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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ug 04. 2020

600km를 날아간 '인연의 끈'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밀씨가 바늘에 꽂힐 확률



소매 끝 인연이라는 말 아세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소매 끝에서 인연이 생기고
이어진다는 뜻이래요.



운명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닌데, 당신을 알고 난 뒤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했던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섯 번 넘게 봤어요.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신이 떠올랐어요.



영화를 되감아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문득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지거나, 불현듯 꿈속에 다녀가는 일도 늘었어요. 나는 워낙 경계심이 많아서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고, 그 상대에게 관심을 주기까지 오랜 시간이 드는 편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내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고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줄도 모르고 당신을 보냈어요.



처음 당신이 교환학생으로 내가 사는 곳으로 온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해요. 중국어 성조가 익숙지 않아 발음하기 힘들어하던 모습까지. 당신의 자잘한 것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올랐어요. 당신은 1성을 발음할 때마다 자꾸 끝 음을 내려서 4성처럼 들린다며 힘들어했죠. 지금 생각하면 당신에게 내가 살아온 곳의 언어를 가르쳐주던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서툰 중국어로 나에게 마음을 전할 때마다 나는 그저 옅은 미소만 보였지요. 당신에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당신에 대한 호감이 깊어지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던 배를 먹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별’과 ‘배’의 발음이 비슷해서 배를 먹으면 이별한다는 속설이 있거든요. 분명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은연중에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조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간은 얄궂게도 빠르게 흘러 당신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지만요.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 국경을 넘어,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어요.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당신이 떠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그리운 마음이 들었어요. 당신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맞으며 참았던 울음이 터졌어요.








당신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가 비에 흠뻑 젖어 볼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당신과 나의 손끝이 스치던 그 첫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당신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오랜 가슴앓이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만나게 될 인연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에 기대어 믿지도 않던 운명에 우연을 바라기 시작했죠.



이미 한참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추억인데도 당신이 도무지 잦아들지 않아,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당신이 나고 자란 곳의 언어를 배우고 무턱대고 한국에, 그것도 당신의 고향이라던 포항에 와서 지낸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네요.



당신은 아픈 곳 없이 잘 지내나요?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었나요. 오늘은 오랜 수소문 끝에 얼마 전, 당신이 일본에서 유학생활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신의 고향에서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당신의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어디 있든지 몸 건강히 잘 지내기를 바라요.








우리는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죠. 오늘은 이곳에서 헬륨 풍선에 소원을 적어 날리는 행사가 있었어요. 당신이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소원과 나의 집 주소를 적어 날렸어요. 나에게 설레는 이십 대의 추억을 남겨주어 고마워요. 부디 어디에 있든지 건강하세요. 내 소매 끝이 잠시나마 당신의 생애 스칠 수 있어서 참 많이 행복했어요.






“바다 건너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에서 멋진 선물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선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풍선인데요. 풍선 위에는 선명한 한글이 적혀 있는데 누군가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소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집 근처 산사에 들렀다 소나무에 걸린 풍선을 발견한 오카다 요시코 씨. 풍선에 적힌 글씨가 한글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곧장 한글을 공부하는 이웃 주민인 다카하시 도키코 할머니에게 달려갔고 그녀의 도움으로 소원 풍선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국경을 넘어 운명과 기적이 만들어낸 이 놀라운 사연은 일본 전역에 보도되었고, 덕분에 연락이 닿게 된 사연의 주인공은 아직까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정월 대보름, 포항 바닷가에서 날린 소원 풍선이 일본까지 터지지 않고 600km를 날아간 덕분에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된 사연을 에세이 형태 사랑이야기로 각색하여 쓴 저의 개인적인 창작물입니다.






궁금해()

/ 담쟁이캘리 




안개가 자욱한 길 위에서

마음에 몸살이 들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순전한 물음표로 넘실거리던 너를,

실은 몇 번이고 들춰보았다



헷갈리고 싶지 않아

신중하고 싶다는 갖가지 핑계를 들며

침묵으로 미뤄두었던 너를,

실은 무언으로 긍정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용기 없는 자의 방패 같은 말에 기대

자꾸 어긋나는 걸 보니 우리는 여기까지라며

끓는점 근처도 안 간 마음에 대고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핑계를 들어 도망쳤다



불시에 드는 감정을

감정하려 들던 그 순간부터

실은 망망대해에서 헤매고 있었다



언제는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썰물로

어떤 날은 빈자리 헛헛한 밀물로

그 간만의 차를 헤아릴 수 없는 지점에서



너의 하루는 어땠는지

밥은 먹었는지, 물안개 자욱한 풍경 속

순전한 물음표로 넘실거리던 너를,

실은 몇 번이고 들춰보았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이 바다 한가운데서

실은 계속 네가 궁금해졌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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