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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10. 2020

굶주림은 '완벽한 타인'이다

텅 빈 속 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탈 난다


밥은 먹었니?



  그 뻔한 물음에 왈칵, 울음이 터졌다. 물 머금은 풍선을 바늘로 찌른 것처럼 손 쓸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밥 한번 먹자'는 말로 기약 없는 약속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나의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은 었다. 수없이 대충 때우고 무심히 지나친 나의 끼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닿았다. 단 한 마디, 고작 두 어절짜리 보통의 물음 담긴 말의 온도가 너무 따뜻해 왈칵 눈물을 쏟았다. 처마 끝 얼어붙어 있던 고드름이 녹아 물을 흘리는 것과 꼭 닮은 그 모양새를 하고서 그간 얼어붙어 있던 몸과 마음이 녹을 때까지 뚝뚝 눈물을 흘려보냈다.


  제 밥그릇을 챙겨 먹기에도 벅찬 세상에서 나의 굶주림과 허기를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크나큰 위안이었다.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내내 허기져 있던 마음까지 두둑하게 배를 불렸다. 밥 대신 허겁지겁 집어삼킨 외로움으로 더부룩하던 헛배가 그제야 온전히 꺼졌다. 급히 먹으면 체한다더니 마음도 딱 그렇다. 텅 빈 속이 고프다고 아무거나 대충 집어먹었다가 탈 날 뻔했다. 대체 밥이 뭐라고… 그 밥 하나에 울고 웃었다.






  밥이라는 게 그렇다. 기분 따라 한 술에도 배가 부르고 변변한 반찬 없이도 마주 앉은 상대 하나로 최고의 만찬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푸짐한 상차림에도 입맛이 당기지 않거나 먹은 것 하나 없이도 별안간 체하기도 한다. 세상에 이다지도 변덕스러운 먹이가 또 있을까. 밥 하나로 마음과 상황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밥이라는 것이 먹을 때는 두둑하게 배 부르다가도,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고파지는 '변덕'이 숙명이므로. 더 많은 배를 채우겠다고 아무리 욕심 내도 결국은 몽땅 꺼지고 마는 '일용할 양식'이다.    


  매 끼니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삼시세끼 꼬박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때 식사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밥 먹을 때는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하는 것 역시 알고 있지만, 요란하게 울리는 배꼽시계를 잠잠하게 하는 정도로만 대충 때우는 일도 많다. 제대로 챙겨 먹는 근사한 밥 한 끼로 남은 끼니들을 대신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밥때만 되면 굶주림은 늘 낯선 낯을 하고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완벽한 타인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물론 덕분에 매 끼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다는 사실만가히 매력적인 일이다. 이번 메뉴 선택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선택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거나, 밥 먹는 일만큼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늘 먹던 것을 먹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만의 '맛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어느 유명 강사가 말했다. '어제 먹은 음식이 오늘의 나다'라고. 그것만 봐도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은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가만 보니 밥 먹는 일은 세상살이와 많이도 닮았다. 순간은 배불러도 되돌아 올 허기가 있다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니는 비슷하다. 또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탈이 난다거나 크든 작든 후회를 남긴다는 것도 그렇다. 밥 먹을 때 작게는 '오늘 뭐 먹지?'라고 고민하지만 결국 그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개인의 기호가 되고, 크게는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선택지를 좁히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모두 밥값을 벌기 위해 사회생활을 한다. 밥값이라는 게 그렇다. 식당 메뉴판에는 1인당 비용이 모두 똑같이 적혀 있지만 사회에서는 그 값이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8시간 꼬박 일해야 겨우 버는 밥값을 어느 누군가는 반절 만에 벌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에는 먹는 것으로 채울 수 없는 허기가 들 때도 있다. 양껏 욱여넣어도 여전한 굶주림이 미련처럼 남을 때가 있다.


텅 빈 속이 뱃속뿐이면 좋겠지만 습관처럼 굶주린 속은 기어코 멀쩡하던 마음까지 갉아먹고 만다. 적당한 열등감, 시기, 질투와 같은 허기진 감정은 몸과 마음을 바삐 움직이게 돕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적 허기가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면 신경이 곤두서고 극도로 예민해져 종국에는 사고의 왜곡을 가져온다. 대체 밥이 뭐길래…  '먹고사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찮은 일이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밥값을 해야 배 곪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이니 밥벌이를 위한 하루살이는 여간 퍽퍽한 일이 아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는 일처럼 그 값어치가 정해져 있다면 조금은 쉬울까? 가족과 식사할 수 있는 시간 n원, 아무 눈치 안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시간 n원…. 별의별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세상에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두는 것이 제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세상은 도처에 알 수 없는 일들이 도사리는 요지경이다. 먹은 것 하나 없어도 풍족한 하루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보릿고개를 지나는 일처럼 몸과 마음이 극한의 굶주림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근심하거나 염려하는 것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난 뒤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으므로 살만 하다'라고 오래도록 끊지 못하던 생각의 꼬리를 매듭지었다.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을 멈추고 마음의 자세를 고쳐 잡고 다가올 시간들을 즐겁게 기다리며 기대하기로 다. 사방이 막힌 것 같고 눈앞에 보이는 곳마다 막다른 길처럼 보일 때도 그저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몸을 맡겼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그 어떤 선택과 결정도 유예하는 것이 나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길들이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바꿔 생각하면 불모지도 다르게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우거진 수풀이자 산이었으나 지금은 길과 길을 잇는 터널이 되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삶의 터전으로 변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길은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길은 변한다. 앞이나 뒤 혹은 옆에도 새 길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니 섣부르게 절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메뉴 선택에는 실패했지만 내일은 꼭 맛있는 밥을 먹겠다며, 되돌아 올 끼니에 신중을 기하는 것처럼 세상살이도 그만큼 가볍게 털고 지날 수 있는 마음이면 좋겠다. 딱 오늘 하루치의 실수만 반복하고 후회하기로 했다. 고된 하루살이라도 진심으로 나의 끼니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실수하지 않은 '깨끗한 백지'의 내일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수고한 나를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푸지게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제 앞에 길 모퉁이가 생겼어요.
그 모퉁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가장 좋은 것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 모퉁이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그 길 너머로 또 어떤 길이 이어질지,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그림자가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풍경, 새로운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저 멀리 어떤 구부러진 길, 언덕, 골짜기가 펼쳐질지 궁금하거든요.  

-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作 중에서 발췌






마음 챙김

/ 담쟁이 캘리




뜨끈한 국 한 술에

찬바람 후루룩 넘기던 겨울은 가고

달래 나물 한 입에

겨우내 마음 달래는 봄 찬을 먹다가



번번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매일 챙겨 먹는 끼니에도

순환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았네



주어진 그릇 뚝딱 해치우던 날도

온종일 비우지 못해 깨작대던 날도



삼시세끼 꼬박

거르지 않는 끼니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음을 알았네



아침은 간밤 내내 서늘하던 꿈자리

이른 새벽부터 데워주는 누군가의 돌봄이자

반나절 새 널브러진 마음 이를 데 없어

우걱우걱 점심으로 대신한 건사였고



삶의 능선 따라 솟아오른

산등성이 사이로 저무는 석양

습관처럼 놓치고 뒷모습만 보고 마는

허한 저녁 빈틈없이 채우려는 살핌이었네



삼시세끼 꼬박

거르지 않는 끼니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음을 알았네



대충 때우려는

개의치 않던 끼니마다

무어라 섣불리 이를 수 없는

고유의 마음이 있음을 알았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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