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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an 22. 2021

다섯 살이지만, 마흔입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중년이다


  2021년, 우리 집 반려견 '로또'가 올해로 다섯 살이 되었다. 처음 데려와 키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니. 너른 보폭으로 휘적휘적 걷는 시간이 참 빠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만치 자란 것을 보며 '애들 크는 거 금방이다'라고 말하던 엄마들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림짐작했다.



강아지는
일 년에 일곱 살을 먹는대.



   아빠가 그랬다. 강아지와 사람의 세월은 다른 속도로 지난다고.


설날 때마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라고 알려주던 엄마 말에 비유하자면, 강아지는 무려 일곱 그릇의 떡국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릴 적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그릇을 더 먹겠다고 욕심부린 적은 있어도 일곱 그릇을 먹은 적은 없었다. 사람보다 7배나 빠르게 늙는다니 시간이 쏜살처럼 내달리듯 간다.


로또는 몇 살이나 됐을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 창에 '강아지 나이 계산기'를 검색했다. 같은 강아지라도 몸집에 따라 나이도 다른 모양이다. 생후 몇 연차인지 적으면 사람 나이로 환산해 주는데, 중형견에 속하는 로또는 마흔이란다.








  우리 집 막내가 내 나이를 앞질렀다.



나도 아직 가 보지 않은 '마흔'의 길을 저 녀석이 먼저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뒤꽁무니를 졸졸  녀석이 시간을 앞질러 걷는 중이라니. 산책 나가면 신나서 다가도 뒤돌아서 보폭을 맞춰 걷는 녀석인데 갑자기 멀어진 듯했다. 강아지 평균 수명은 길어야 15년 내지 20년이다. 한 생명의 삶 전체를 고스란히 목격할 생각 하니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부는  같다.  마음을 알 리 없는 녀석은 안방에서 뼈다귀 장난감 물고 나와 놀기 바쁘다.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우리 집 막내 건만 어느새 중년이라니….









탄생과 이별은
부지불식간의 일이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사는 것이 어디 강아지뿐이랴.  원래 삶의 대부분이 생각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고 또 잦아든다. 밑 깨진 항아리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줄줄 새기 시작해 바닥을 보이는 것이 시간의 숙명이다.



아빠는 작년에 환갑을 맞이했 엄마는 올해로 예순이다. '인생은 60부터'라던 옛말대로 나이를 계산하면 엄마는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 집 막내가 된다. 아빠는 올해로 두 살, 엄마는  태어난 신생아다. 그렇다고 어디 60을 기점으로 젊음을 돌려받을 수 있겠는가. 가버린 세월은 되돌아오는 법이 없어 '갓 태어났지만 중년'이.



강아지들보다 사람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안도하며 세월에 무심했다. 하물며 내게 있는 젊음도 오래갈 것이라 착각했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안 늙을 줄 알았고 이렇게 나이 먹을 줄 몰랐다. 내게도 아홉수와 서른이 오는 줄 모르고 나이를 편식하듯 골라 먹으려고 들었.





  스물어색하지만 반가웠다. 스물한 살은 스물에 익숙해질 즈음 맞이한 나이라 괜히 약이 올랐다. 스물셋은 대학 4학년 왕고라 불려서 갑자기 늙은 듯해 불만이었고, 스물다섯은 불려서 생일 초를 꽂기가 싫었다. 스물여섯은 부정할 수 없는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었다생각에 마냥 슬펐다. 온전히 기쁘게 누려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낸 나이였다.  나이가 애틋해지고  시선이 달라졌다. 과연 나이에 많고 적음이 있을까. 그 모든 말은 상대적인 것일 뿐 결국은 누구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일 텐데….



이렇게 나이에 연연한 마음을 품을 줄이야. 십 대 때는 나이에 미련이 없었다. 열네 살 무렵, 도덕 시간에 '5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 그리라'던 선생님 말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천사를 그려 넣었다. 고작 십 대에 불과했나에게 예순을 넘긴 나이는 너무나 먼 미래였다. 그 정도 살았으면 오래 살았다고 생각해 그린 그림이었다.



이제 보니 50년 인생도 짧다. 한 평생마저 '찰나'로 지난다. 쏜살같은 시간이 어디 강아지뿐이랴. 누구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이생의 시간을 산다. 강아지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 지붕 아래 종족 구분 없이 젊음이 꺼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일 꼭 하루씩 멀어지는 시간의 뒤통수가 서늘하다.






