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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24. 2020

코로나, 어마 무시한 '씬스틸러'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의 풍경'을 도둑맞았다


  '겨울 날씨 좋은 건 못 믿는다'는 속담이 있다. 겨울 날씨는 변화가 심해서 믿기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1월, 그렇게 볕이 좋더니 별안간 나타난 코로나가 안온하던 일상의 풍경을 꽁꽁 얼려 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교통체증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체 구간만 지나면 수월해지는 도로처럼 코로나도 때 되면 자연히 누그러질 줄 알았다. 본래 모든 일은 부지런히 흐르는 시간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잠식되는 법이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흐르는 시간을 약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건만 코로나는 예외였다. 도리어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리는 안전 안내 문자는 일상이 되었고 기어코 올 한 해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행정안전부에서 온 첫 '코로나' 관련 문자


  환경부의 미세먼지 경보 문자가 코로나 알림 문자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보름 남짓, 누룩처럼 서서히 일상을 좀 먹기 시작한 코로나는 '세기의 도둑'이 되어 세간을 뒤흔들었다. 작게는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식사시간을 잃었고 크게는 삶을 영위하던 일상과 밥줄을 잃었다. 무려 지구에 '일상을 훔쳐 간 도둑'이 들었으니 세기의 도둑이 아니고 무엇일까. 올해는 처음으로 온라인 입학식도 열렸다. 입학은 했는데 친구 얼굴도 모르는 일이 태반이었고 정작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보기 힘든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민족 대명절이라 불리는 추석마저도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웃지 못할 플래카드를 걸고 서로 왕래하지 않기를 독려했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 사이도 데면데면 해졌다.


추석명절  '이동제한'을 독려하던 플래카드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동안 도처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고, 회사는 코로나로 인한 두 번의 조기퇴근과 서너 번의 방역을 했다. 눈앞까지 다가온 듯한 위험에  밥 한번 먹자던 친구들과의 약속은 무기한 연기됐다. 비 오는 날은 빗소리를 핑계로, 맑은 날에는 집에 들어가기 아쉽다는 것을 핑계로 마주 앉아 나누던 이야기는 전화와 메신저로 대신했고, 경조사가 생기면 직접 찾아가 축하인사를 나누거나 끌어안으며 위로를 전하던 풍경마저 희귀해졌다. 계좌 송금만으로는 정이 없어 보이는 듯해서 카카오페이 속 봉투에 담아 보내며 마음을 전했지만 그래도 헛헛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친구들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얼굴로 긴 긴 하루를 버텨내는지도 모르는 채로 각자의 자리에서 무탈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저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바둥대고 있었다. 길 가다 사람들을 마주쳐도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마음 놓고 상대의 눈코 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마저 가물해졌다. 누군가의 눈코 입이 그리워지는 동안 마스크는 외출 필수품이 되었고, 마스크 공급 대란으로 '마스크 5부제'까지 시행했던 온갖 '처음'이 난무하는 해였다. 심지어 버스에 설치된 카드 단말기까지 '마스크를 착용하세요'라며 우리 일상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불쑥 나타난 낯선 것이 늘 반복되던 일상의 장면들을 몽땅 훔쳤으니 이만한 씬스틸러가 또 있을까.


이제는 '잘 버티자'는 말이 인사가 되었다


  코로나 행동 예방 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행되고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발적 외톨이'가 되었고 별말 없이 홀로 앉아 밥그릇을 비우는 날들이 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밥그릇을 비우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씩 밥그릇을 비워도 여전히 돌아서면 입이 궁금하다. 배를 불려도 자꾸만 꺼지는 헛헛한 무엇을 곱씹으며 과거에 무수히 반복돼 온 삼시세끼 동안 내가 먹어온 것이 비단 밥만이 아님을 알았다. '밥 한번 먹자'는 말로 불러내 마주 앉은 나의 이웃의 안부를 살피려는 핑계였고, 평범한 사는 이야기를 서로 터놓고 또 들으며 더부룩한 일상도 결국은 소화되고 마는 밥심을 빌린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간 무심히 지나쳐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던 풍경들을 되감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을 소홀히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는 듯한 한 해를 보내면서 상실의 무게를 아로새기는 중이다.


함박눈 내린 날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


  이 와중에도 스물네 절기와 계절은 부지런히 흘러 창밖은 종종 눈도 나리며 묵묵히 겨울을 나는 중이다. 불현듯 나타난 어마 무시한 '씬스틸러'가 평범한 일상은 훔쳐 갔어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선 자연을 보며 위로받는다. 비록 사람과 사람 사이 당연하던 일상 속 풍경은 무너졌을지언정 그 자연의 뒷배경만은 흔들림 없이 건재하므로. 간절히 기도하고 믿는 마음으로 이틀 남짓 남은 생애 가장 고요한 성탄절과 연말을 보내고 나면, 언젠가는 다시 평범한 일상의 봄을 맞이하게 될 날을 가만히 꿈꿔본다.






함박눈

/ 담쟁이캘리




밤새 소리도 없이 날린 눈발이
소복하게 쌓여 창밖이 온통 하얗다



짙은 어둠을 뚫고 내린 눈발에
어둑하던 마을 온 동네 눈이 부시다



일 년 열두 달 지붕 밑에 멀거니
웅크리고 앉아 보내던 하루 일과도



어둔 밤길을 뚫고 나린 눈처럼
울상 짓는 풍경 모두어 포옥 덮기를





- 이적, <당연한 것들> 중에서 발췌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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