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서 인정받을까, 하고픈 것에 집중할까
최근 팀장님께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준 기회로 대학원에 갈 예정인 팀장님이 시청률 분석에 유용한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학과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물론 대학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관심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배우면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사실, 조금 흔들렸다. 대학원에 가면 실무를 위해서는 유용한 선택이 될 것이다. 코딩이나 통계학을 전혀 모르면서 시청률을 분석하는 것에 실질적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업무를 하며 애초에 이 자리엔 공대생이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의문이 들던 차였다. 만약 내가 대학원에 간다면, 적어도 이 괴리감은 사라지지 않을까? 지금의 업무가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글을 쓸 수 있고 주말이 온전히 주어지기에 나름 '주업'으로 삼기에는 좋다고 생각했었기에 내게도 유리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스에 관심이 있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다. 데이터도 싫고 사이언스도 싫었다. 또 대학원에 가려면,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제한적인 시간과 노력의 총량 중, 주업으로 삼을 가치가 있(지만 딱히 흥미는 없)는 이 일의 발전을 위해 어디까지 투자할 수 있을까?
대학원 접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더 조급해졌다. 빨리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비슷한 고민을 하던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났다. 남들은 다 대외활동으로 스펙 쌓느라 바쁘고 취준으로 바쁜데 나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불안하던 때였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학과 수업과 시험 준비를 더 열심히 했었다. 그게 현재의 내게 주어진 것이기에,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 수석졸업을 했고, 곧바로 원하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물론 남들은 대외활동을 한 덕에 취업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들의 취업에 학점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의 삶은 모두 초행길이기에 옳고 그른 선택이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초조해하는 것도, 비교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민이 될 때는 그저 가만히,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다. 우유부단은 걱정하면서 급한 선택이 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다. 따지고 보면 '우유부단함'은 주어진 하루를 불성실히 보내는 것이지, 어떤 선택을 빠르게, 많이 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낸 것도 '오늘'이라는 기회를 누구보다 성실히 완수한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또 다른 기회를 낳겠지.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삶은 그렇게 흘러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에라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한 발짝 물러서기로 한 것이다. 대학원을 가겠다는 마음도, 대학원 안 갈 거면 좋아하는 글이라도 더 열심히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급함도 내려놓았다.
실무에서 인정받는 것에 힘을 쏟을 것인가, 그 힘을 내가 좋아하는 부업을 위해 쓸 것인가. 고민이 될 때는 조금 더 뒷걸음질할 필요도 있다. 당장 선택에서 멀어진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함일 뿐이다.