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대사이다. 그러나 12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쓰인 작품 <햄릿>의 이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21세기 한국에도 유효하다. 결정적인 복수의 순간에서조차 선택을 망설였던 햄릿은 선택지 앞에서 얼버무리는 Z세대의 우유부단함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지 못하는 세대, 이들은 Z세대의 햄릿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의 사소한 선택에서 ‘어떤 대학을 갈까’, ‘어떤 일을 할까’의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매일같이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Z세대의 햄릿들은 이러한 선택의 순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야, 나 선택 장애야.. 네가 골라주라."
"나도 선택 장애거든... 그냥 사다리 타기 할까?"
시내에 나가면 젊은 사람들 틈에서 이런 대화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Z세대의 햄릿들은 일상적인 선택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휩쓸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듯한 독특한 심리적 기류를 느낄 수 있다.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정도는 개인의 성장배경, 성격은 물론 사회적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디지털을 기반으로 등장한 정보의 홍수 사회는 선택의 폭을 무한하게 만들어 현대사회의 수많은 햄릿들을 배출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이 Z세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먼저, '개인의 성장배경과 성격' 은 매우 모호한 요소이며 다양한 변수들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측정 척도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사회적 흐름' 또한 Z세대의 독특한 현상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Z세대에 앞선 X, Y세대도 Z세대와 같은 사회적 흐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삐삐의 도입이 시작된 X세대, SNS 사용도가 높은 Y세대 모두 Z세대와 같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급격한 사회 성장의 기류를 타고 있는 세대라는 점에서 '사회적 흐름'은 본 문제의 독립변수라기보다는 통제 변수에 가깝다.
앞서 살펴본 원인들에서 간과된 점이 있다면, 바로 세대 간의 '관계성'이다. Z세대의 문제점의 뿌리는 부모와 자식들, 현재를 살아가는 X, Y, Z세대 사이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현대사회는 앞선 세대들의 노력으로 일구어 낸 경제성장의 결과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소년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낸 Z세대는 노력의 과정이 아닌 결과를 누리며 사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X, Y세대는 Z세대에 앞서 빠른 경제 성장과 위기를 직접 경험하며 결과주의적 사고를 학습한 세대이다. 그리고 이제 부모가 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Z세대에게 '성공하는 법'을 전수한다.
자녀들의 인생이 성공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보다 결과를 위한 지름길에 치우친 가르침은, 이미 결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Z세대의 사회적 배경과 맞물리며 그들의 마음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싹 틔운다. 이 싹은 선택의 경험을 하지 못한 채 부모와 학원의 손에 이끌린 수동적인 청소년기를 지나며 뿌리내리고, 주체성이 요구되는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열매 맺는다. 즉, 이제껏 선택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누려오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Z세대의 햄릿들은 스스로가 선택할 순간이 되었을 때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 부담감을 덜기 위해 중요한 선택은 물론 일상의 작은 선택들마저 자기 대신 책임을 져 줄, 혹은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 누군가는 이제껏 삶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X, Y세대일 것이고, 결국 Z세대의 실패는 X와 Y세대를 향한 비난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1세기의 세대들은 조화롭게 얽히지 못한 채 지저분하게 엉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Z세대의 햄릿들을 위해 앞선 세대의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누구나 실패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Z세대는 선택에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나 실패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선택에 더욱 부담을 가지고, 실패에 더욱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선택을 감당하는 힘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그러니 당신들이 지나 온 인생길을 처음 걸음마하는 어린 세대의 옆에서, 정답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아닌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는 지팡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벌써 애매한 어른이 되어버린 Z세대의 햄릿이, 아직 어린 Z세대를 위해, 부모인 X, Y세대에게 감히 부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