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Nov 17. 2020

엄마도, 우리 엄마가 해주는 김치가 먹고 싶다

집에서 직접 담그는 '김치'에 담긴 의미


요즘 누가 김치를 집에서 담가 먹어?



점심시간 우연히 들어간 백반집에서 나온 갓김치를 먹으며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는 식당에서 이렇게 직접 담근 김치를 내놓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즘은 마트 김치가 워낙 잘 나와서 사 먹은 지 오래라며 다들 그렇지 않냐며 나의 동조를 구했다. "…저 이번 주말에 김장해요." 나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요즘도 김치를 담가 먹는 집이 있느냐며 놀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머니가 참 대단하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 집 반찬의 대부분은 김치로 시작해 김치로 끝난다. 그 흔한 배추김치도 날것과 신김치로 나눠 입맛에 따라 골라먹는다. 주로 겉절이는 엄마와 나, 익은 김치는 아빠와 오빠 몫이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로 시작하는 노래만큼이나 김치는 밥맛을 돋우는 음식이다. 우리 집만 해도 총각김치, 고추김치, 무생채, 오이소박이, 고들빼기 등 반찬의 팔 할이 김치다. 메인 메뉴는 두부조림이나 구운 생선, 청국장, 된장찌개 등 때마다 달라져도 밥상 위에서 김치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잘 담근 김치만 있으면 김치찌개, 등갈비 김치찜, 김치만두 등 무한 변신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흔한 라면 한 그릇이라도 잘 익은 김치만 곁들이면 별미가 된다. 때문에 우리 가족은 밥상 위의 김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하는 말이다.



올해는 소박하게 30포기만 담그기로 했다. 작년 50포기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여름 내리 쏟아부은 장마에 배추값이 폭등한 탓도 있지만 이집저집에서 김치를 나눔 해 준 덕에 여분이 많았다. 부쩍 서늘해진 바람에 코끝이 시릴 무렵이면, 우리집은 어김없이 김장을 담그며 월동준비를 한다. 겨우내 닥쳐올 한파를 무던히 그리고 배불리 견뎌내기 위함이다. 자고로 속이 든든해야 쌀쌀한 날도 무사히 지나는 법이므로 김치 하나를 담가도 속재료를 대충 준비한 적 없다.

  


김칫소를 만드는 과정을 허투루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만 보아도 김치는 정성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밥상 위에 없으면 섭섭한 '국민반찬'이지만 밥상 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때로는 누군가의 그 수고로움이 손맛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 김치의 비법은 갈아 넣은 배와 설탕 대신 곁들인 연시 대봉감과 매실청에 있다. 김치가 맛있게 익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찹쌀풀도 빼놓을 수 없다. 결정적으로 여기에 채수 물까지 더하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도둑 김치가 탄생한다. 나박하게 자른 무, 마늘, 양파, 다시마, 대파 뿌리를 넣어 거른 물이니 먹음직스럽지 않을 수 없는 재료들이다.




갓을 넣어 함께 버무리며 새우젓과 액젓으로 간을 한다




김칫소 양념을 준비하는 일이 엄마의 수고라면 그다음은 오빠와 내 차례다. 무채를 버무리는 것은 오빠 담당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어마어마한 양의 무채와 갖은양념을 고루 섞어야 하기 때문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했다가는 대야 밖으로 삐져 나가기 십상이다. 적당한 힘 조절과 노하우가 필요한데, 오빠는 그걸 또 기가 막히게 해낸다. 엄마는 평소 장난기 가득한 오빠가 군말 없이 척척 해내는 광경을 보니 대견하고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지었다. 단언컨대 매년 김장을 담글 수 있는 것은 장소의 힘이 크다. 집에서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고 김장을 했다면 배추를 절이는지 사람을 절이는지도 모르는 채 녹초가 되어 소금이 자박자박 밟히는 거실을 치우다가 두 손 두 발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4년 전부터 백석에 위치한 한 가죽 공장 공터에서 김장을 담근다. 이것은 순전히 평소 마당발인 엄마 덕분이다. 처음 엄마 친구분이 소일거리로 배추농사를 시작했는데 농사가 잘 되자 엄마는 시세보다 저렴한 값에 배추를 샀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 해 배추를 팔 수 있게 도왔다. 이에 친구분이 고마움의 표시로 공장에서 대신 배추를 절여주던 것을 시작으로 이곳은 자연스럽게 '우리 집 김장터'가 되었다. 절인 배추를 싣고 오갈 필요 없이 한 자리에서 시작해서 말끔하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보다 더 좋은 '작업장'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김장 당일, 김칫소 양념과 빈 김치통을 싣고 가기만 하면 된다. 김칫소 양념도 처음에는 반찬통에 가져가 설거지 해 돌아왔지만 몇 해를 반복하니 일회용 비닐팩에 담아 쓰고 나면 바로 버리고 오니 아주 홀가분하다.  우리 집 김장을 수월하게 도와준 진짜 비밀병기는 뭐니 뭐니 해도 경운기다.





가죽공장에서 일하시는 엄마 친구분이 직접 만든 가죽 앞치마로, 턱밑부터 발목까지 오는 길이 덕분에 온몸이 양념 범벅이 돼도 양념 묻을 틈 없는 최고의 작업복이다




갑자기 웬 경운기냐 하겠지만 여러 해 김장을 담가 본 결과, 김칫소 넣는 작업장으로는 경운기만 한 것이 없다. 경운기의 쓰임새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적재함 위에는 비닐을 씌운 나무 합판을 올려 배 가른 배추와 빈 김치통을 올려두고 속을 넣을 작업대를 만들고, 아래쪽 적재함을 여닫는 양철판은 뉘어 김칫소가 담긴 빨간 대야를 올려 두는 데 사용한다. 그야말로 작업하기 딱 좋은 동선이 만들어진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의 확실한 역할분담이 주어진다. 김칫소를 배춧잎에 넣어 버무리는 것은 엄마와 나의 역할이고 오빠는 크기가 큰 배추를 네 등분으로 갈라 올려준다.



