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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Sep 19. 2020

불효자는 "옵"니다

코로나로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풍경들



명절에 어디 안 가지?



추석을 앞두고 건네는 질문의 형태가 바뀌었다. 명절에 '어느 지역'으로 가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외부 이동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변했다. 명절이 다가오는데도 걱정부터 앞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의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오는데, 귀향을 위해 일찍부터 서두르던 친구들의 태도가 지지부진하다. 미리 끊어둔 열차표를 취소하고 서울에서 머물기로 했다고 말하는데 낯빛이 어둡다. 



뉴스에서부터 고향 방문 자제를 권장하고, 벌초나 제사도 대행 서비스를 맡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우리 집만 해도 이번 명절 제사는 절에 맡기는 것에 대해 논의 중이다. 이제는 정말 ‘무(無) 방문이 희소식’인 분위기가 되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도 지금 내 주변 친구들과 몸이 멀어졌으니 마음도 멀어지려나.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잠시 말썽을 부리다 잠잠해질 소낙비 같은 거라고 치부했던 이 바이러스는 건재하던 일상에 균열을 내더니, 결국에는 일상적인 만남의 풍경마저 망가뜨렸다. 아무 걱정 없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코로나 19로 2020년 한 해를 송두리째 빼앗긴 기분이다. 출퇴근을 제외하고 꼭 필요한 만남을 빼면, 친구들과는 카카오톡으로 안부인사와 일상 넋두리를 대신하며 집순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전 같으면 초가을에 들어서자 시원해진 바람을 핑계 삼아 약속을 잡거나, 훌쩍 떠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허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밥은 물론 커피 한 잔, 술 한 잔도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카카오톡 글 수다로 대체했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라는 말이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대신하는 요즘 표현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이니 빈 말에 수렴한다고. 정말 코로나 종식이 오기는 할까.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답답함을 호소하며 마스크 한 번을 쓰지 않았는데, 외출 필수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챙기면서 애잔한 기분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고도 마음껏 웃을 수 없는 현실이 아프다.



회사만 해도 항공 입점 상품도 폐업을 하게 되면서 거래처가 줄었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한시적 무급휴직으로 그칠 줄 알았던 ‘일터’가 순식간에 사라져,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계획에도 없던 취준생이 된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6개월 전,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해 동네 입소문을 타면서 한창 장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치킨집도 다음 달이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 주문이 늘었으니 매출도 오를 줄 알았는데, 대부분 배달 주문으로 몰리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배달앱의 높은 수수료와 인건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했다고 했다. 문득 이전에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연일 떠들어대던 그때는 코로나에 비하면 정말 ‘먼지 만한 걱정거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그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려운 것 투성이다. 



코로나로 굳이 발품을 팔기를 좋아하던 사람들도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 집에서 나오지 않는 '비대면 소비문화'에 가세해 기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풍경도 있다. 클릭 한 번에 장보는 일이 더 쉬워졌고 전화 한 통에 음식을 시켜먹거나, 메신저를 이용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해졌다. 분명 쉽고 편해진 것들이 넘쳐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로 ‘가짜 여행 상품’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 있다. 착륙 안 하고 비행기 타고 하늘 구경만 하다,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상품이다. 신기하게도 이 상품은 4분 만에 완판이 될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우스꽝스러웠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보다 무서운 일이 또 없다.



당연하게 지내온 건재한 일상의 풍경이 무너지면서 세상이 온통 ‘그림의 떡’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친숙해질까 봐 걱정이다. 직접 만나 온기를 나누지 않고도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시대가 올까 봐. 그렇게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생존을 논해야 할까 봐 무섭다.  







유아인과 박신혜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살아있다>가 요즘 넥플리스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들었다. 개봉 당시에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좀비가 되었는지’ 그 어떤 이유도 설명도 없이 무턱대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다고 평점 테러를 당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한데, 지난 금요일 출근길에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개연성이 없어서 더욱 현실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디 설명 가능한 일들만 있었나. 예측불허인 것이 삶의 숙명인 것을. 그렇게 생각이 들고 나니 처음에는 그저 허무맹랑하다고만 느꼈던 이 이야기가 언제고 우리 일상을 덮치고 들 수 있는 ‘바이러스’처럼 느껴져서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폐허가 된 영화 속 아파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내 기억 속의 행복했던 어떤 풍경들을 모조리 망쳐 놓을까 봐 겁났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안녕해야 하다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모두가 공유하던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다시 되찾아 와 모두가 ‘안녕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안부를 묻는 일이 불효가 아닌, 온정으로 읽히던 그 날이 다시 오기를.





그리움 /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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