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Jul 25. 2020

미숙아, 독립영화 같았던 탄생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살 가망이 없어요.
산다 해도 못 걸을지도 몰라요.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고 저마다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내 삶은 태어날 때부터 위기를 맞았다. 흥행 영화가 있으면 개봉도 못 하는 ‘빛을 보지 못하는’ 영화가 있듯이 나의 탄생이 그랬다. 칠삭둥이인 데다 뇌성마비 진단까지 받아, 개봉이 불투명한 저예산 독립영화와 같았다.



성공적인 개봉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며, 설사 개봉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큰 ‘가망 없는’ 탄생이었다.



의사는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까지 고지해야 할 의무를 다했고, 선택은 아직 뱃속에 나를 품고 누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위험천만했던 자연분만으로 1.5kg의 작은 체구의 나를 낳았다.




이 상태로는 길어야 한 달이에요.
마음의 준비하세요.




탄생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자가호흡이 어려워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더라도 살 가망이 없다고 한 것이다. 엄마는 출생 신고 후, 또다시 사망 신고할 자신이 없어 출생신고를 미뤘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6월 생이지만, 주민등록 상 생일은 7월이다. 이 말은 태생부터 난관이 있었다는 이고 의사가 말하던 '최악의 상황'을 뒤엎고 태어난 기막힌 탄생이라는 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로 간 지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살 가망이 없다던 나는 보란 듯이 살았고, 걷지 못할 거라던 말에 다섯 살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다니던 나는 여섯 살이 되던 해 불완전하지만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모두 나를 '기적'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준 부모님 덕분에 '개봉도 못할 뻔한 내 삶이 시작되었고, 저예산 독립영화 같았던 탄생'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름발이의 삶을 산다는 것은 여느 아이들과 달리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병원생활에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다.




출생 시 병원에서 차고 있던 발찌



의식적으로라도 계속 근육을 움직여 줘야 해요.
그래야 걸을 수 있어요.




좁은 병실 안에서 보는 세상은 언제나 네모난 모양으로 흘렀다. 깨고 누울 때마다 뜨는 해와 달, 구름 하물며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까지 모두 창틀 안에서 일어나고 잠들었다. 휠체어 없이는 나갈 수 없는 내게 ‘놀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거나, 머리맡에 둔 태엽 인형의 소리가 늘어지도록 되감기를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간혹 주사를 울지 않고 맞은 대가로 받은 주사기로 병원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하는 병원놀이는 금세 싫증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재활훈련을 끝마친 저녁, 엄마와 함께한 산책시간뿐이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친구들 다 만나고 오겠네.




고작 내 나이 다섯 살, 창문 너머로 네모난 세상만 보던 내게 '앞으로'라는 노래만큼 설레는 가사는 없었다. 재활원 뒤에는 작은 오르막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언덕을 오를 때마다 내게 항상 같은 동요를 불러줬다. 정말 저 멀리서 흑인, 백인, 심지어는 길 고양이와 강아지까지 모두 내게 달려오는 듯했다. 걷기만 하면 온 세상 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다니! 넘치는 설렘으로 고된 재활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주사도 거뜬해지는 듯했다. 


  노래 하나로 이런 상상을 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남들은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꼬박 채우고 태어난다는데, 석 달이나 앞당겨 양수를 터뜨리고 탄생의 신호탄을 요란하게 울린 것이 분명하다. 부모님이 내게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느냐 물으면 늘 이렇게 답했단다.




방울 공주 원피스 입고, 스타킹 신고
양 갈래로 머리 묶고 엄마~ 부르면서 나왔어.   




 이 대답은 무려 일곱 살 때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내 짐작이 틀림없다. 하지만 절정 없는 평탄한 영화가 있으랴. 핸디캡을 가진 어린이가 홀로 세상을 긍정하며 살기에 현실은 너무 버거웠다.



아빠랑 같이 일본으로 이민 갈까?
거기는 핸디캡 있어도 살기 편하대.




무엇 하나 잘못한 것도 없이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던 것이 일상이던 어느 날.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민을 권한 적 있었다. 내가 고작 열세 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내 유년시절은 좋은 기억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말부터 졸업할 때까지 그 시간은 내게 지옥과도 같아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다.



길을 걸을 때면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것처럼 내 걸음걸이를 대놓고 따라 하거나 구경하던 아이들부터 땅을 짚고 걷던 자기 지팡이를 휘두르며 '똑바로 걸어야지. 그렇게 걸으면 못 쓴다'라고 훈계하던 이름 모를 할머니, 횡단보도 앞에 선 내 귓가에 대고 '다리병신'이라고 약 올리고는 혀를 날름거리며 신호가 바뀌자마자 반대편으로 내달리던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



병실 창밖으로 내다보던 네모난 세상보다 더 크고 넓은 현실은 버거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숨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모양이 성격이라면 나는 조금 다른 몸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핸디캡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몸의 가시 같은 것이라, 억지로 끌어안으려 들 때마다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남들이 보는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를 가엾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나의 약점이 강점이 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이게 내 약점 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누구보다 더 특별한 게 될 거야.  





나의 탄생으로 인해 마음의 짐을 지게 된 부모님을 보고 안팎으로 더 큰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일찍 철이 들었고, 일곱 살 때부터 나의 도피처는 글쓰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비밀 일기장을 만들어 오늘 느낀 감정, 밖에서 겪은 속상한 일들을 나만의 언어로 바꿔 적었다. 함께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소외될 때면 습관처럼 글을 썼다.



내가 갈 수 없는 곳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상상하며 글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다.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세계 일주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세상을 여행하고 나면 행복했다. 배고픈 줄도, 졸린 줄도 모르고 푹 빠져서 했던 글 쓰는 일이 내 생애 단 한 번도 싫증난 적 없는 놀이였다.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흥행하지 말라는 법 없다. 개봉했다가 금세 막을 내렸다고 해서 실패한 영화는 아니다. 입소문을 통해 다양한 루트로 확대, 재생산되는 콘텐츠들이 존재한다. 하물며 영화도 그런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여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우리네 인생은 오죽할까.



그러니 나는 나를 긍정하는 일로 '매 순간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매 순간 나를 긍정하며 살지는 못 한다. 그러나 이제 저 말은 내 마음속의 지표가 되어 때때로 내가 나를 긍정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무너질 때 가만히 되뇌는 지표 같은 말이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보고 듣고, 만지게 되는 기적을 이룬 덕분에 오늘 하루도 하루치의 글 쓸 거리를 찾았다면서 남은 하루를 긍정해 본다.



기적이 별 것인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무려 2020년 동안, 약속이나 한 듯 매일을 살고 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해가 뜨고 지고, 날마다 주어지는 숨으로 24시간을 누구나 공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적이지.







취하다

/ 담쟁이캘리




취하지 못한 채 태어나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생이었다

 
부족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응달 같은 것이었으나,
생애 드리운 그늘은 빛이 강할수록
짙은 것이 숙명이므로
늘 불리한 출발점에 서야 했다

 
남과 다름이 개성이 아닌
결코 좁힐 수 없는 차이로 읽힐 때
네 눈에 비친 나는, 그저 미운 오리 새끼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날 수 없노라고
날 선 시선으로 낙인을 찍어댔다
 

불시착하게 돼도 좋아
그리로 가자, 글로 떠나자
살기 위한 날갯짓이었다


취하지 않은 채 일어나
맨 정신으로 걷기 고된 생이었다
 

취하지 못한 태생이었으므로
취해야 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 취하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