배추가 너무 크면 양념을 묻혀도 숨이 잘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업무를 마치고 나면, 엄마와 내 앞에 놓인 김치통이 채워질 때마다 뚜껑을 닫아 한쪽 벽에 쌓아두는 일을 맡는다. 다시 말해 작업 속도에 맞춰 빈 통으로 교체해 주고 꽉 찬 김치통을 옮기는 일이다. 역할분담을 마치고 나면 고무장갑을 끼고 흥을 돋울 노동요를 틀고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된다. 신기한 일이다. 허리 한 번 못 펴고 내내 김칫소를 넣는 일은 분명 힘이 드는 일인데도 자꾸 웃음이 샌다.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는지. 연신 차갑던 바깥공기마저 누그러져 그 어떤 때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지던 11월답지 않은 날이었다.




김장 담그기 위한 작업장 준비가 한창이다




엄마는 이제 마지막 '김장 세대'지.
너희는 힘들이지 말고 사 먹어.



요즘은 마트 김치도 잘 나오니 사서 고생 말라는 오빠의 말에 엄마가 답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때 되면 김치를 담가 바리바리 싸들고 와 신나서 나눠 줄 사람이 엄마다. 그 무엇보다도 '손맛'이 음식을 좌우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사 먹는 것보다 '집밥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밖에서 아무리 사 먹어도 이 맛이 안 난다며 집에서 직접 묵을 쑤고 만두를 빚으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만드는 게 습관이다.



당연하게 엄마가 해주는 김치를 먹고 자라면서 마지막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체감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였고 미처 헤아려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만찬'이라는 말도 끝을 예감할 때나 차릴 수 있는 만찬이지, 내게는 무탈하게 이어져 온 보통의 상차림이었기에 소중함의 무게를 가늠해 볼 기회가 없었다.




김장의 묘미는 단연 보쌈이다. 비계와 살코기가 적절히 섞인 수육을 삶아 배추에 싸먹으면 그야 말로 꿀맛이다.







엄마도 우리 엄마가 해주는 김치 먹고 싶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기며 무심코 지나던 '김치'에 대한 나의 생각에 누군가 발을 건듯 했다. 듣기만 해도 괜히 울컥하는 '엄마'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썼으니 오히려 당연한 반응인 걸까. 나는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엄마의 마지막 김치'를 떠올리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닥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어림짐작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누군가의 부재에 대한 상상은 아무리 예습을 해도 현실을 못 따라간다. 아흔이 다 된 나이에 세상을 등진 외할머니와 엄마가 이별할 때도, 두 사람은 종종 '나 가거든'으로 시작하는 말들로 수없는 예행연습을 했지만 그 무엇으로도 퉁칠 수 없는 것이 '부재를 마주한 현실'이었다.



이것저것 다 해 봐도 왜 그 맛이 안 날까.



엄마가 나직이 속삭이듯 내뱉던, 축축하게 젖은 그 말속에 담긴 울음을 기억한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빈자리라 갖은 수를 써도 헛수고였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봐서 그런지 '마지막 김장 세대'라는 말에, 마음이 온종일 '마지막'에 방점을 찍고 그 말 주변을 맴돌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스스로 기억하는 내 생애 따스했던 순간들마다 '엄마 김치'가 있었다. 수능 전 날 체하는 바람에 죽 도시락을 싸 가야겠다고 울상이던 나를 위해 부랴부랴 담그던 겉절이.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어떤 날,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세상은 앞 일을 당최 가늠할 수가 없다고 투덜대던 하루.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버린 날 나를 위해 건네던 잔치국수 한 그릇과 신김치까지. 그러고 보니 그때 나는 국물 한 술 뜨기도 전에 김치를 짚다 말고 울음을 터뜨린 적 있다. 국수가 너무 따뜻해서…라고 말하며 엄마 품에 안겨 이유 없는 울음을 울기도 했다.



김치와 관련된 추억이 어디 그뿐이랴. 김치는 분명 단출한 반찬이건만 그 찬 하나를 두고도 가슴 뜨끈해지던 날이 수두룩한 것을 보니, 이만큼 '화려한 과거'를 가진 반찬이 또 있을까 싶다. 엄마가 말하는 '김장을 담그는 마지막 세대'에 이르러서야 직접 담그는 김치에 담긴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밥때마다 엄마가 그릇에 가득 담아 건넨 반찬들은 심심한 맨밥 같은 하루에 대한 깊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식탁에 앉아 깨작댈 수밖에 없던 바깥에서의 시간을 다독이고, 허기진 그 마음이 두둑하게 배부르기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맛 나는 인생이니
밥심으로라도, 우선 살고 보라고.









계절 나기

/ 담쟁이캘리




여러 해 겨울을 나고도
코끝 시린 날은 늘 있었고
세상은 제법 추웠다


어린 날 잠자리 봐주던 엄마가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려 덮어줘도
밤새 몽땅 걷어차길래


태생이 추위를 잘 견디는 체질인 줄 알았건만
안과 밖 온도 차 헤아릴 줄 모르는 철없음이었다


여러 해 여름을 나고도
푹푹 찌는 날은 늘 있었고
세상은 제법 숨찼다


어린 날 자장가 부르던 엄마가
손부채 부쳐가며 뜨거운 숨 식혀줘도
더운 기색 없이 자길래


태생이 더위도 잘 견디는 체질인 줄 알았건만
안과 밖 온도 차 살피는 그 가없는 맘 사랑이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