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신입, 나도 하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의 팀장, 상사들은 모두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나, 그보다 어린 나이대일 거라고. 그들은 생각보다 '열려있는' 사람들이니까, 당당한 신입이 더 매력적이라고.
당당한 신입. 나도 하고 싶었다. 그게 유튜브에서 말하는 5초짜리 정답만큼 쉽게 되는 일이라면, 세상 만족스럽게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당당'이랑은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집에서조차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지 어연 20년이다. 상담사는 그런 내게, 어릴 적 채워지지 못한 애정 욕구가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로 반전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집이라는 작은 사회에서조차 눈칫밥으로 살아온 작은 내 모습은, 큰 사회에서도 어김없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다른 팀의 신입들을 보면, 하나같이 당당하고 싹싹하다. 그들이 정말로 사회생활이 처음인 사회초년생 신입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상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모습은 선배 신입(?)인 내가 봐도 멋있었다. 그들과 내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낀 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가 봐.'
내가 내게 주는 눈칫밥을 먹는 기분은 참 초라하다. 수석졸업의 영광, 23살의 취업, 단번에 얻은 정규직, 높은 사회적 위치의 부모와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환경 같은 좋은 조건들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눈칫밥을 만들고야 마는 나를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스스로 만든 눈칫밥을 먹이고 있는 나나, 그 눈칫밥을 먹고 앉아있는 나나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한 번은 타 부서 본부장님의 MSG 가득한 군대생활을 듣던 중이었다. 그때 한 팀장님이 내게 '그래서 글 쓰는 작가님은 이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어떻게 보나?'라고 물었다. 악의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곤란한 질문이었다. '좋아요'라고 한다면 마치 네 말이 거짓인 줄 다 안다는 리액션이 나오리라는 건, 8개월의 회사 경험을 통해 체득한 미래였다. 그렇다고 '별로예요~'라고 하기엔 그다음 분위기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상사들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뭐 죄지은 거 있어?'
어쩌면 사회생활은 당당함과 더불어 재치와 능글맞음이 기본 옵션일지도 모른다. 재치의 'ㅈ'자도 없는 나는 괜한 헛소리로 이불킥을 할 바에야 차라리 대부분의 상황에서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다시 한번 쭈구리 신입이 되기를 택하는 것이다.
결국엔 시간이 약이, 경험이, 자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저 마중물을 붓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럼에도 오늘처럼,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는 나자신에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실망감은, 감출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