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nZ Sep 12. 2021

거리두기

글을 쓰는 이유

일을 하다 보면 학생 때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말 그대로,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시간만 훌쩍훌쩍 널뛰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며, 본업에 나태해지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올인하기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듯한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학창 시절 때 일기장 마냥 쏟아내던 글이 어느새 그럴듯한 습관이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글쓰기가 내 무의미한 일상 속 유의미한 자기 계발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로 글은 현실도피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덮어내는 대신 지워내면 되니, 쓰면 쓸수록 정직하게 발전하는 것이 글의 매력이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흘러간다. 흘러가지 않으면 지워낼 수 있고, 더 이상 지워낼 것이 없을 땐 그 글은 완성본이다. 우리 인생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삶에서 무언가를 완성해낸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최근에는 첫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시인선을 통해 출판사와 연이 닿은 덕분이었다. 주변에서는 '일도 하면서 책도 내는 것이 대단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전혀 대단할 것 없는 일이다. 글은 마치 쉬는 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편하게 즐기는 취미였다. 부러 그러려고 노력했다. 완벽주의자인 내게 무엇이든 일이 되는 이상, 그것은 내가 해내야 하는 일종의 과제로 전락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은 본업과 거리두기를 하게 하는 수단인 동시에 거리두기의 대상이기도 하다. 글이 인재를 바라는 교수나 성과를 바라는 사수가 되는 것은 싫다. 이들은 현생의 존재로 충분하니, 글은 언제나 내 곁에서 가장 든든한 친우로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이든 너무 몰입하면, 그만큼 실망도 번아웃도 크고 빠른 법이다. 그러니 때로는 삼각법으로 위치를 재듯,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적당히 사랑하고 그만큼 배려할 줄 아는, 그러나 늘 현재진행형인 그런 관계로 동행했으면 한다. 일도, 글도, 인생도. 

이전 14화 유리천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