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포부에 차서 들어간 간호학과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었지만, 좋은 병원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며 미친 듯이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소박한 내 꿈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들 틈에서 나도 큰 병원에 들어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구보다 독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올라가는 성적과 다르게 내 몸과 정신은 이 생활을 버거워했다. 심계항진과 손 떨림이 생겼고, 이유 없는 두려움이 목을 조르는 느낌에 약 없이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부러워했고, 눈물로 밤을 새울지언정 그들이 보는 나는 정답을 향해 걸어가는 부족함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람들의 인정하는 말과 부러워하는 시선을 마약 삼아 기생하듯 살아갔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제를 위해 임종센터에 가서 유서 쓰기 체험을 하던 날, 후회로 얼룩진 유서를 천천히 읽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성실하라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다들 이 길이 좋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는데, 너무 후회돼.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게 바보 같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거지? 그제야 유치원생들에게나 할 법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글을 쓰는 게 좋았다. 학창 시절에는 공책을 따로 만들어 내킬 때마다 시를 썼고, 축제 때가 되면 다양한 연극 극본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펜을 움직일 때의 두근거림은 분명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지만, 문학은 재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어른들이 말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했던 길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의 끝은 허무함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그러다 우연히 원하는 학과가 있는 한 대학교에서 편입원서를 접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홀린 듯 자소서를 썼고, 얼마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자퇴를 위해 담당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은 혀를 차셨다. 그리고는 ‘이름 없는 대학의 전망 없는 학과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분명 후회할 거니까 차라리 휴학 신청을 하고 잠시 다니다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진심 어린 조언으로 들렸기에, 후회할 거라는 말에서 그분의 확신이 느껴졌기에, 나는 기어코 자퇴서에 사인을 받아냈다. 돌아갈 자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편입을 하고 나서, 많은 경험을 했다. 공부만 하면서 좁아졌던 인간관계는 좋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회복되었고, 진자운동 같던 삶의 패턴에 잠시 공백을 두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는 ‘전망 없는 진로’라고 하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과 함께 전날 걸음 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을 설레어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원하는 것을 하는 지금은 스스로가 뛰어나게 잘하진 못해도 그저 이 길을 걷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물론 때로는 여러 감정들이 들기도 한다. ‘꿈에만 차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며 우울한 적도 많고, ‘남들도 다 가는 길인데 내가 부족해서 여기로 도망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괜한 열등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네가 이루어낸 게 뭐야?’ 누군가가 묻는다면 당장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유서를 쓰며 흘렸던 눈물을 기억한다. 누군가가 ‘내일 당장 죽으니 유서를 쓰라’고 한다면 ‘하고 싶은 거 해 볼 수 있었던 인생’이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쓸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새로운 출발은 항상 두렵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것은 늘 미련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면 조금 더 용기 내어 보기를, 무한한 미래를 두고 좁은 경우의 수에만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삶의 변화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보아도, 갑작스러운 이사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 낯선 곳에 등 떠밀리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어디에서든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인생이라면, 조금 더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