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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ul 25. 2020

엄마는 나를 포기한 적 없었다

내가 나다울 수 있었던 '기적의 힘'



아이가 살 가망이 없어요.
산다 해도 못 걸을지도 몰라요.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고, 저마다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내 삶은 태어날 때부터 위기를 맞았다. 흥행 영화가 있으면 개봉도 못 하는 ‘빛을 보지 못하는’ 영화가 있듯이 나의 탄생은 칠삭둥이인 데다 뇌성마비 진단까지 받아, 개봉이 불투명한 저예산 독립영화와 같았다.



성공적인 개봉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며, 설사 개봉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큰 ‘가망 없는’ 탄생이었다.



의사는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까지 고지해야 할 의무를 다했고, 선택은 아직 뱃속에 나를 품고 누운 엄마의 몫이었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자연분만으로 1.5kg의 작은 체구의 나를 낳았다. 대신, 품에 안아볼 새도 없이 인큐베이터로 옮겨져 엄마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이했다.




이 상태로는 길어야 한 달이에요.
마음의 준비하세요.



엄마 말로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신고를 해야 할 위기에 봉착했었다고 했다. 출생 신고하고 난 뒤, 후에 또다시 사망 신고할 자신이 없어 출생신고를 미뤘다. 그래서 나는 6월에 태어났으나, 주민등록 상으로는 7월이 생일이다. 이 말은 내가 태생부터 난관이 있었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입에서 나온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모두 뒤엎고 태어난 버라이어티 한 탄생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로 간 나는, 한 달 동안 혼자만의 사투를 벌였고 내가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되어 모든 이들의 우려를 반전시키며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보험도 없고 인큐베이터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도리어 안락사를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절대적인 지지와 간절함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탄생기'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 KBS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 대사 중 발췌




살 가망이 없다던 나는 보란 듯이 살았고, 걷지 못할 거라던 말에 다섯 살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다니던 나는 여섯 살이 되던 해 불완전하지만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이런 나를 두고 '기적'이라고 불렀다 했다. 분명한 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준 부모님 덕분에 '개봉도 못할 뻔한 내 삶이 시작되었고, 저예산 독립영화 같았던 탄생'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시간을 보냈지만, 긍정할 수 없는 상황을 긍정했던 내 나름의 노력의 시간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출생 시 병원에서 차고 있던 발찌






내가 긍정하던 유일한 시간

의식적으로라도 계속 근육을 움직여 줘야 해요.
그래야 걸을 수 있어요.



좁은 병실 안에서 보는 세상은 언제나 네모난 모양으로 흘렀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간혹 엄마 손 잡고 걸어가는 아이도, 모두 그 창틀 안에서 일어나고 고요하게 잠들었다. 휠체어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머리맡에 둔 태엽 인형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골 소리가 늘어질 때까지 감고 또 감는 일밖에 없었다.



간혹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씩 맞는 근육이완 주사를 울지 않고 잘 견딘 후에 선물로 받은 주사기로 병원놀이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병원에서 하는 병원놀이는 즐겁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설레던 순간은 저녁 식사 후 엄마와 함께 떠난 산책시간뿐이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친구들 다 만나고 오겠네.



고작 내 나이 다섯 살, 창문 너머로 네모난 세상만 보던 내게 '앞으로'라는 노래만큼 설레는 가사는 없었다. 재활원 뒤에는 작은 오르막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언덕을 오를 때마다 내게 항상 같은 동요를 불러줬다. 정말 저 멀리서 흑인부터 백인, 심지어는 길고양이와 강아지까지 모두 달려와 친구 하자고 할 것 같은 설렘에 휩싸였다. 걷기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니 그 고된 재활도, 때마다 맞아 이골이 난 주사도 아프지 않게 느껴지는 듯했다.