하루 꼬박 기다린 시간은
일주일과 같다.

     


  아빠는 강아지와 사람 간의 시차를 일주일이라 했다. 사람보다 7배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니 하루도 7배속으로 가는 셈이다. 그러니 아침에 본 얼굴도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야단을 떠는 게 당연하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무려 일주일 만의 재회이니 반가울 수밖에.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 무사 귀가일까. 내내 기다렸을 그 마음을 가늠해보다가 불현듯 부모님이 오버랩되었다.



부모 역시도 한 평생 자식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  



아기집에 자리한 손톱만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기까지, 우렁차게 울음을 울며 세상에 나온 아기가 스스로 몸을 가누고 옹알이를 할 때까지,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아기가 제 발로 우뚝 서고 스스로 걷기까지. 또 그 아이가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될 때까지. 수십 수백만 번이고 기다린다.



  침묵으로 기다린 세월 동안 검던 머리칼은 하얗게 세고, 언제나처럼 기다려 줄 것만 같던 부모의 시간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 눈 깜짝할 새 시들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재촉하듯 늙어가는 것이 강아지들의 시차를 닮았다. 닮은 것이 어디 그뿐인가. 귀갓길 나의 무사 귀가를 반기며 매일 갓 지은 밥 냄새로 마중하는 마음이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랴.



거꾸로 가는 시간에도 내 마음속에 '로또'가 변함없는 막내인 것처럼, 서른을 넘겨 장성한 나이에도 부모님 눈에 나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가 보다. 창밖에 비라도 내리면 우산은 챙겼는지, 눈 내리면 빙판길에 넘어지지는 않을지 염려하며 기다린다. 평생토록 누군가를 기다리며 늙는 것이 비단 강아지만의 일은 아니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중년이다.



  몇 곱절씩 빠르게 흐르는 것이 강아지뿐이랴. 그 누구보다 크고 힘센 천하무적 슈퍼맨이라 믿었던 아빠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엄마 주변에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머리칼이 한가득이다. 사계절 따라 몸도 제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중이라고 위로해 봐도, 집안에 불쑥 찾아든 가을이 을씨년스럽다.



포근한 날씨 중에도 일부 지역 곳곳에 비나 눈이 내리는 변덕쯤이야 부릴 수 있지만, 한 지붕 아래서 그 날씨 차가 벌어지는 것을 보려니 이보다 더한 어려움이 없다. 아마도 값 없이 내어준 시간에 대한 형벌이 시들어가는 청춘을 보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나의 오랜 슈퍼맨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내 어릴 적 세상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던 이의 얼굴에 나이테 같은 주름이 패이는 것을 보고, 마음속 여전한 막내가 나를 앞질러 먼저 쇠하는 풍경을 보는 것. 세상 그보다 가슴 아린 일이 또 있을까.



잠자코 흐르던 시간이 기어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가속 페달은 있어도 브레이크는 없는 무서운 페달을….







들키고 싶은 혼잣말

/ 담쟁이캘리


 


흐드러지게 피던 꽃들도 시간 가면
시드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꼿꼿하던 줄기가 휘어지던 때와
영롱하던 꽃잎이 빛바랠 때마다 다독였다
 

누구나 활짝 피던 때가 있으면
서서히 고개 숙이고 저무는 때가 있는 거라고
지는 것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일몰(日沒)이 무색할 만큼 황홀한 자태로
저무는 노을을 보며 말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촛불 하나쯤은
밝힐 수 있어야, 언제고 덮일 어둠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일상 속 반복해서 뜨고 지는 상(像)들을 보며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짐짓 웃어넘겼건만
매일 아침 겨울에 비치는 상(相)은 도무지 낯설다

 
제 아무리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도
하루하루 낙화(洛花)하는 젊음과
거대하던 부모의 작아짐을 목도(目睹)하는 일은
희수(喜壽)가 된다 하여도 여전히 두려워
 

익숙지 않은 수 없는 오늘을
들키고 싶은 혼잣말로 몇 번이고
제 스스로 저물어가는 생을 다독였다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쉰을 뜻하는 다른 말

희수(喜壽)
: 보기 드문 나이, 77세를 뜻하는 다른 말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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