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汚塗)된 사람
어쩌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일지도
내 남자친구는 붙임성이 좋고 누구와도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그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은 '세상에는 심성이 나쁜 사람이 있고 오도(汚塗)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도(汚塗)된 사람이란, 말투가 거칠고 때로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본의가 아닌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며 친구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요즘 박팀장님을 볼 때면 남자친구의 말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박팀장님은 어려운 사람이다. 가벼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던지지만, 그 속에는 항상 비꼬는 듯한 어투가 섞여 있는 것이 불편했다. 특히 상대의 반응에 기민한 내가 그와 대화를 하는 행위는 나무 바닥 위에서 공기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서면 어디서 박혔는지 모를 가시들이 내 여린 마음을 쿡쿡 찔렀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상대를 까내리는 동시에 자신을 까내렸다. 예컨대 신입들 앞에서 "황팀장님이랑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능력이 없으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자리에 없는 황팀장님을 평가하는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자조하는, 자기 연민과 합리화가 한데 섞인 어법이었다. 또한 굳이 꿈에 부푼 신입들에게 암묵적으로 회사를 '능력 없는 사람이 오는 곳'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저 심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말을 듣고나서는 박팀장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그의 날이 선 말에는 뚜렷한 공격대상이 없었다. 어쩌면 나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그의 안에 있는 열등과 우울이 잘못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말은 상대가 아닌 자신을 공격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자칫 그의 날카로운 말에 생채기가 날까 무서웠다. 그러나 그가 오도된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이상, 최소한 그를 배척하지는 않게 되었다. 언제 상처입어 터질지 모르는 풍선같은 나. 고슴도치 같이 날카롭고 예민한 그. 오히려 우리는 같은 성정을 가진,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