나기 전부터 긍정하던 세상

방울 공주 원피스 입고, 스타킹 신고
양 갈래로 머리 묶고 엄마~ 부르면서 나왔어.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는지 묻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남들은 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꼬박 채우고 태어난다는데, 아마 나는 세상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 뱃속에서 입을 거 꾸밀 거 다 하고 난 후에 빨리 나가게 해 달라고 빌어서 칠삭둥이로 너무 이르게 세상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나 홀로 긍정하기에 버겁던 현실

아빠랑 같이 일본으로 이민 갈까?
거기는 핸디캡 있어도 살기 편하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던 나를 견디기 어려웠던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민을 권한 적 있다. 내가 고작 열세 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내 유년시절은 좋은 기억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부터 6학년 졸업학년 때까지 그 시간은 내게 지옥과도 같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길을 걸을 때면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것처럼 내 걸음걸이를 대놓고 따라 하거나 구경하던 아이들부터 땅을 짚고 걷던 자기 지팡이를 휘두르며 '똑바로 걸어야지, 그렇게 걸으면 못 쓴다'라고 훈계하던 이름 모를 할머니, 횡단보도 앞에 선 내 귓가에 대고 '다리병신'이라고 속삭이고는 혀를 날름거리며 신호가 바뀌자마자 반대편으로 내달리던 정체 모를 사람들까지.



병실 창밖으로 내다보던 네모난 세상보다 더 큰 현실은 버거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숨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넌 분명히 나보다 훨씬 불쌍하고
가엾은 애인데, 항상 당당한 모습이 싫었어.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면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리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은 없을 거라고 엄마는 누누이 말했다. 허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도 맞지 않는 예외가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대학 시절, 또 한 번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좀 더 가감 없이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모양이 성격이라면, 나의 핸디캡은 조금 다른 몸의 모양일 뿐 실은 남들과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 자신을 다시 보니 스스로를 불쌍하거나, 가엾게 여길 것도 없었다. 물론 평생 안고 가야 할 몸의 가시 같은 것이라 가끔은 이것이 내게 생채기를 낼 때도 있지만, 핸디캡이 오히려 강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이게 내 약점 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누구보다 더 특별한 게 될 거야.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부터다. 그때부터 나만의 비밀 일기장을 만들어 하루 동안 느꼈던 감정, 혹은 밖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들을 감춰 나만의 언어로 바꿔 적었다.



실제로 내가 갈 수 없는 곳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며 글 속에서 마음껏 뛰놀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세계일주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세상을 여행하고 나면 행복했다. 배고픈 줄도, 졸린 줄도 모르고 푹 빠져서 쓰기 시작했던 글 쓰는 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흥행하지 말라는 법 없다. 개봉했다가 금세 막을 내렸다고 해서 실패한 영화는 아니다. 입소문을 통해 다양한 루트로 확대, 재생산되는 콘텐츠들이 존재한다. 하물며 영화도 그런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여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우리네 인생은 오죽할까.



그러니 나는 나를 긍정하는 일로 '매 순간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매 순간 나를 긍정하며 살지는 못 한다. 그러나 이제 저 말은 내 마음속의 지표가 되어 때때로 내가 나를 긍정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무너질 때 가만히 되뇌는 말이 되었다.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보게 되었고, 듣게 되었으며 만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긍정해 본다.




인생을 사는 방식엔 두 가지만 있다.
하나는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기적이 별 것인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무려 2020년 동안, 약속이나 한 듯 매일을 살고 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해가 뜨고 지고, 날마다 주어지는 숨으로 24시간을 누구나 공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적이지.







취하다

/ 담쟁이캘리




취하지 못한 채 태어나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생이었다

 
부족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응달 같은 것이었으나,
생애 드리운 그늘은 빛이 강할수록
짙은 것이 숙명이므로
늘 불리한 출발점에 서야 했다

 
남과 다름이 개성이 아닌
결코 좁힐 수 없는 차이로 읽힐 때
네 눈에 비친 나는, 그저 미운 오리 새끼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날 수 없노라고
날 선 시선으로 낙인을 찍어댔다
 

불시착하게 돼도 좋아
그리로 가자, 글로 떠나자
살기 위한 날갯짓이었다


취하지 않은 채 일어나
맨 정신으로 걷기 고된 생이었다
 

취하지 못한 태생이었으므로
취해야 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 취하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매주 일요일,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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