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하고, 다시 찍고 싶었던 약점
단편영화로 단출하게 막을 내릴 줄 알았던 삶이 기적적으로 이어졌을 때.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인큐베이터로 간 지 한 달 만에 상태가 호전된 것과 뇌성마비로 휠체어 없이는 걷지 못하다가 여섯 살 때 첫걸음마를 뗀 기막힌 장면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어 보였다.
절름발이라도 개의치 않았고 두 발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남들은 열 달을 채우고 태어나는 세상에 석 달 앞당겨 나온 것도 주인공의 극적인 탄생을 위한 장치였고 병실에서 보던 숱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내게도 시간이 흘러 행운이 찾아온 줄 알았다. 모두의 축하 속에서 퇴원했으니 남은 인생의 결말은 무조건 해피엔딩일 거라고 믿었다. 멋모르는 동심에 지금은 다리를 절고 넘어져도 결국 말끔히 낫는다고 맹신하며 나의 아킬레스건을 바로 보지 않고 넘겼다.
‘어차피 주인공은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에 균열이 생긴 것은 열 살 여름방학 개학 즈음부터였다.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별안간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내가 자기들과 달라서 불편하고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에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친구들처럼 팔다리, 눈코입 모두 멀쩡히 있는데 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또 엄마가 누누이 말하길 다리가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했던 터라, 친구들이 불편한 것과 다른 것을 혼동하는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오해를 풀 수 있을지 고민이 싶어 지던 어느 날 아빠가 찍어준 홈비디오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영상 속에는 가족들과 이어달리기하는 장면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는데, 불시에 낯선 내 모습을 마주했다.
내가 저렇게 뛴다고?
엄마 말마따나 다리가 불편한 줄만 알았지,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생애 처음 내 몸 전체를 비추는 거울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친구가 ‘자기랑 달라서 불편하고 창피하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순식간에 온몸으로 깨쳤다. 이토록 이상한 주인공이 있을까. 그때 내 눈 안에 든 아킬레스건은 컷 하고 다시 찍고 싶은 NG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바로 재촬영했겠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비디오를 끄는 것이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기적은 오지 않을 거라며 단념했다. 친구와 나란히 걸을 때조차 스스로 짝짝이처럼 느껴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은 마치 잘라내야 할 편집점 같았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스러질 듯 아득해지는 동안 하나둘씩 멀어진 친구들은 무리를 이뤘고 아이들의 행동은 과감해졌다. 누구든지 나랑 어울리면 모조리 따돌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아, 삽시간에 아이들의 공공연한 적이 되었다. 괴롭힘은 더욱 심해져 하굣길까지 이어졌다. 집에 가는 내내 뒤를 쫓으며 다리병신, 왜 사느냐, 왜 태어났느냐는둥 날 선 말들을 서슴없이 뱉었다. 그 무렵 I.M.F.로 가세가 기울면서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는데, 집에 자기들을 꾸짖을 어른이 없으니 마음껏 놀려도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중 유난히 정도가 심했던 어느 하루, 나를 뒤쫓는 무리를 얼른 돌려보내려고 집에 어른이 있는 척했다. 오히려 그들은 집에 아무도 없으면서 거짓말한다 아우성이었다. 행여 거짓말을 들키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뻔했다. 이제 와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어른이 있는 척 계속 연기했다.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상황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어떻게든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두 눈 질끈 감고 문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문이 활짝 열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무리는 쏜살같이 달아났고 주변은 금세 고요해졌다. 집에 들어서니 부엌에 있는 엄마가 보였다. 인기척에 돌아선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일순간, 모든 불행의 시작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의 탄생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 왜 낳았어? 차라리 낳지 말지.
왜 굳이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왜!
어린 시절 기나긴 재활훈련 기간 동안 엄마는 내게 불친절했다. 혹여 넘어져도 혼자 일어나게 했고 조금이라도 울먹이면 어리광 부리지 말라며 매섭게 혼내는 통에 목놓아 울어본 적 없었다. 평소였다면 울지 말라고 혼냈을 텐데 아무 말이 없었다. 낯선 광경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쏟아지는 울음을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었는지 눈떴을 때 사방이 캄캄한 밤이었다. 목이 메어서 물을 마시러 나가려다 멈칫했다. 불 꺼진 부엌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돌아앉은 등이 보였다. 흐릿하기는 했지만 그 실루엣은 분명 엄마였다. 여섯 살 때까지 나를 업고 다녔던 따스했던 등이 서글프게 흐느끼고 있었다.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러질 듯 희미하던 나를 깨워 다시 반짝일 수 있게 지지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엄마의 눈물이었다. 엄마는 칠삭둥이 미숙아로 살 가망이 없다며 당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만류에도 나를 낳았고, 뇌성마비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할 거라는 말에도 호랑이 선생님을 자처해 어떻게든 두 발을 땅에 딛고 서게 해 준 은인이었다. 나의 불행에 엄마 탓은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NG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되려 불완전해도 걸을 수 있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삶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아빠도 우리 딸이 제일이라며 넘치는 내리사랑을 주셨는데, 에먼 제 일의 아군에게 불행을 전가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돌아보니 부모님은 내 곁에서 부지런히 터를 다지고 있었다. 날 때부터 바람 잘 날 없던 삶이니 만일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터파기 하는 중이었다. 지난날 경험했던 기막힌 장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부디 무탈하길 바라던 부모님의 간절함과 오랜 끈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간 내가 뿌리 없는 깃대처럼 흔들린 무수한 날들은 스스로 딛고 설 땅을 다지는 일에 소홀했던 탓이었고, 나에게 없는 것에 골몰하느라 생애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명장면을 가벼이 넘겨버린 잘못이었다. 컷 하고 지워야 할 장면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스스로 못났다고 치부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살다 보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엉뚱한 곳에 편집점을 찍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 때가 있다.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는 각자의 러닝타임 속에서, 마음이 역류하는 일 없이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려면 스스로 어느 장면에 편집점을 찍을지 진지하게 고심해야 한다. 찰나의 그릇된 편집이 불행한 결말을 초래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게는 있지만 남들에게는 없는 약점 덕분에 오랜 시간이 들어도 깨닫기 어려운 귀중한 의미를 깨닫고 나서 알았다. 이것은 삶을 깊이 톺아보는 특별한 렌즈라는 것을….
아킬레스건은 No good이 아니라
Natural good이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