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보단 효율, 욕심보단 균형

인턴 24일 차

by 차열음

큰 실수가 액땜이었는지 몰라도, 그 이후 그녀는 조금씩 부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서툴렀지만 주어진 일들을 얼추 해냈고, 칭찬은 못 받을지언정 꾸중은 듣지 않았다. 할 일은 미리 해두는 성격 덕에 이제는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하루 속에서 잠시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녀도 이제 병아리 티를 벗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인생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뉴미디어 부서에 적응하려는 찰나, 새로운 일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그녀는 프로그램 촬영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그 때문에 다시 마주하게 된 PD님은 여전히 그녀의 콘텐츠에 대한 뼈아픈 피드백을 늘여놓았다.


수많은 재수정 도르마무(*참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통해 팀장님의 취향에 맞춰진 그녀의 콘텐츠는 보다 젊은 PD님의 눈에는 촌스러운 것이었다. 양쪽 PD들의 취향 사이에 낀 병아리 인턴은 이제 이 상황에도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처음의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었던 마음도 이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숨 죽은 배추가 되었다. 원래 김장배추는 숨이 죽어야 쓸모가 있는 법이다. 고로 이런 체념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생각대로 안될테니까.'


덤덤하기라도 해야 한다.




인턴 첫날의 에너지와 욕심은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회생활의 중요한 키워드는 '열정'이 아닌 '효율'인 듯했다. 방송일이 아무리 열정 페이라 해도, 그건 학생 때의 '맨땅의 헤딩'과는 다른 맥락의 것이었다. 학생 때처럼 멋모르고 에너지를 마구 썼다간 번아웃을 세게 겪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녀도 최근 며칠 그 시기를 겪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욕의 인간으로 거듭났더랬다.


남들보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많은 시간을 업무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제 그녀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세상이 그렇게 내세우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은 일과 쉼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업무시간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균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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