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없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습관은 꽤나 무서운 것이었다. 얼굴 본 곳은 고작 몇 번, 아는 것이라고는 불현듯 건네받은 열한 자리 숫자가 전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네가 잠잠하던 일상 속에, 밤이면 꼭 늘어지는 그림자처럼 지독한 습관이 되어 아른거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 뒤에 숨어 얄팍한 핑계를 만들기에는, 네가 나타난 시일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짧으므로 꺼내는 말들마다 힘없이 저물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깨닫게 될 뿐이었다. 칠흑 같은 밤이 지나, 동 틀 때면 어김없이 와 있는 연락이 마치 알람이 된 마냥 그 메시지를 시작으로 하루를 열고 또 닫았다. 낯선 상황, 그 속에서 전에 없던 행동을 습관처럼 반복하고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수없이 궁금해지는 너를 두고, 그 어느 곳으로도 오가지 못하고 꼭 짚은 세 꼭짓점 사이에 우뚝 선 모습이꼭 오도 가도 못하는 섬처럼 느껴졌다.
섬이라는 곳이 이토록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곳이었나. 그 섬에 정박할 무렵 이맘때쯤 습관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두 눈을 홀리는 단풍이 절경이었다.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던 것처럼 선선한 바람에 마음을 허(許)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홀려버린 두 눈이 습관처럼 끝없는 망상을 쫓을까 두려워 허(虛)한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잠자코 있던 것인지. 그 머문 자리가 섬인 줄 알면서도 뱃길 따라 나올 생각 않고 그 한적한 자리에 앉아, 넘실대던 네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로 사라져 가는 그 물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로의 일상에 습관처럼 넘실대는 우리에게도 정해진 물 때가 있는 것처럼 어떤 날은 그 물결치던 파도에 몸을 맡겼으나, 또 어떤 날은 양쪽 어깨에 힘이 들어가 짠물만 잔뜩 먹고 겨우 잠든 날도 있었다.
하지만 불현듯 일상에 찾아온 너는, 내 나이 세 살 때부터 이어온 오랜 습관이 아니었으므로 그 습관을 지속할 만한 핑계 또한 점점 빈약해져 갔다. 어떤 것도 정의 내리지 못한 문장 위로 눈발이 내려 네가 선명하던 짙은 밤은 화이트 아웃이 되어 가물가물 사라졌다. 밤새 첫눈이 함박눈으로 나리고 난 다음 날 안개 자욱하던 길 걸으며 낯익은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멈췄던 심장이 너로 두근거려 잘 알지도 못하는 너를 섣부르게 내 안에 들인 나의 탓이라고. 언젠가는 끝을 보일 시한부 감정인데 두근거리는 마음만 믿고 무턱대고 너에게 내던진, 내 잘못을 탓하며 불현듯 나타나 습관처럼 밴 너를 들춰보던 그때도. 전에 없던 습관이 낯설어 조용히 시간을 지나는 동안 너와 나는 조석 간만의 차처럼 결코 닿을 수 없이 멀어졌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는 비겁한 변명을 핑계로 속마음과 다른 반응과 행동을 하면서 벌어진 간극이었다. 당시에는 꽤 절절한 애도의 과정이었으나,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비겁함이었다. 이미 습관적으로 너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있으면서 갖은 핑계를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없음이었다.
습관
/ 담쟁이캘리
어느 가을날 소낙비처럼 나타난 너를 따라 걷던 길 위로 물이 불었다
바싹 말라 잠잠하던 일상까지 적실 요량인지 예보에도 없던 폭우를 내내 쏟아붓더니 기어코 마음에 도랑을 냈다
오늘도 네가 오려나 밤새 젖은 땅을 보며 습관처럼 너를 그렸다 끝을 모르고 흐른 마음이 도랑으로 흘러 드나드는 길이 마를 날 없었다
무작정 너를 따라 걷던 길 위로 우두커니 습관이라는 섬 하나가 솟았다 넘실대는 파도가 잠잠하던 날도 우뚝 선 자리를 무색하게 집어삼킨 날도 있었다
뱃길 따라 드나들기도 쉽지 않고 나날이 변하는 기후 탓에 그 섬에 온전히 두 발 디딘 적 없건만, 하루에도 몇 번씩 불현듯 두더지처럼 봉긋하게 튀어 오르는 너라는 섬이 주변을 맴돌게 만들었다
두 발은 멈춰 서 있어도 마음은 어느새 십 리를 훌쩍 넘어 끝이 안 보이는 수평선 따라 흘러 흘러 섬 주변을 맴돌며 갖은소리를 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