



직역하자면,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직업이 아닌 삶으로 말하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멋지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단어가 주는 느낌에 매료되어 그 의미를 곱씹는 동안 스스로를 반추하며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시를 쓰는 이유의 첫 단추를 ‘나를 감출 수 있어서 좋다’는 말로 꿰었으니 엇박자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단추를 잘못 꿰었을 때 방법은 하나다. 첫 단추부터 다시 꿰는 것.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마주하기 어려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주제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얕은 개울에서 시작해 발목 끝이 젖는 줄도 모르고 물놀이에 여념이 없던 이들은 어느새 종아리, 무릎, 배, 또 다른 누구는 가슴 앞섶에 이르기까지 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각사각 글쓰기 모임의 슬로건처럼 ‘마음 나눔 글쓰기’를 각자 알아서 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면서 한 수 한 수 자기답게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셈이었다. 스무 살 무렵,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에 휩싸여 있던 시절 마주했던 <뼈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 제목의 의미가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글쓰기 모임만 햇수로 3년 차, 꾸준하게 글 쓰는 이들의 모습은 늘 봐 오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낯설게’ 다가와 적잖이 당혹스럽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생경한 감정의 이유를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따라가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바람에도 풍향이 있듯이 바람 한 번 크게 불고 나면 그 방향도 바뀐다’고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이병률, <사람이 온다> 중에서 발췌




글쓰기 모임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있고, 자주 얼굴 비추던 사람이 있으면 안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은 바람이 부는 일과도 같아서 막연하게 ‘바람은 불어야 맛이다’라고만 생각했다. 조금씩 변하는 풍경도 당연한 이치라고 여기고 별생각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두었다.



한데, ‘스미다’라는 주제를 토대로 지금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글쓰기 회원들 덕분에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 하나를 이제야 닫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형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향긋한 냄새가 코에 스미는 일처럼 내가 몸담은 이 글쓰기 모임에는 분명한 ‘향기’가 있어서 코끝을 간질이고, 그 덕분에 불현듯 가슴에 스미는 ‘미안함’이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스스로가 시인(詩人)이라고 불려도 부끄럽지 않을 그 날을 위해서 하루하루 나만의 솔직한 글쓰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미생(未生)

/ 담쟁이캘리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기르라는 말이 있다


정신력은 외투가 없어서
달팽이처럼 자기 낯 감출 곳 없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그것이 평생 할 일이라 믿어지거든


힘을 기르고 외투를 입어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정신력이
버티지 못하는 일 없도록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필히 기르라는 말일 테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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